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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히브리서1강
성경본문 히브리서 1:1-2:4
전한날짜 2018.09.09
ㆍ조회: 266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2018년 히브리서 제 1강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말씀 / 히브리서 1:1-2:4
요절 / 히브리서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지난 주일 히브리서 서론 공부를 통해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재발견을 위한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히브리 성도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전통적인 유대교를 믿다가 그리스도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구주이심을 믿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구원과 생명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자네, 예수를 믿는다며?” 하는 말을 듣고 멸시받게 되었습니다. 또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는가?” 하며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것이 편한 것 같았습니다. 또 거기에는 웅장한 성전도 있고 눈에 보이는 제사 제도 등 단순한 기독교와는 달리 뭔가 있는 것같고 그게 더 그럴듯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피상적임을 알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말해주며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도록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재발견하도록 돕고자한 것입니다. 저자는 자연히 이것을 위해 예수님의 탁월하심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모르시는 말씀을 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분이 아닙니다. 잘 들어보세요. 이 예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데요’  특별히 그는 유대교인들이 자랑하는 유대교의 많은 것들과 비교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논증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만 다른 어떤   신앙적 요소들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하는 것이 왠지 힘들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때는 없습니까? 혹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나보다 더 확신있어 보일 때는 없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로서 얼마나 탁월하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공부가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히브리서를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새로 알고 감사하면서 더욱 확신 있는 신앙생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I. 말씀의 계시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먼저 1,2a를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말씀으로 맺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자들로 속성상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이 말씀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옛날에 여러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죄와 사망 권세로 고통하며 소망없이 살아가고 있어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복이 될찌라, 천하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것이다” 말씀하시고 “네 후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시고 광야에서 말씀하시며 20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가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죄악되었을 때는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환상을 보여주시고 ‘누가 나를 위해 갈꼬’하고 말씀하셨고 이에 이사야는 ‘네가 가겠나이다’하고 응답하고 자기 백성들에게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사무엘, 다윗, 나단, 에스겔, 예레미야, 미가, 호세아 등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조상 대대로 말씀을 주신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민족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날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날의 마지막에는’이라는 말을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선지자를 안세우고 오직 그 아들 예수님만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오셨으니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시의 종결자이며 완성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이제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고 계시를 주셨어요. 천국에 다녀온 누가 그러는데 천국 도서관에 내가 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귀중한 책이 되어 있다고 하네요’ 하고 말하니 이게 가짜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로서 너희들을 가르쳐 구원하고 과천에 신천지를 세우게 하셨노라’하고 말하면 이것도 가짜 아니겠습니까?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이런 식의 가짜 선지자가 많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서 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이 말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말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하신 말씀이 곧 우리가 아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또 다른 계시의 말씀을 받고자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복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탁월성에 대해서 2b절부터 3절에서 7가지를 말합니다. 이 예수님은 어떻게 세상 선지자들과 구별되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만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다 물러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하 만유의 주인이요 실질적인 만물의 소유자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자시라는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도, 하늘도, 땅도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창조자로서 만물을 하나 하나 자세히 다 아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인격적으로 다 아십니다.
셋째, 이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십니다. 광채는 태양처럼 아주 세차기 비치는 빛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차게 비춥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조금도 어둠이 없으신 분이시오 하나님의 영광 자체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그 본체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형상’이란 빼박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적 속성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속성 자체를 찍어내듯 온전히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에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9)
다섯째, 예수님은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것은 지구가 23.5도 기울여저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과학의 발견이지만 그것이 지금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그렇게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역사의 변천이 어떠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어김이 없고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자리고 가을에 거둡니다. 오늘 아침 내가 예배를 왔다면 그것은 주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붙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주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나 안믿는 자나 주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다 붙드시고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섭리 주관하십니다.
