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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를 읽고
(손영운 글, 최정규 그림/ 김영사) 세월을 거슬러 기억을 되짚어보면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문학작품에 ‘이상향’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수업시간에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이란 어떤 곳인지 물으셨다. 그 때 나는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고 좀 당황하여 ‘저는 환경오염이 없는 곳이 이상향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 나서 며칠 동안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라든가,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가 잘 사는 나라라든가 하는 좀 더 그럴싸한 대답을 할 걸 하고 말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환경오염이 없는 곳을 이상향이라고 말하다니... 선생님도 내 대답에 그냥 웃고 마셨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살았던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어떤 곳을 이상향(=유토피아)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에 앞서 먼저, 토마스 모어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 하에 ‘유토피아’라는 책을 저술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법관인 아버지를 둔 모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고 그 뒤 하원 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했는데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헨리 7세의 세금 정책에 반대하다가 의원직을 잃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정치에서 손을 뗀 후 학문의 세계로 빠져들어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고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모어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였고, 신앙생활에도 열심이었다. 귀족이고 재산이 많았음에도 세속적인 안락에 빠질 것을 우려하여 항상 거친 모직 셔츠만 입는 등 결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양로원을 세워 불쌍한 노인들을 보살폈다. 또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변호 활동을 하여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다가 헨리 8세가 국왕으로 즉위한 후부터 모어는 다시 정치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데 헨리 8세가 모어의 공정하고 치밀한 업무능력을 높이 신임하여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원장 겸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상서경의 자리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5년 만에 그는 반역죄로 체포되고 사형 당하였다. 왜냐하면 헨리 8세의 옳지 못 한 행위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을 당하기 전 차마 사형 집행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형 집행관에게 “힘을 내게. 자네의 직책을 과감하게 수행해야 하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수염은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두고 모어의 친구였던 네덜란드의 유명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토마스 모어, 영국의 수상 그는 눈보다 희고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 영국에서는 그가 가진 천재성을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5세는 “나는 그런 훌륭한 협력자를 잃는 것보다 차라리 내 영토 중에 가장 아끼는 도시를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 했다고 한다. 1935년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그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모어가 살던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백성들은 왕과 귀족들의 착취와 억압, 전쟁 등으로 참 힘든 삶을 살았다. 특히, 당시 영국은 양모 수출로 큰돈을 벌었는데 이 때문에 지주들이 농경지를 전부 목초지로 바꾸는 바람에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배가고파 먹을 것을 훔치기라도 하면 사형을 당하였다. 이렇게 절망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백성들은 분명 하루 빨리 좋은 세상이 오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모어는 백성을 사랑한 관리로서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토피아’를 지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역사적인 사실과 실존 인물들을 이야기 곳곳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구성을 해 놓았다. 모어가 외국과의 협상 차 네덜란드로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라파엘이라는 사람을 만나 라파엘로부터 그가 가 보았다는 유토피아 섬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초승달 모양의 섬나라인 유토피아는 54개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마다 공무원 200명이 선출되고, 그들이 시장을 뽑는다. 시장은 권력을 누리는 자가 아니라 제도를 관리하는 자다. 시장도 일반 시민과 같은 옷을 입으며, 한 다발의 곡식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자신의 관직을 드러낸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국민이 노동을 하는데 하루에 6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낸다.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교관, 성직자, 시장 등인데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체 국민이 전부 일을 한다. 유토피아에는 돈이 없고 물품은 상점에 요청하여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지급받는다. 물자가 풍족하고, 필요한 만큼 공평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고 거지도 없고 지역 격차 같은 것도 없다. 금과 은은 가치 있는 금속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금속이며, 철이 더 유용한 금속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금으로는 요강 같은 것을 만들고, 노예들에게 금관을 씌우고 금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게 한다.(범죄자는 노예가 된다.)보석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래서 외국의 사절들이 올 때 금으로 장식하고 있으면 노예들이 왔다면서 놀림을 받는다. 그 밖에 여러 제도가 있지만 그 내용들은 생략한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과 ‘좋은 곳’이라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이상의 나라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참 역설적이다. 모어가 그린 이상 국가의 제도는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남의 사상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자신이 먼저 그러한 사상을 생각해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500년 전에 모어가 한 생각은 분명 엄청난 혁신적인 발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할 것 같다. 지금이야 남녀평등과 인권존중, 모든 인간의 행복 추구 등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그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모어가 죽은 후 300년이 지나서야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주장했던 것을 봐도 모어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였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유토피아’보다도 저술자인 ‘토마스 모어’로 인해 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가난한 사람처럼 살았고, 자신의 것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는데도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차라리 죽는 것을 택했던 기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땅 어디에도 없는, 실현 불가능한 좋은 세계를 꿈꾸기보다 장차 나타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싶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오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평화의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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