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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히브리서 제 6 강
성경본문 히브리서 7:1-28
전한날짜 2018.10.14.
ㆍ조회: 202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2018년 히브리서 제 6 강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7:1-28
요절: 히브리서 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지난 4,5장에서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예수님은 점 없고 흠 없는 대제사장이요 또한 우리의 연약함에 깊이 동참하시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때를 따라 돕은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에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라고 하셔서 참 감사한데 혹시 어느날 우리에게 ‘나는 이제 대제사장 직무 임기를 마쳤습니다’ 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은 아닐까요? 만일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우리 곁을 떠나면 이번에 우리는 어디로 누구에게 가서 은혜를 구할 수 있을까요? 이 예수님 같은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실제적으로 5:10에 나오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가지는 이 말씀을 시작으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 되심을 논증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 점에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유대인들은 제사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레위 지파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자손들 중에서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제사장이 꼭 레위지파에서만 나와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창세기 14장에 나온 멜기세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입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롯을 구할 뿐 아니라 빼앗긴 것들도 다 찾아 개선장군처럼 돌아왔습니다.  그때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에게 주며 그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19,20).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살렘, 곧 ‘평강’이라는 나라의 왕이십니다. 예수님도 사랑과 공평으로 통치하시는 ‘의의 왕’이요 나귀 타고 입성하신 ‘평강의 왕’이셨습니다. 멜기세덱도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듯이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늘의 복으로 축복해주십니다. 이런 점에서 멜리세덱은 여러모로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이 말은 멜기세덱이 진짜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영원히 살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은 분명히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없을 리 없고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압니까? 그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의 족보를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멜기세덱은 사람들의 기억에 항상 제사장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종으로 영접하고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얼마나 높은 사람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게 난 자들입니다. 이 말은 레위 지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크게 번성하여 430년을 지내다가 출애굽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 숭배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진노하시자 이들을 심판하고자 하셨는데 이때 레위지파 사람들이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하나님 편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레위 지파의 헌신을 보시고 이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족속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진을 칠 때 레위 지파가 성막을 섬길 수 있게 가까이 진을 쳤고 다른 지파는 모두 그 밖에 둘러 진을 쳤습니다. 다른 지파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반드시 레위 지파를 통해서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으로 정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지파에게 그들이 거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바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 지파를 포함해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아브라함은 얼마나 높은 조상들입니까? 그들은 족보를 귀하게 여기며 언제나 아브라함은 자기들 민족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숭모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새까만 후손들입니다.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 이후 500년이 지난 후에야 제사장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고 멜기세덱은 그에게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더 높은 것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같은 제사장이라도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 보다는 멜기세덱에 훨씬 높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이떤 점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듯이 예수님도 역시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가자는 멜기세덱의 이런 점을 가져와 예수님께 적용합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우리가 태어나듯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으시며 그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과 같은 계열로 보고 그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히브리서 기자의 날카로운 신학적 통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좀 억지같다는 생각이 드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히브리서 기자 혼자만의 통찰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아주 명백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22절에 나오는데 이 말씀은 이것은 이미 시편 110:4에 나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맹세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말씀에 나온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영원하다’ 이 말은 신적인 표현으로 실제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영원하다’는 말을 우리 삶 여기저기에 잘 붙입니다. 영원한 우정, 영원한 사랑, 영원한 조국 등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같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제한된 존재요 마음도 때가 되면 변하고 안변해도 때가 되면 죽는데 이렇게 ‘영원한 사랑’ 등을 말하는 것은 사실 올바른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이 지금 그러니 알아달라는 표현이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영원한’이라는 말은 신적 용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할 때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 같이 영원히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은 얼마나 높습니까? 앞에서 배웠듯이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천사보다 높으시고, 모세보다 높으시고, 아브라함, 아론, 레위지파 제사장들보다 훨씬 높으십니다. 미가서 5:2절에 보면 “예수님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는 실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분이십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으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권력 있는 사람이 조금만 나를 도와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업가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대주고 그를 의지합니다.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법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영원히 높은 것은 없습니다. 좀 더 영적인 사람들은 목자님을 의지합니다. 목자님은 아무래도 자기보다는 영적으로 좀 더 높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이나 목사님도 다 사람이요 다 죄인인데 우리 모두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뿐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것을 높다하여 의지합니다. 