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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히브리서 제 8 강
성경본문 히브리서 9:23-10:18
전한날짜 2011.10.28.
ㆍ조회: 204  
한 번의 영원한 제사
2018년 히브리서 8 강
                                                 한 번의 영원한 제사
말씀: 히브리서 9:23-10:18
요절: 히브리서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를 보면 ‘단번에’ 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영어로 once, 혹은 once for all 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번에 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생각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단번에’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구원의 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게 된 축복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주께 감사하고자 합니다. 특별이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분명한 정체성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이제 거룩한 백성이요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Ⅰ.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속죄 
24,2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해마다 성소에 들어가서 짐승의 피를 뿌려 죄를 속했습니다. 매년 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제까지 정말 많이 들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하나님께 나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것도 이만 저만 큰 일이 아닙니다. 죄는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그러니 자기들 같은 죄인들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이것을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속죄일은 지난 일년 동안 지은 죄를 돌아보며 제물을 드리고 속죄를 받는 날인데 이날이 다가올 때는 또 다시 많은 죄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은 대제사장으로서는 여기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죄인의 심정을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피를 뿌리고 지성소에 나가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난 해 용서해주셨는데 올해도 또 죄인으로 하나님께 나간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죄을 지을 때면 그때마다 속죄제를 드리고 대속죄일이 다가오면 이번에는 지난 일년간의 죄를 들고 나가자니 이런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아, 이 문제가 좀 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26b절을 보십시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세상 끝에 나타나 once for all – 단번에 모든 제물을 없애기 위해 자기를 십자가 제단에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짐승의 피와는 달리 우리의 죄를 온전히 사할 수 있었습니다(벧전1:19). 주홍같은 죄가 눈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같이 하얗게 됩니다(사1:18). 머리카락 수보다도 더 많은 나의 모든 죄가 단번에 없어집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에게 이 사실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죄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또 가볍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죄 용서를 받아도 별로 큰 감동이 없습니다. ‘내가 뭐 좀 잘못했기로서니 아니 용서 안하면 어쩔 거냐’며 용서 받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그리고 요령껏 죄에 대한 심판도 피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 좀 하려고 하면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입원하기도 하고, 잠깐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면 그동안 분위기가 좀 괜찮아질 것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머리만 잘 쓰면 이 땅의 법과 심판을 이리저리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머리를 잽싸게 굴려 이런 식으로 모면해 이리저리 처벌을 피해 온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다 끝나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요?

27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세상에 죽지 않을 사람이 없고 그 후에 심판 받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보좌 잎에 서서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기록된 대로 다 그 행위가 드러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을 보면 이 책이 양심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그 양심이 스스로 우리가 살아있을 때 행한 대로 그대로 다 고백하게 됩니다. 아무리 양심에 털이 난 사람이라고 해도 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이 심판은 무섭습니다. 성경은 이 심판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고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 죽는데 이 땅에서의 죄가 용서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두 번 죽는 것은 절망과 고통 그 자체요 여기에는 다시는 구원받을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기 전에 반드시 이 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아니면 정죄를 받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속에서 영원한 지옥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죽은 후에서만이 아니라 죄는 우리가 이 땅에 살 때도 우리를 얼마나 괴롭힙니까? 이 죄가 주는 중압감을 참으로 담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대로 멕베드가 사람을 죽이고 자기 손이 피로 붉게 된 것을 보고 공포에 떨며 독백하지 않습니까? “아 , 바닷물을 다 가지고 내 손에서 이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야, 내가 바닷물로 손을 씻는다면 내 손의 피가 온 바다를 다 붉게 만들고 말거야” 이 말은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어떤 것으로도 죄는 결코 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죄는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 자기 관속에 돈을 많이 넣어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염라대왕에게 돈을 많이 바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관한 유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헌금을 많이 하면 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돈으로 죄사함을 받고자 하다니 물질 만능주의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영접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외에는 아무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비로서 심판을 면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며 멕베드와 같은 절망의 절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이 땅에 살면서도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28a절을 읽어보십시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담당하셨다’는 것은 ‘뒤집어 쓰셨다’ ‘대신 심판을 받으셨다’ 는 뜻입니다. 이사야 53:6,7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내가 죄 값을 다 치루었다” “내가 형벌을 다 받았다” “이제 끝났다” 그래서 더 이상 제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더 이상의 짐승의 희생이 필요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흠없고 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그냥 이것을 믿기만 하면 그 십자가 피의 효력이 우리에게 미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해마다 짐승의 피를 뿌리며 두려움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하게 후련한 일입니까?
 
