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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UBF공식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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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문헌 교회(에드먼드 클라우니,IVP,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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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일차적 사명
섬기는 직분의 성령

그러므로 교회는 아들됨의 성령의 변화시키는 사역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주님과의 교통을 확보해 주시는 성령은 또한 우리가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섬김의 영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따라 섬기는 자들이다. 교회의 봉사는 세 가지 목표를 갖는다.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고, 양육으로 서로를 섬기고, 선교로 세계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각각의 목표를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는냐,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섬길 때 우리 각자의 은사가 특정한 부르심을 결정한다. 사도 바울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라고(롬 12:3)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바는 "나의 부르심에 따라서 사도로서 내가 말하노니 ..."이다. 그의 특별한 은사들이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준비시켜 준 것이다(롬 15:15-16).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봉사를 위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을 사용하라는 부르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수건에 싸서 묻어 두지 말아야 한다(눅 19:20). 청지기들(하인을 감독하는 살마들)은 신실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자신을 섬기거나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거나 심지어 만족과 성취감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은사들이 사용될 때와 장소를 스스로 정해서 주님께 요구할 수 없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일은 이루는 것이고, 우리의 은사를 최선으로 사용하느냐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물론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주실 것이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한 열린 문을 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재촉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사라'고 말한다(엡 5:16).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사명을 수핸하는데 도움이 된 자신의 장막 제조업을 천시하지 않았다.

성령의 사역을 진척시킬 때 우리는 자신의 자연적인 은산와 영적인 은사를 날카롭게 구분할 수 없다. 양자는 모두 창조주 성령이 주시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있던 능력과 봉사하는 중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새로운 은사들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은사들은 종종 자연적인 은사들이 갱신되고 고양된 형태를 띤다. 어거스틴의 설교가 우리를 아기 예수의 마구간으로 데리고 갈 때, 그가 주는 감동은 라틴 수사학에서 발휘되는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즉 성령께서 그의 품성과 환경에 모두 간섭하시는 것이다. 마린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에게 나타나는 강단에서의 마의 유려함과 영적인 감동을 구분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전자는 설교자를 높이 들어올리지만, 후자는 그를 두려움으로 겸손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안에 있는 의식의 어떤 스위치를 켬으러써 영적인 은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능하게 하실 것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지 우리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성령으로부터 왔으며 성령이 할수 없은 일이란 없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의 목적을 선명하게 해준다. 우리는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은사들을 발견하고, 또한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역할을 향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일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자녀를 가르치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혼란에 빠진 자에게 지혜를 공급하고, 오류를 고치고 위기에 빠진 부부를 도우며, 회사의 상사를 참아낼 뿐 아니라 그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일들을 위한 것이다.

천국의 우선성이 성령의 은사들의 사용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지금 말세에 있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행 2:17; 3:24; 벧전 1:10-12). 그리스도는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천상에서 이루신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의 보좌에서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은 하늘의 맛을 보게 할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줌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악을 대적하고 고난을 견디며 주의 오심을 고대하게 한다.

은사를 주신 것은 느긋한 여유와 복락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런 복들을 올 세상을 위하여 예비되어 잇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맡아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골 3:17).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매일의 일에서 상쾌한 자유를 얻는다. 두번 째 아담이신 우리 주님은 아담의 임무를 완수하셨고, 우리를 자유케 하셔서 문화적 사명 속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셨다. 하지만 우리의 부르심이 아무리 광범위할지라도, 성령께서 어떤 긴급 상황에서 오셨는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령은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검을 주시며,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전신 갑주를 갖춰 주신다(엡 6:10-18). 전도의 위임 명령은 문화적 승리의 긴 행렬에서 작은 자리에 차지하는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님이 자기 교회를 위하여 내리신 진격 명령이다. 추수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추수밭에 보낼 일꾼들을 모으라고 요청하신다. 주님은 파송하시기에 앞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감동시키시며 우리를 이끌어서 가게 하신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이 사명을 위한 것이다.

              (교회, 에드먼드 클라우니, IVP, pp. 74-75 에서 발췌함. 양식 말씀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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