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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모, 이재성의 ‘글쓰기의 전략’을 읽고
(출판사 – 들녘) 객관식 문항에서 정답을 찾으면 좋은 점수를 받았던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아는 것을 논리적인 구조를 갖춘 긴 글로 써야 하는 대학의 평가 방식을 처음 접하고서 많이 당황했다. 거기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나는 레포트를 쓰는 것이나 논술 시험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글쓰기 기술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그 책 중에 하나가 연세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정희모, 이재성 교수가 쓴 ‘글쓰기의 전략’이다. 저자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방문했을 때 이 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 책임자인 한 교수에게 이공계대학에서 왜 그렇게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많이 시키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수는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놀라면서 MIT 학생들은 대부분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학생이며, 리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MIT의 교내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도 글쓰기 책이라고 한다. 글쓰기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이나 지식을 정리하거나 나열하는 활동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창조적인 사고를 키우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총론적으로 말하자면 많이 읽고, 많이 써 보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답이라고 한다. 많이 읽는 것은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좋은 내용이 좋은 글을 만든다.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은 좋은 내용을 위한 필수 항목이다. 많이 쓰는 것은 문장력을 기르는 훈련이 된다. 또 많이 생각하는 것은 글을 구성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저자는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만이 글을 잘 쓸 수 있게 한다며 글쓰기는 ‘헤파이스토스’(노동의 신)의 영역이며, ‘뮤즈’(예술의 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전략적인 방법을 글을 쓰는 과정 단계별로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디어를 얻는 비결, 설계도 짜기, 간략한 구성을 작성하는 단계, 다양한 글의 구성 유형, 서두를 작성하는 방법, 결말을 쓰는 방법, 문장을 만드는 과정, 바른 문장을 쓰는 법 등등에 대해 설명하는데 글쓰기에 대해 굉장히 분석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너무 분석적인 설명이 배우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걷는 방법을 설명한다고 할 때, 왼쪽 다리를 30도 각도로 앞으로 들어 올린 뒤 왼쪽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게 하고 왼쪽 발전체가 땅에 닿을 때 쯤 오른 쪽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다음 오른 발앞꿈치로 땅을 디디면서 오른쪽 팔은 30도 앞으로, 왼쪽 팔은 30도 뒤로 흔들고...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듣는 사람이 걷는 방법을 잘 숙지하고 더 잘 걷게 될까. 아니다. 방법을 기억도 못 할뿐더러 기억한다고 해도 이게 맞는지 신경 쓰여서 제대로 못 걷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분석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방법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취약한 부분이나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는 좋은 예문이 풍부하여 예문 자체가 배경지식을 얻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콜럼버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 선물에 관한 명상, 간디의 물레, 연비, 아날로그와 디지털, 정녕 문명충돌인가,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데, 고령화 논의에서 빠진 해법 등등 대부분 교수들이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양질의 글이다. 또, 쉬어가는 페이지에서 바른 우리말 표기법을 알려주고 있어 우리말 표기법에 대한 상식을 기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만의 가장 큰 장점은 페이지 마다 옆 가장자리에 5cm 가량 여백을 두고 이 여백에 그 페이지에서 중요한 문장(핵심 문장)을 뽑아 따로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고, 이 여백에 있는 문장들만 쭉 훑어보면서 복습할 수도 있어서 좋다. 그리고 여백이 있어 책을 읽으며 메모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11년 전 내가 이 책을 샀을 때는 1판 1쇄였는데 최근에 서점에 가서보니 56쇄나 찍었다. 그동안 좋은 글쓰기 책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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