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신앙고백
순교의 가치!!!
UBF | 기도요청 | 주일말씀 | 게 시 판 | 안암까페 | 페이스북
UBF해외|한국|모바일
양마가선교사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UBF공식까페
 
UBF > 안암 > 새벽이슬
관련주제 십자가
관련요절 고전 1:18
발췌문헌 교회다움(팀 체스터,IVP,2012년)
ㆍ조회: 924  
어리석은 신앙?
파스칼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 자기애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 이 자기애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 존재에 전염되었다.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고 진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패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듯이 자기애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계몽주의가 전면에 내세우는 주된 질문은 인식론에 관한 것이다. ㅁ라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감히 진리를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칼은 "본질적인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식론적(지식과 관련된)인 것이 아니라, 구원론적(구원에 관계된)인 것이다. 지식의 한계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데 실패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또 한 가지 문제는 하나님이 숨어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 그저 알기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숨기신다. 파스칼은 기독교의 모호함을 찬양하는데, 이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기독교의 '어리석음'이다. 이런 모호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갈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숨기고자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당연히 예상되는 특성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모호하다. 우리는 오직 믿음이라는 선물을 통해서만 십자가의 수치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분별한다. 십자가는 이성적인 변증에 있어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만약에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해야만 한다면, 결국 기독교를 반박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반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어리석게 만드셔서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숨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십자가에 달려 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드러내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숨긴다. 청교도인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줄거움에 자기 마음을 두는 사람은 그분의 길을 대부분 안다. ... 사랑이야말로 진리를 가장 즐거워 한다."

마르틴 루터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일련의 논제들과 설명을 통해 '십자가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19번째 논제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된 것들에 근거해서 해석하려는 사람은 신학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루터가 제기하는 질문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과 영적인 체험들 그리고 기적이다. 하지만 루터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에 관한 뭔가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지식은 사람들을 우쭐하게 만들어서, 그 이상의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이런 지식은 "사람에게 결코 충분하지 않고, 또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알 수 없단 말인가? 만약 보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루터는 상반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감추어진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은 고난과 십자가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수치 속에 있는 영광이며, 어리석음 안에 있는 지혜, 약함 속에 있는 강함, 실패 속에 있는 승리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십자가의 신학은 의와 칭의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서 비롯된다. 루터의 위대한 깨달음은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정의의 개념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의 반대편, 즉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 이상, "교회다움"(팀 체스터.스티브 티미스, IVP, 2012년, pp.230~233)


     
윗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래글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Bookmark an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