남성 화장품 광고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세면 후에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는데 단계별로 이것 바르고 그 다음에 저것 바르고 또 그 다음에 뭔가를 바릅니다. 그리고 화장품 가능에 따라 이런 것도 바르고 저런 것도 바릅니다. 아니고,,, 세수 하고 난후 얼굴 피부 보호하며 광택 내는 일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런데 이런 것을 싹~ 쓸어버리고 한 가지만 바르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이것 저것 안 발라도 됩니다. 이 화장품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메시지를 쓰느라고 가서 한번 봤습니다. 저는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그동안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름을 보니 세상에 이렇게 복음적인 이름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Only for man, all in one essence.’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only for man 남성 화장품이라는 것인데 all in one essence를 다르게 표현하면 essentially once for all! 단번에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줍니다. 남편이 죄 짐에 괴로워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 하면 사모님들은 이 화장품을 사주시면 됩니다. once for all. 저는 원래 세수하고도 화장품을 잘 안바르는데 이제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잘 바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것 하고 저것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once for all -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의 모든 죄를 그 피로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13-1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돌로 하나를 만드사 원소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습니다. 9:26b절에 보면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해마다 대제사장이 동물의 피를 뿌리며 지성소에 들어오게 하셨지만 이 불완전한 죄 사함을 언젠가는 끝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 속에서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 그 피로 모ᄃᅠᆫ 것을 완전히 끝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안되었던 것을 이렇게 끝판에 나타나 해결하셨습니다. 불완전한 속죄를 막판에 나타나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끝판 왕’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평균 자책점은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28b절에 보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처음 오셨을 때는 보혈을 흘리셨지만 재림하실 때는 그 보혈을 믿은 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Ⅱ.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장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거룩함을 얻게 되었는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이제까지 우리가 반복해서 배웠던 말씀입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사람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만일 온전하게 되었다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이제는 죄를 깨달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다시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제사를 드려야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죄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황소나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1절부터 4절은 제사와 제물의 한계, 그런 만큼 죄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다시 지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것을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에 대해 말합니다.

5-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이 말씀은 시편 40:6,7절에서 인용된 것으로 다윗을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제도는 온전한 죄사힘을 받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속죄를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신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히브리서 성경 원문을 보면  ‘당신께서 내 귀를 뚫으셨나이다’입니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뜻이 나오는 것일까요? 귀를 뚫는다는 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은 종이 주인을 떠나지 않고 헌신하겠다고 할 때 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종은 주인의 뜻을 위해 자기 몸을 예비해 드린 것이 됩니다. 그래서 70인 역은 이것을 의역해서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 앞에서 귀를 뚫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몸이요 하나님께 헌신된 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은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대로 오셔서 자신을 드려 우리의 죄를 위한 온전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 몸을 드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이것은 세상 죄를 위해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곱게 죽기를 원하지 비참하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었습니다. 만민의 비방의 표적이 되어 고통 속에서 저주스럽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예수님의 자세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셨습니다. 9a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7절 말씀의 실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저주를 알지만 이를 이루고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 방울이 피방울이 되기까지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시며 이것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 몸을 죄인들을 위한 산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시고자 온 마음을 다혀 순종하신 것을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만세전에 계획하신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자기를 드리신 예수님은 과연 우리들의 구주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안에 담긴 하나님께대한 충성과 사랑, 그리고 우리를 위한 산 제물이 되심을 놀랍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9b절을 보십시오. 이로서 첫째 것, 곧 구약의 제사제도는 폐하여졌고 둘째 것, 곧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한 온전한 속죄 역사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폐하다는 말은 set aside 옆으로 치워버리다 입니다. 7장 12절을 보면 ‘바뀌게 되었다’ changed 라는 말이 있는 것 이 표현보다 set aside 훨씬 더 강하고 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둘째 것이 세워졌습니다. established. 이로서 우리 구원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다시는 구약에서와 같은 그런 제사가 없습니다. 그길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신 구원의 길만이 이제 우리 앞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질 것이고 거기서 구약시대와 같은 제사가 드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옛날의 언약궤가 발견되었다느니 제물로 쓰일 붉은 송아지를 키우고 있다느니 별 소리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드리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폐하여진 것 아닙니까? 왜 그런 데에 관심을 갖고자 할까요? 이것은 이 편지의 수신자인 히브리 성도들이 옛 제사제도에 의미를 두고 그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폐하신 처음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세우신 establish 하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이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므로 우리가 누리게 된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거룩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님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도 단번에 거룩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제사장마다 자주 같은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애 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온전히 거룩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매일 서서 긴장하며 이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11). 그런데 12절을 보십시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명을 단번에 온전히 감당하시고 끝내셨기 때문에 제사장들같이 매일 서서 있을 피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원수들이 발등상이 되기까지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13). 14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거룩함은 예수님의 한번의 제사로 perfect forever 영원히 완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영원히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ᄋᅠᆻ습니다.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우리는 결코 거룩해질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가 죄인인 것을 더 깊이 깨닫고 절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거룩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거리낌 없이 나가 ‘아바, 아버지’ 하며 부르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 아닙니까? 우리는 영적인 존재라 하나님과 교제할 때 비로서 행복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사귐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이 사귐은 나를 창조하신 분과의 사귐이고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을 인도해주실 목자같은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이 사귐은 내가 생명을 얻고 인생의 열매를 맺는 사귐입니다. 내 삶은 은혜와 긍휼로, 진리로 채우주는 사귐입니다. 이 사귐은 거룩한 사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이루어진 고귀한 사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삶을 살라고 주 예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영생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둘째로는 새 언약이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5 16절을 보십시오. ‘또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예수님이 자기 몸을 십자가에 산 제물로 드리신 그날 이후에 성령께서 죄 씻음 받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므로 우리는 이제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진 새 언약의 백성, 참으로 하나님과 법을 따라 교제하는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새언약의 백성된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18절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이것들이 사하여졌은즉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자기 몸을 드려 단번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한 자기 백성, 언약의 백성 되기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며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신 모든 계획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바로 계획 안에 있는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구속사의 조연이 아닙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에서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놀라며 감사해야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높이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란 과연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습니까? 어떻게 살든 다 좋습니다. 한가지만 분명히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피로 구원받아 거룩하게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답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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