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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히브리서 제 2 강
성경본문 히브리서 2:5-18
전한날짜 2018.09.16.
ㆍ조회: 173  
죽음의 고난을 맛보신 예수님
2018년 히브리서 제 2 강
                 죽음의 고난을 맛보신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2:5-18
요절: 히브리서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우리가 알듯이 히브리서는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히브리 성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의 상호 결속을 대단합니다. 이들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유대교를 떠나 다른 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아주 거센 종교적 핍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몇 사람의 개종이라도 그것이 민족의 하나님이 여호와께 대한 배교요 이것은 또 민족 전체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변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많은 회유를 겪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많은 히브리 성도들이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을 위해 편지를 쓰면서 기독교의 우월성, 특별히 예수님이 참된 그리스도이심을, 그리고 그 탁월성을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믿은 예수님에 대한 재발견을 돕고 그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계시의 완성자요요, 이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물의 상속자이며, 창조주시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등 그 탁월성에 대해 7가지를 배웠습니다. 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높이 숭상하는 천사들과 비교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피조물이요 예수님은 창조주요 주권자로서 천사보다 탁월한 근본 하나님이심을 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이 놀라우신 예수님이 왜 사람이 되셨는가에 초첨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말 천사보다도 탁월하신 분이 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왜 사람이 되어 고난을 겪으셨을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예수님은 죽음까지 맛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목적은 의미심장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것, 이것이 기독교 은혜의 핵심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잘 이해할 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확신에 찬 견고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이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배워보겠습니다.  

먼저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장차 올 세상- 곧 하나님 나라를 천사에게 복종하게 하고자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복종케하실까요? 6-7절에 인용된 말씀은 시편 8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원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얼마나 영화롭게 하셨는가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창조주시니 온 세상은 그 발 아래 복종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장차 올 세상도 예수님께 온전히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8b절에 의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보기에 만물은 아직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사람이 죄를 사랑하고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부도덕하며 폭력이 만연해 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않을 뿐 아니라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강력하게 핍박했습니다. 이렇게 만물은 예수님께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세계관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 4 기둥이 무엇입니까? ‘창조-타락-구속-재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타락해서 지금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천사보다 못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일까요?
첫째,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방금 말했습니다. 창조-타락- 이 다음이 구속이지 않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고 하심이라. 여기서 ‘죽음을 맛 본다’는 말은 죽음 근처까지 갖다가 ‘그것 참 죽을 맛이군’하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겪어보고 실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생각하시고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영접하고 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고 죽어가실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절규하며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천지의 창조자요 주권자가 왜 이런 죽음의 고통을 맛보셔야했을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죄값을 치루고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소나 양을 바치고 이것은 사람의 죄값으로 죽은 것이라며 그러므로 이제 사람을 용서해야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 대신 양이 죽었잖아요. 내 대신 우리 염소가 죽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용서 받아야 해요’하고 말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지 어찌 다른 피조물이 대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고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위해 온전한 대속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이제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몸이 없는 천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구약을 보면 천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고 계시 차원에서 잠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언제 사람 같이 목이 마르고 피곤해서 우물가에 떨썩 주저앉은 적이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쳐 ‘내가 목마르다’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천사는 로마 군병에서 뺨을 맞은 적도 없고, 몸에 못이 박힌 적도 없고 죽은 적도 없습니다. 아니 몸이 없어서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천사보다 못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태어나서 죽으실 때까지 우리 인생들의 모든 일을 몸으로 겪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까지 맛보시면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이들을 구원해 아들 삼으시고 이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시는데 이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한 구주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 이들을 위한 고통을 겪게 해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구원자가 되게 하신 것은 참으로 합당한 일입니다. 여기서 ‘합당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죄를 결코 그냥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시되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게 하시어 공의를 나타내셨고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셨으니 이로서 하나님은 공의와 긍휼을 온전히 세우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합당한 구원의 창시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천사보다 잠시 못하게 하시고 이 큰 죽음을 맛보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사람이 아무리 자기 친구가 군대에서 고생한다고 해도 그를 불쌍혀 여기 대신 군대에 들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면회 몇 번 갈 시간도 내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이 되어 이 죄악된 세상에 내려와 더 힘든 고난을 겪으시고 죽으시며 우리를 대속하시고 구원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니, 한 일이라고 하나도 없는데 그 이름을 힘입어 영광의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어린양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며 영원토록 즐거움의 찬송을 하며 살게 하시니 그 사랑이 놀랍습니다.  

이사야서 53:5,6절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바로 나의 이기심과 정욕, 미움과 분노, 시기심과 혈기, 무정 무자비, 원망 불평, 불신의 죄 때문에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고통을 맛보셨습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죄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죄값을 치루어야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이처럼 예수님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묵묵히 죽음의 고통을 맛보셨습니다.  