여섯째, 우리 주님을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제사제도를 통해 속죄제를 드리게 했지만 정작 우리를 죄에게 온전하게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며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이 예수님은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의 통치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하시고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아들의 위엄을 취하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우리가 사도신경에게 고백하듯이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한마디로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만왕의 왕이요 주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성도들은 이제 유대교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시오 온전한 계시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누구의 말을 들어야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믿고 순종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자는 영생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II.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예수님
본문 5절부터는 갑자기 천사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천사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비교 대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뭐가 어떠하길레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위대한 피조물 둘을 들었는데 하나는 천사요 다른 하나는 모세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천사와 모세를 예수님과 비교하는 글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위대한 중보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여 유대인들은 이들을 높이 존경하였고  심한 경우는 골로새서 2: 18절에서 나온대로 천사를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 구약을 보면 천사는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2장 6절을 보면 시내산의 율법의 말씀도 천사들이 전하여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이사야 6장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날개가 여섯인 스랍들이 장엄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천사는 신령한 존재요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를 보면 천사 미가엘이 하나님의 군대를 이끌고 원수의 세력과 싸우러 와 승리하기도 합니다. 또한 구약 성경을 보면 곳곳에 천사가 나타나 신령한 능력을 행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무리 그렇다해도 천사는 예수님에게 비교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조목조목 인용하며 그들의 신앙을 바로 잡아주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신 분으로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4절).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때에 천사 중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어느 천사에게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얻고 그것을 주관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천사들의 경배를 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맏아들을 이끌어 그에게 온 세상을 맡기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천사를 신비하고 능력있는 존재로 여겨 경배하고자 합니다. 요즘도 카톨릭에는 천사 숭배가 있다고 합니다. 기도를 잘 들어주는 천사가 있어서 이 천사 이름으로 보내는 기도문이 교회에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천사가 아무리 능력이 많고 신비해도 예수님께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잉태될 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을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그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났을 때에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모여 주의 탄생을 기뻐하며 하늘에는 하나님의 영광, 이 땅에는 평화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셋째로 천사들은 다만 하나님 역사의 사역자일 뿐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때로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불꽃이 되기도 했습니다. 천사들은 크고 세찬 바람이 되어 홍해를 가르고 그 바닥까지 건조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게 했습니다. 또한 다니엘의 친구들이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우상에게 절하지 않아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 그때의 불꽃은 그들은 조금도 태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주의 명령을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천사들은 때로는 천둥이며 번개며, 바람으로 주의 역사를 섬길 뿐입니다.  저는 이번에 일본을 강타한 태풍 ‘제비’를 보면서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았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쳐 마을을 덮기도 하고 차가 뒤집히고 이리저리 굴러가고 지붕이 날라가고 벽이 무너지고 공항이 물이 잠겨버렸고 전기가 나가 일본의 일부 도시는 깜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온 대로 하나님이 천사를 사역자 삼아 이런 바람이 일어나게 했다면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것을 천사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것에 비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8절과 9절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를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좌에 앉히시고 기뻐하시며 영원한 주권자로 임명하시고 그 누구보다도 이렇게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천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시오 오히려 천사들을 사역자 삼으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천사보다 못하게 여기고 다시 유대교로 간다는 것은 뭔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일이요 이것은 실수요 더 할 나위없는 어리석음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영원한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을 태초에 땅의 기초를 두셨고 하늘도 손으로 지으셨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과 피조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지으신 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다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변하여 낡아지기 때문에 갈아 입어야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세세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만물은 영원하신 예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하건데 언제 하나님이 천사 중 하나에게 ‘내가 네 원수를 내 발로 밟게할 때까지 너는 네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언제 천사들 중 누구에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으라하셨고 네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천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14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천사는 보좌에 앉는 존재가 아니라 구원역사를 위해 다만 종과 같이 섬기는 영입니다. 특별히 우리들같이 구원받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다. 만일 이 말을 지금 천사들이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멘, 그렇습니다’하고 반응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이렇게 구속받은 우리도 천사의 섬김을 받는데 어찌 우리 주 예수님을 천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갈등하며 흔들리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이런 권면의 말을 합니다. 다함께 2:1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들은 이제까지 복음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로 이룬 것입니다. 이 복음을 유념하는 것, 이것이 곧 기독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한다’는  이 말은 ‘pay the most careful attention to what we have heard’ - 여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숙고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어떤 것을 복음보다 더 생각한다면 그는 흘러 떠내려가고야 말 것입니다. drift away- 마치 닻이 없는 배와 같이 세상 이런 저런 풍파를 따라, 유행을 따라, 걱정이면 걱정 되는대로, 유혹이 오면 오는대로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돈에 대한 걱정과 욕심이 복음보다 앞서면 우리는 복음을 놓치고 흘러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명예나 정욕 등의 문제에 사로잡혀 복음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이내 죄와 미궁에 빠져 흘러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요즘은 이단의 유혹에 빠져 흘러 떠내려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느 지방에 있는 한 대학교는 이런 이단의 세력이 그야말로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교리에 빠져 흘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나 모임이 이런 이단 사설에 빠져 흘러 떠내려갔는지 모릅니다. 이런 집단은 지금 흔적도 없습니다. 지난주부터 우리는 웨스티민스터신앙고백을 공부했는데 이것은 바로 주께서 이루신 복음에 더욱 유념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가 잘못된 신앙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은 천사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의 말씀도 견고히 붙들지 않고 범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이에 따른 마땅한 심판을 받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복음을 멸시한다면 그 누가 이에 따른 보응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이 구원은 처음에는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요 이어 사도들이 확증해준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 여러 가지 능력으로,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그 뜻대로 성령을 나누어주시면서 이 구원의 복음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성도들은 이 권면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이 말씀은 충심으로 그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경고는 단순히 겁박하려고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볍게 여기고 옛날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려 그들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또 예수님이 주신 이 복음을 우리의 삶속에서 얼마나 숙고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속에 생기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복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복음을 깊이 알고 견고한 구원의 반석 위에 설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어떤 것에도 흘러 떠내려가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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