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고
(출판사 - 어문각)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다가 머리를 식힐 겸 오랜만에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 대상은 12년 전에 한 번 읽어보았던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라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자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이 푸근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별 감흥도 없고, 이상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시와 같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면 어떠한 생각이나 느낌이 들게 마련이고 그것을 글로 적어 남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책에 대한 최종판결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책이라도 다시 읽었을 때 감상평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읽었던 책이라도 꼭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한 번 읽고 다시 읽는 일이 없었다면, “투르게네프는 별 볼일 없는 작가이고, 그의 작품 첫사랑도 그렇다”고 나는 영원히 오해하고 말았을 것이다. 책을 사서 보면 좋은 점이 여기에 있다. 빌려본 책은 다시 빌려 읽지 않기 마련인데, 소장하고 있는 책은 다시 꺼내보게 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독서론으로 치우쳐졌는데 각설하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러시아의 3대 문호라고 불리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 ‘첫사랑’ 속으로 들어가 보자.
1833년 여름, 열여섯 소년인 ‘나’는 양친과 함께 모스크바에 있는 별장에 머무르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이 별장의 별채로 이사 온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담장 너머로 바라보다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볼품없고 교양 없는 공작부인과 달리 지나이다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자긍심이 강하고 오만하다. 그녀 주위에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남성들로 늘 북적인다. ‘나’는 지나이다를 연모하지만 지나이다는 ‘나’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며 귀여워할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매력적인 미남자로 ‘나’의 어머니보다 열 살 연하이다. 그는 사랑 없이 단지 물질적인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냉랭하다. 구혼자들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던 지나이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수심이 가득하고 생기를 잃자 ‘나’는 그녀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음을 직감하고 그 대상을 캐고자 한다. 어느 날 ‘나’는 한밤중에 지나이다와 나의 아버지가 만나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는 대적할 수 없는 너무나 높은 곳에 위치한 연적인 것이다. 지나이다의 다른 구혼자들도 ‘나’의 아버지가 지나이다가 사랑하는 대상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에 질투를 느낀 한 구혼자가 ‘나’의 어머니께 둘의 불륜을 밀고를 하게 되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다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말을 타고 산책을 나갔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말과 함께 나를 남겨둔 채 어떤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몰래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그곳에서 아버지가 지나이다와 말다툼을 한 뒤 그녀의 하얀 팔을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지나이다는 새빨갛게 된 채찍 자리에 키스를 한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아버지는 뇌일혈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2~3일 전에 모스크바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매우 흥분하였고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날 아침 나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하라. 그 행복을, 그 독을 무서워하라.”고 편지를 썼다. 4년 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지나이다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근처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사흘 전에 해산을 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을 두고 “불륜 소설이다, 막장 드라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평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의견도 존중하지만 문학작품을 두고 단지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지 않나 싶다. 나는 이 작품을 도덕의 잣대가 아니라 예술의 잣대로 들여다보고 싶다. 사실 몇 줄로 간추릴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 이면에 있는 소설 속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 가는 것들이 많다. 불륜은 당연히 안 되고 그것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함에도 이 소설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든 주변 인물들이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뜬 순진한 소년인 ‘나’는 아버지가 연적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되고 그의 첫사랑은 무참히 부서진다. 냉철하고 자존심 강한 ‘나’의 아버지는 운명적인 사랑 앞에 열정을 불태우지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음에 오열을 하고, 자긍심 강하고 오만하던 처녀 지나이다는 사랑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지만 결국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한 소설 속에서 중요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나’의 어머니는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한 불행한 여인이었고, 지나이다의 구혼자들 또한 지나이다의 사랑을 차지할 수 없었다. 이처럼 이 소설의 묘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다운 필치로 서정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냈다는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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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