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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문헌 말씀을읽다(이지웅,예수전도단,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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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는 다윗, 그러면 666은?
히브리어에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숫자를 의미하는 기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글로 마찬가지입니다. 한글에도 숫자를 표현하는 기호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라비아 숫자를 차용해서 표시합니다. 한글처럼 숫자를 표현하는 기호가 없는 히브리어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숫자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의 첫 번째 자음은 "1", 두 번 째 자음은 "2", 세 번째 자음은 "3"를 의미하도록 적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단어를 들을 때, 그 단어의 원래 의미와 함께 어떤 숫자를 동시에 떠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네 번째 글자인 "다렛"은 "4"을 여섯 번째 글자인 "바우/와우"는 "6"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어의 수는 몇이 될까요?
  다렛-바우-다렛(DWD)
이 단어는 4 더하기 6 더하기 4 해서, 14가 됩니다. 즉, 히브리어로 다렛바우다렛(DWD)란 단어는 14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우리가 매우 잘 아는 성경 인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14라는 숫자와 동시에 그 사람의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입니다. 이 단어는 아라비아 숫자 "1"과 동시에 사람 이름(김하나) 또는 은행 이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히브리 단어 "14"가 누구의 이름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다윗(David)입니다. 다윗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는 동시에 "14"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게 히브리어만의 독특한 표기 방식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도 이런 표기가 사용됩니다. 비히브리어권 독자가 읽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권 독자가 읽으면 대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 1:17)

이 구절은 히브리어권 독자들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이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다윗이요, 바벨로느올 사로 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다윗이더라"(마 1:17)

마태복음의 원독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렇게 표기한 것입니다. 666도 마찬가지입니다. 666을 들을 때, 유대인들은 숫자와 함께 특정 인물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666은 이렇게 됩니다.

NRWN KSR (50+200+6+0 +100+60+200)
이게 누구의 이름인 줄 아십니까? 바로 로마의 황제이자 지독한 기독교 탄압자인 "Nero Caesar"(네로 시저)입니다. 네로의 이름이 나타내는 수가 바로 "666"입니다.

A.D. 64년에 로마 대화재 때문에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어머어마한 박해를 가하자, 그때부터 네로 황제의 이름을 빗대어 "666"이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66을 조심해. 666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그리고 이 표현은 네로 황제가 A.D. 68년에 죽은 이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대상에 대한 표현으로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666"은 바코드가 아닙니다. 바코드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믿느냐'로 판가름 나는 문제입니다. 물론 바코드 때문에 본인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이 정부에 의해 통제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바코드를 받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합당한 선택입니다. 그런 견해에도 저도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코드를 몸에 새긴다고 구원이 취소된다는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분명하게 기억하십시오. 분명하게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바코드 따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 이상, <말씀을 읽다> (이지웅, 예수전도단, 2014년, pp. 1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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