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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7 신년말씀 4강
성경본문 에스라 7-8 장
전한날짜 2017/01/29
ㆍ조회: 643  
성경선생 에스라의 결심

2017 신년말씀 에스라 4강  (205 주 예수 크신 사랑)
                           성경선생 에스라의 결심
말씀/에스라 7-8장
요절/에스라 7:10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성전은 완공하고 다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유월절을 지키며 기뻐하였음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러 올라온 만큼 에스라서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날 것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7장 첫머리에는 ‘이 일 후에’라는 말이 납니다. 이 일 후에 하니까 이제 겨우 며칠 지난 것 같지만 실제는 58년이 지난 때를 말합니다. 그 사이 58년이 지났는데 ‘이 일 후에’라니 도대체 에스라는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전 건축과 함께 어떤 중요한 기록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다시 짓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로서 그들은 다시 ‘예배 공동체’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나라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 받았을 때 그들에게 성전이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도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화려한 모습을 하고 예루살렘 중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멸망했습니까? 성전만 있었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성전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먼 바벨론으로까지 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the Law of God’이었습니다. 나라가 있으면 법이 있어야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준비된 율법 학자 에스라를 그들에게 보내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 공동체가 건강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다시말해 말씀의 법도가 세워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없는 말씀 공동체를 생각할 수 없듯이 ‘말씀 없는 예배 공동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지 한번 더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 모임이 ‘예배’와 ‘말씀’이라는 양 날개를 단 균형있고 견고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I. 율법 학자 에스라
이제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서부터 5절까지는 먼저 그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들’이라는 의미는 ‘자손’으로서 에스라는 스라야의 손자나 증손도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라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586년 당시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성전의 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때 사로잡힌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죽었습니다(왕하 25:18-21).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바벨론 그 먼나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라는 이들로부터 언젠가 바벨론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볼 때 대제사장의 혈통을 이어가면서 조상 스가랴의 죽음가 함께 나라의 멸망을 누구보다도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족보를 계속 살펴보니 그는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한 이 마당에 가문이 훌륭하면 뭐하겠습니까? 이때 청년 에스라는 바벨론에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슬퍼하며 PC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청년 에스라를 붙들어주시고 하나님 역사를 위해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라.’  첫째로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여기서 ‘익숙하다’는 말은 ‘무엇인가를 여러 번 보아 능란하다’ ‘조예가 깊다’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그의 인생 중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의 율법(The Law of he Lord)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익숙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자기 나라가 왜 멸망하게 되었고 자기 백성들이 왜 이렇게 먼 바벨론에 끌려와 비참한 노예가 되어야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역사 의식을 가지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의 신하가 되었을 때 이방왕 아닥사스다도 에스라의 실력과 신앙심을 깊이 인정하며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왕이 한갓 자기 신하에 불과한 에스라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겠습니까?  

