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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고
(출판사 – 열린책들) 울프의 다른 작품인 ‘댈러웨이 부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의식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서술 기법으로 씌어졌는데 ‘댈러웨이 부인’ 보다도 더욱 심화된, 아니 의식의 흐름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램지네 가족과 손님들, 이웃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철학과 교수인 램지와 그의 부인 사이에는 여덟 아이들이 있다. 램지는 지적인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독단적이며 냉소적이다. 등대에 가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6살 막내 아들 제임스에게 “내일은 날씨가 안 좋아서 등대에 못 가.”라고 잔인할 만큼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아버지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고 회의에 빠지길 잘 하고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인정과 칭찬, 위로를 구한다. 반면, 램지 부인은 그러한 남편을 받아주고 다독여주며 자애롭게 아이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남편을 찾아온 제자며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살뜰하게 챙기는 만인의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을 하는 여인이다. (램지 부부는 울프의 부모님을 모델로 한 인물들이다.) 노처녀인 아마추어 화가 릴리 브리스코는 램지네 가족과 함께 하는 인물 중 하나로 이 소설에서 램지, 램지부인과 함께 주요 인물로 다루어진다. 그녀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소설에서 전지적 작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딱히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다. 어린 아들 제임스가 등대에 가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날씨가 좋지 않아 등대에 못 갈 거라고 하고, 어머니는 날씨가 좋아질 수도 있지 않느냐며 어찌하든 어린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의 램지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내면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결국 등대에는 가지 못 하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그 동안 램지부인은 병으로 죽고, 램지의 아들 앤드루가 참전 중에 죽고, 가장 예뻤던 딸인 프루는 출산하다가 죽는다. 별장은 쓸쓸한 폐허가 되는데...램지네 가족은 오랜만에 다시 별장을 찾기로 하고 그 전에 앞서 하인들을 보내 별장을 말끔히 청소케 한다. 10년 만에 램지네 가족이 다시 별장으로 모이고 예전에 함께했던 지인들, 이웃들도 모여든다. 아버지는 훌쩍 커버린 아들 제임스와 딸 캠을 데리고 등대를 향해 떠난다. 아들과 딸은 이제 등대에 가고 싶지 않은데 아버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고 배 위에서 둘은 아버지에게 항거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다. 그러나 배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둘은 점차 아버지에게 마음을 풀게 된다. (램지는 성격이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모든 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인데 그러면서도 연민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화가 릴리 브리스코는 램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는 인물인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나가고 마침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완성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쓰고 보니 이 소설에 별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작품은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없다. 등장인물들은 왜 사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이 일은 의미가 있는가. 나는 이 일에 재능이 있는가. 계속 해 나가야 하는가. 등등의 의문을 갖는다. 램지는 25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저작물을 내 놓은 뒤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사상이라는 것이 A부터 Z까지 있다고 하면 자신은 Q까지는 왔는데 R로는 나아가지 못 함을, 한 평생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불안감,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지. 저 위대한 셰익스피어조차도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돌멩이보다도 더 오래가지 못 할텐데..하는 생각을 한다. 화가 릴리 브리스코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내가 그린 그림이 어느 하인의 방에 걸리거나, 다락방에 걸리거나, 둘둘 말려서 소파 밑에 처박힐지도 모르는데.. 왜 내가 힘들게 이 일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한다. 램지나 브리스코 모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아닌 노력과 행위의 의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간다. 등대에 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어떤 이상향 같은게 아닐까 싶다. 램지에게는 학문적인 경지, 릴리에게는 완성된 그림, 램지 부인에게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 등등 말이다. 그런데 제임스가 등대에 가까이 갔을 때 등대를 보고 한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맞은편 만에서 바라보았던 등대라는 것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일 뿐이었다. 사실 인생이란 꼭 저 등대 같은 것이리라고, 제임스는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등대에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으나 나이가 들어 막상 가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겠냐는 깨달음. 그렇지만 실망하기보다 인생이란 그런거지 하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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