제 친구 중에 경기도 의원을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우리 은사님이 그 지역을 지나가다 과속에 걸렸습니다. 이때 흰색 헬멧을 쓴 경찰이 와서 딱지를 떼려고 했습니다. 이때 은사님은 제자가 여기서 도의원인 것을 기억하고 ‘아~ 우리 제자 ***개가 여기서 의원인데... 말이야..’ 하고 한숨을 쉬면서 몇 마디 했답니다. 그랬더니 ‘아니, *** 의원님의 은사이십니까?’ 하면서 놀라고 경찰 오토바이가 엥~ 하고 울리면서 목적지까지 앞서 가며 잘 모셨다고 합니다. 대단한 권세입니다. 그런데 은사님이 나이 많이 드셔서 요즘 건강이 안 좋으신데 그 친구가 은사님을 구해줄 수 있습니까? 그냥 ‘선생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할 뿐입니다. 사람이 가진 지위는 사실상 결정적인 때에는 무력합니다. 사람이 언제나 사람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높아도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영원한 권세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시기까지 하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계명의 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병들고 늙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계명의 법, 곧 율법에 따라 그 후손이 그 제사장 직을 이어갔습니다. 아론이 처음 대제사장이 된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AD 70년까지 제사장이 83명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인간 제사장은 다들 속절없이 죽어갔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율법도 한계가 있습니다. 18,19a절에 보면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했습니다. 이 말은 율법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을 온전히 의롭게 하거나 영원히 구원해주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소나 양의 동물의 피로 대속하니 그것이 사람에게 온전한 구원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 the power of an industructible life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생명은 아무도 깰 수 없는 indestructible life입니다. 사람들을 불멸이라는 말을 여기저기 잘 사용합니다. 인터넷에 ‘불멸’을 입력하고 검색해보면 많은 불멸이 있습니다. 불멸의 가수 배호, ‘불멸의 명곡’, ‘불멸의 음악가 베토벤’ 그리고 ‘불멸의 이순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불멸하는 것이 있습니까? 더욱이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운명’을 작곡한 베트벤도 죽었고, 우리의 위대한 장군 이순식도 죽은지 벌써 450 여년이나 됩니다. 우리는 이들이 죽은 날에 기념 추도회나 제사를 지낼 뿐 그들은 이미 없는 사람들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은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떨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순신 장군이 아직 살아계시다면 일본 사람들이 아무 소리 못할텐데 이분이 죽으신 것을 알고 마음 놓고 독도는 자기 네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일에 대해 이제 이순신 장군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며칠전에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에서 국제 관함식 대회가 열렸는데 우리 해군이 배에 이순신 장군 깃발을 달았더니 일본에 그거 왜 달았느냐며 기분 나쁘다고 항의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이순신에 대해 신경과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맹세로 멜기세대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런만큼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죽으셔서 다른 사람으로 갈리어 그가 예수님을 이어 대제사장 직분을 하게 될 일이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24,25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앉아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은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가는 자마다 온전히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25).

우리에게 이런 갈리지 않는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를 사랑으로 일대일 해주던 목자님이 어느날 군대에 가버리고 목자가 갈리면 힘듭니다. 이제까지 함께 해서 나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이 목자님이 떠나버리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군대 간 목자님이 오셔서 다시 일대일을 하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선교사로 나가면 얼마나 힘들까요? 그리고 이 목자님도 때가 되면 죽습니다. 목자가 갈리면 힘들 듯 구약시대에도 자기와 친숙했던 목자같은 제사장이 갈리면 그 백성들도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확실하게 우리를 아시며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위 하늘에 계시고 지금도 열심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가 죽으면 부활하게 하시고 불멸의 생명, 영생을 주시니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구약의 율법의 의해 세워진 대제사장들은 약점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 먼저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 예수님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십니다(26). 이 예수님은 우리들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로서 사람들의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생명의 주가 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죄 없는 자기 몸으로 우리를 위해 제물로 드려셨으니 이 예수님 안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과거 시커면 죄인이었더라도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다 씻어 주십니다. 충만한 죄사함의 은혜와 함께 영생을 주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리고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믿고 용서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집단, 어느 한 시대만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대제사장이 아니십니다. 이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얼마만큼의 죄에 대해서나 우리들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앞서 말한 그 친구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오래 간만에 동창회에 한번 나가봤는데 그 친구가 나를 보더니 내 옆에 앉았습니다. “야, 갑자가 왜 이러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맛있는 것은 모아 내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사연인즉, 최후의 심판 때 자기가 죄인들 틈에 있을 때 내가 그 죄인들 중에 있는 자기를 보고 “어? 야, *** 야, 너가 왜 거기 있니? 너는 이리 나와!” 하면서 자기를 구원해줄 거랍니다. 이때 제가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요 그냥 용서받은 죄인이요 종일 뿐인데.. 나를 의지해서 구원받고자 하니... 예수님을 믿어야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이번에는 다른 친구를 가리키며 “너는 안돼”하고 말합니다. 말인즉 내가 그를 보고 ‘야, 너도 나와 왜 거기 있니?’하고 구해주려고 해도 내 옆에 있는 비서가 ‘목사님, 저 친구는 좀 곤란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은 죄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 이 노트에 그 죄가 빽빽이 적혀 있지 않습니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은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죄가 노트에 빽빽이 적혀 있어도 회개하면 예수님이 단번에 드린 그 제사로 단번에 구원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죄가 노트에 빽빽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위해 단번에 제사를 드려 우리를 구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시므로 더 이상 반복해서 제물을 드리지 않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이 다 지워주십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시고 우리를 위해 세우신 대제사장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들 드리므로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렇게 자기 몸을 드려 우리의 징계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평강을 주신 의의 왕, 평강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의 인생문제가 많이 있겠지만 이생을 끝내고 죽음을 지나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신 우리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을 만나고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되어 내가 들어갑니다’(찬 494). 한번 우리에게 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힘써 이 예수님을 찬양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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