둘째,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은총의 사람이요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6b절을 보십시오. ‘ …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자이더니’ 그는 왕에게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았습니다. 그가 실제적으로 어떤 것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7장 11절 - 26절 왕의 조서 내용을 볼 때 그가 왕에게 구해서 받지 못할 것이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에스라를 위하여 동족들의 귀환이나 귀환 자금, 팔레스타인의 정치 권한 등 많은 것을 부여한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속히 죄를 정해 귀향을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여 없애거나 옥에 가두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에서 말한 대로 왕이 에스라를 귀하게 여기고 깊이 존경했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고 싶었고 또한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이방인 왕입니다. 에스라가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그의 근본은 포로요 노예입니다. 이런 그가 왕에게 이런 도움을 받는데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자기가 받은 이 은혜를 생각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말은 영어로 ‘for the hand of the Lord God was on him’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능력의 손길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총애하여 도와주시므로 그는 왕에게 무엇을 구하든 모든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의 내용에서도 에스라는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 중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2차 포로 귀환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한 내용은 8장에 다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4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700여 km를 걸어온 것입니다. 이 행렬에는 여자들도 있고 아이들, 노인들 등 병약한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길에 여러 가지 위험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긴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 에스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9절 중간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 for the gracious hand of his God was on him.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범사에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볼 줄 아는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어떻게 이런 것을 볼 줄 알까요? 이것은 그의 마음이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은 얼마나 비천한 자요 연약한 자인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만큼 그는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그 도움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에스라는 에스라서에 기록된 많은 일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이 어떻게 이렇게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과 에스라를 도와주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겸손하면 그 눈에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보이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그 뜻대로 운영하십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아시고 각별히 그에게 은혜로 함께 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볼 수 있고 이에 감사하며 복을 누립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주의 은혜를 누리는 은총의 사람들, 그리고 에스라와 같이 이것을 알고 보고 감사하는 주의 자녀들, 주의 종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II. 에스라의 결심
에스라는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동족들과 함께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에스라가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에스라는 왜 이런 결심을 했을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앞에서 말했듯이 이스라엘의 문제는 성전이 다시 지어졌다고 다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율법, ‘The Law of God’을 알고 지켜야 합니다.  한 나라의 정체성과 그 나라의 질서는 그 나라의 법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헌법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는 국가 정체성과 이에 따라 만들어진 세부 법 조항에 따라 나라가 운영됩니다.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그들이 지켜야할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다른 어떤 법에 우선하는 최상위법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법, 곧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 속에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고 그 백성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속에 신앙과 삶의 규범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대로 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헌법도 연구하는 헌법학자가 있듯이 이스라엘도 여호와의 율법을 누군가가 깊이 연구해서 이것을 자기 백성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과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악에 빠져 멸망했던 것과 같은 그런 비극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라의 문제의식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결심하였다’는 말은 ‘헌신하기로 했다’,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전념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가르치려면 전념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한절 한절에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가치가 담겨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기 백성에게 두신 뜻이 어떤 것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가 잘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의 율법에 담긴 놀라운 의미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주의 율법에는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 사이의 질서와 사랑이 담겨있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비젼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 율법의 말씀이 있었는데 왜 멸망한 것일까요? 이것은 그들이 이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고, 또 알았다해도 피상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깊이 알았다면 어떻게 그들이 말씀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다시 성전은 세워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깊이 배우지 않는다면 과거의 그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하여 먼저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 속에의 기독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일까요? 예배드릴 예배당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것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오는 사람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주신 율법, 그 법도를 따라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많아도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많지만 영향력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고, 교회 안에 하나님의 법도가 서지 못하니까 자꾸 문제가 발생해 교회가 신앙 윤리 문제에 있어서 지적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중남미 지부장 수양회를 다녀오면서 달라스 세관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였습니다. 제 순서 돼서 심사관 앞에 갔는데 그는 휘파람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 사는 동안 끊이없이.. 심사 도중 그는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 ‘목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는 조엘 오스틴 목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묻는 것을 가만한 보니 그가 조엘 오스틴 목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분의 설교에는 문제가 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매주 말씀을 전하느냐, 열심히 오직 예수님만 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장을 쾅 찍어주면서 빠이빠이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성공의 비결을 말하는 그런 설교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법도를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법도가 세워졌습니다. 곧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의 죄악을 이기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길은 우리가 먼저 성경을, 주의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시대가 갈수록 성경의 본질, 그 핵심 사상이 왜곡되고 흐려지는 때에 이런 일은 그 어느 것보다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에스라와 같이 결심하여 말씀을 연구하고 이에 준행하고 가르치기에 힘쓰는 주의 종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에스라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이제는 과거의 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외에 이것만이 진정으로 나라를 구하고 개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나라를 어떤 모양으로 다시 세워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에스라는 나라를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기초해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과거의 실패를 벗어나 나라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개혁하고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나라의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을 보면 조직보다는 분명한 법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이 서면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어떤 조직체도 견고한  진리 위에 서게 되므로 부패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며 더 나아가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참된 개혁을 위해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에스라의 결심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자기 백성들도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에스라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충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모세는 그들에게 ‘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한 것이며’ 하면서 말씀을 손목에 메어 기호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지키며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속사에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루터나, 칼빈, 조나단 에드워드, 존 웨슬레, 조지 휘트필드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그런만큼 말씀을 붙들고 사람들과 씨름했습니다. 어느 시대건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아모스서는 이 시대의 문제는 먹을 양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 사랑, 말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보다 결심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에스라와 같은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에스라가 이렇게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가르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두신 비전대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만민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거기 진정한 개혁이 있습니다. 거기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능력의 역사가 있고 비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 거룩한 소망을 주시되 특별히 에스라와 같은 결심을 주시고 늘 연구하고 지키고 가르치기에 힘쓰므로 쓰러진 하나님의 법도를 세우며 이 시대를 섬기고 구원하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III. 에스라와 2차 바벨론 귀환
본문 11절부터는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주었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저 11, 12, 13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을 아래와 같으니라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이만큼 에스라는 이방왕 아닥사스다로부터 인정과 존경은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조서에서 제국의 모든 총리, 관리들은 에스라게 원하는대로 아낌없이 지원해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명령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죽이거나 귀향을 보내고, 재산을 몰수하고 옥에 감금하겠다는 뜻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왕의 이 조서에 의하면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에 관한한 종교, 정치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는 이렇게 방은 권한을 잘 사용해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에스라는 하나님께 감사찬송합니다. 27, 28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촉하지라도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고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가게 하였노라’ 에스라는 이렇게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였습니다.