9b절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본질상 죄와 죽음과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이렇게 오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우리에게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14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다른 피조물을 구할 만큼 이 진노의 짐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훔서 1:6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가 깨지는도다.’  그런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온 몸으로 담당하시고 우리를 이 무서운 죄의 심판에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성경학자 존 머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이 그 진노를 아들에게 쏟아 부으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과 그의 죽음심 앞에 아무 말 말고 다만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뿐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나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찬송가 304장)

둘째로, 예수님이 고난을 맛보신 것은 우리를 형제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기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을 말하고 ‘거룩하게 함을 입을 자들’은 곧 성도들, 곧 우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둘 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한 근원에서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는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거룩하지 않은 우리를 ‘거룩하다’하시고 “야~ 이제 우리는 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난 형제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똑같은 부모님에게서 나도 형제들끼리 사이가 나쁘면 얼마나 나쁩니까? 아이고, 저런 녀석이 내 형제라니 창피해서 못살겠다며 아예 모른 척하고 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기를 죄인 취급해서 그들이 있는 곳 근처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대화하시며 그들을 섬겨주셨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니, 어떻게 저런 죄인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단 말인가!’하며 이것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래도 예수님은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욕먹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아무리 더러운 죄인이었다 해도,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 목슴을 바쳐 피 흘려 죽으시며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시고 하나님도 ‘내 하나님,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예수님은 우리를 기꺼이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예수님이 형제 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주의 이름’을 알려주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그 이름을 선포해 알게 하는 것만큼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죄와 사망 권세에 빠져 불안과 허무, 두려움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 자기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또 자기를 위해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하나님을 알 때 이 땅에서의 삶이 기쁘고 또한 복되게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주의 이름, 곧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해주는 것, 곧 그 이름을 선포해주는 것은 그 사람 일생일대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변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그들에게 ‘주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아니라 주의 이름, 그의 사랑을 알게 해주며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역시 그들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성경을 가르쳐주는 이유도 바로 이것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예수님과 같이 형제들에게 자매들에게 이렇게 주의 이름을 선포하는 많은 목자님들이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 최고의 선물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요 목자가 되어 주의 이름을 선포하는 우리는 참으로 세상에 복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본을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번에는 자녀 삼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이로 보건데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형제로, 자녀로 모든 것을 다 주며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형제 삼고 혹은 자녀 삼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서입니다. 14,1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람은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얼마나 두렵고 슬픈 것입니까? 사망은 언제나 절망, 허무, 두려움, 불안이라는 맹독의 가스를 우리 마음에 마구 내 뿜어댑니다. 이 죽음의 독가스을 맡으면 우리는 일순간에 허무에 빠지고 절망하고 삶의 무의미에 빠져 고통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죽음의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죽음의 세력만큼 우리를 강하게 끈질기게 우리를 붙들고 짓누르는 것이 있을까요? 제 친구 중에 한명은 어찌하든지 죽음을 극복해보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죽음이 오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죽음의 세력이 갑자기 덮쳐오면 이제까지의 도를 닦은 것도 다 소용없고 팔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지고 맙니다. 이런 만큼 우리는 한평생 이 죽음의 세력에 매여 종노릇 합니다. 누가 큰 권세를 가지고 ‘너 죽을래?’ 하고 겁박하면 알아서 꼬리를 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마귀의 가장 큰 권세요 무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혈육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담당해주시고 이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부활하시므로 실제 마귀의 죽음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사망 권세에 시달리지 않고 마귀 권세를 이기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 확신 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천사를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 곧 약속의 자녀인 우리를 붙들어 주려 하심입니다. 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 대신 죽음을 맛보시고 부활하시어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 (찬164장) 이렇게 친히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의 형제와 같이 되어 사람이 되고 범사에 우리의 모든 형편을 다 체험하고 아시니 이 예수님은 우리를 잘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되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더 나아가 그 몸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이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워하시고 힘들 때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시고 때를 따라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죄와 유혹이 다가올 때 이기게 도와주시고 쓰러질 때는 또 일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롬8:26).

그러므로 히브리 성도들은 지금 잠시 겪는 신앙적 핍박에 낙심하고 흔들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예수님은 오셨는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일이 아닙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겸손하셔서 천사보다 잠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이 되어 죽음을 맛보신 구주 예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재발견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 구원을 노래하며 구원의 진리 위에 굳게 서야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고난의 철학, 곧 십자가 철학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인내하며 이기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 십자가 철학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할 때 세상 영광을 보여주면서 너, 나에게 절 한번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야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였느니라’하며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마침내 참된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쉬운 길, 거짓된 세상 영광을 주겠다는 세상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이 가신 그 고난의 길을 함께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우리를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실 수 있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 이것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영광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 마음에 위로를 더하시고 확신과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범사와 우리와 같이 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형제요 자녀 삼으신 이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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