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고
(출판사 –열린책들)
발자크의 대작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90편의 소설 중 단연 으뜸이라는 <고리오 영감>을 읽어보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19년 프랑스 파리. 허름한 보케 하숙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하숙을 하고 있다. 왕년의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은 과거에는 부유하였으나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두 딸이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떼어주고선 싸구려 하숙집에 기거하고 있다. 두 딸들은 사교계에 드나들고 몸치장을 하느라 돈을 펑펑 써대고, 애인의 빚을 갚아주느라 돈이 부족하여 결혼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 두 딸들은 평소에는 아버지를 찾아오지도 않고 아버지가 자신의 집에 오는 것도 꺼려하는데 돈이 필요할 때만 아버지를 찾는다.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간이라도 빼어줄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딸들이 달라는 대로 돈을 대 준다. 한편, 보케 하숙집에 기숙하고 있는 시골출신의 대학생 외젠은 친척 누이의 도움으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고리오 영감의 아름다운 두 딸들(첫째딸-아나스타지, 둘째 딸-델핀)을 알게 되고, 고리오 영감의 비밀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고리오 영감의 첫째 딸에게 접근했는데 그가 그녀의 치부인 고리오 영감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다. 그 뒤 둘째 딸 델핀에게 접근을 했는데 델핀은 그를 사랑해주었다. 고리오 영감이 죽을 때 두 딸들은 핑계를 대며 아버지를 찾아와 보지도 않는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대학생 외젠과 비앙숑만이 고리오 영감을 불쌍히 여기고 고리오 영감을 끝까지 보살펴 주지만 영감은 결국 죽고 만다. 사교계에 진출하여 성공하려던 꿈에 부풀어 있던 외젠은 사교계의 추잡하고 어두운 모습들을 본 뒤 귀족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낀다.
이 작품은 자식이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은 뒤 부모를 나 몰라라 한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어왕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리어왕에겐 착한 딸이 하나는 있었던 반면 고리오 영감에겐 착한 딸이 하나도 없다. 또, 리어왕이 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딸들을 저주했던 반면 고리오 영감은 배신을 당한 걸 알고도 끝까지 딸들을 감싸고 돈다. 딸들이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하는데도 딸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고리오 영감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딸들의 행태는 짐승만도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병든 영감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하숙집 두 대학생 외젠과 비앙숑은 정말 순수했다. 그런데 외젠이란 인물은 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사교계에 진출하려고 귀부인을 유혹하려들더니 델핀을 정말로 사랑했다가 나중에는 사교계에 환멸을 느꼈다가 다시 사교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모습이 좀 이해가 안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돈만 아는 다른 파리 남자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아 백만장자가 된 빅토린을 선택하지 않고 빈털터리 귀부인인 델핀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그 당시 파리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썩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결혼을 했는데도 남편과 아내가 각각 정부가 있고 서로가 그걸 알고도 그냥 그렇게 지내니 말이다. 극장 관람과 몸치장, 무도회, 실내장식, 마차, 사치, 쾌락과 향락, 돈, 정부. 이런 것들이 그 당시 파리 귀족들이 즐기고 추구하던 것들이다. 도대체 자식이 뭐길래 자식이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데도 부모는 그렇게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줄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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