8장 1-14절까지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2차 귀환자들의 가계별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에 앞서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이들을 모아 점검하는 가운데 그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예배공동체를 이루고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데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인이 안간다는 것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레위인 초청을 위한 사절단을 만들어 그들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그는 레위인 40여명과 느디님 사람 220명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대 장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겸비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에스라는 왕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과 함께 함께 금식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올라가는 전에 성전에 바칠 것은 구별해서 처음부터 제사장들에게 맡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달하기까지 위험한 때가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심으로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두 무사히 도착할 수 있ᄋᅠᆻ습니다.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감사의 예물이요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그 지역 총독들에게 넘겨주었고 이 조서의 기록대로 총독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바벨론 포로 2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귀환을 이렇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로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주권자요 원하시면 누구의 마음이라도 움직이셔서 구속사를 이끌어가십니다. 세속사는 구속사의 속에서 움직이고 하나님은 이런 세속사 속에서 구속를 이루어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에스라를 준비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도 에스라와 같은 많은 종들을 세우시고 이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세우는 역사 이루어주시길 기도합니다. 결심하는 말씀의 종들이 많이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구속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017 신년말씀 4강
말씀/에스라 7-8장
요절/에스라 7:10

           성경선생 에스라의 결심

       I. 에스라의 결심 (7장)
1. 때가 언제입니까(1a)? 에스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1b-6,11,12)? 에스라가 언제, 어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까(7-9)?

2. 에스라가 어떤 결심을 했습니까(10)? 그의 결심이 성전 재건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또 그의 말씀에 대한 자세에서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3.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어떻게 도왔으며, 그에게 어떤 권세를 주었습니까(11-26)? 에스라는 어떻게 하나님을 송축했습니까(27,28)?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방의 왕까지도 쓰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시오.

        II. 하나님의 도우심 (8장)
1.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가 어떠합니까(1-14)?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무슨 문제를 발견했습니까(15)? 그가 어떻게 레위인들을 얻었으며 몇 명이나 얻었습니까(18-20)?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사람을 얻고자 애쓴 에스라로부터 무엇을 배웁니까?

2. 에스라는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했으며 무엇을 부끄러워했습니까(21-23)?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 간구한 에스라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3.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이스라엘 무리가 하나님의 전을 위해 바친 예물이 어떠했습니까(24-27)? 에스라는 이에 대해 무슨 지시를 했습니까(28-30)?  

4. 에스라 일행은 왕의 도움이 없이도 그 위험한 길을 어떻게 안전히 갈 수 있었습니까(31-34)?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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