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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요절 전 12:13
발췌문헌 여호사밧의 기도(스탠리 게일,규장,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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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보다 인생의 고뇌를 더 정확하게 포착하여 훌륭하게 표현한 사람은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절규>(The Scream)는 인생의 한 시점의 정지화면을 묘사할 뿐이지만, 그 그림은 통제할 수 없는 파열의 감정으로 관람자를 기습한다.

물결이 치는 것처럼 길게 여려 방향으로 갈라진 필치는 혼란스커운 난맥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세상을 나타낸다. 하늘의 붉은 색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위에서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소란스러운 세상에 의해 유발된 공황 상태를 가리킨다. 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절규는 침묵의 절규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절규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가? 그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저 제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차 없이 그를 공격하는 인생뿐이다. 그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환경은 그가 겨우겨우 간신히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그는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구약의 전도서 내용을 뭉크의 작품 <절규>보다 더 훌륭하게 표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도서에서 후렴처럼 반복되는 어구를 따라 해 아래서 인생을 볼 때,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우리 인생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덧업고, 포악하며, 불공정하다. 인생의 구덩이 밖으로 나오려고 흙을 파내면 파낼수록 구덩이 벽이 와르로 무너져 더 많이 파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우리는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그 사람, 홀로 고립된 그 사람, 귀를 틀어막은 채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그 사람, 한 번 보면 짓누르는 무정한 인생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가 온 힘을 모아 낼 수 있는 소리는 절규뿐이다.

그러나 믿음은 인생에 대한 완전한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빌려준다. 믿음은 부당하고 불공평하한 인생의 모든 것을 본다. 믿음은 우리를 공격하는 파괴적이고 압도적이며 우리 힘으로 저지할 수 없는 인생의 위력을 본다. 그러나 믿음은 또한 전도서 기자가 우리를 데리고 가는 곳을 바라본다. 우리는 '해 아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본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보기 위해, 영원토록 존재하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기 위해 창조된 세상(해 아래 있는 것들) 너머로 시선을 향한다.

전도서 기자는 우리를 위해 요점을 설명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본래 속한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피조물의 태도를 취하고 피조물의 한계와 책임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믿음은 용기를 발견한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며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인생의 혼란스러움 가운데서 의미를 발견하며, 인생의 어리둥절함 속에서 목표를 발견하며, 그저 무의미하게만 보이는 인생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 이상, "여호사밧의 기도"(스탠리 게일, 규장문화사, 2012년, pp. 16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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