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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7 신년말씀 5강
성경본문 에스라 9-10장
전한날짜 2017/02/05
ㆍ조회: 809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2017 신년말씀 에스라 말씀 5강
말씀/에스라 9-10장
요절/에스라 10:11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I. 애통하는 에스라 (9장)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무슨 가증한 일을 고했습니까(9:1,2)? 그들이 어떻게 이런 가증한 죄악에 빠져들었을까요? 이 일에 왜 지도자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을까요?

2. 이 말을 들은 에스라는 얼마나 통분히 여겼습니까(3)? 에스라 한 사람의 통분함이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4)?

3.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워했습니까(5,6)?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과 제사장들이 칼에 죽고 사로잡히고 노략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7)?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어떠했습니까(8,9)?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마땅했습니까?


4.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이 어떠했습니까(10,11)? 에스라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12-15)?

        II. 회개하는 이스라엘 (10장)
1. 에스라 한 사람이 회개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1)? 이런 가운데서 스가냐는 에스라를 어떻게 격려했습니까(2-4)? 죄로 절망할 때일지라도 무엇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까?


2. 에스라는 제사장들과 온 백성에게 무엇을 맹세시켰습니까(5)? 그리고 금식하며 무엇을 공포했습니까(6-8)?


3. 백성들은 어디에 모였으며 왜 떨었습니까(9)? 에스라는 그들에게 무엇을 일깨웠으며, 무슨 결단을 요구했습니까(10,11)? 이방여인을 끊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이를 끊도록 도전하는 에스라로부터 무엇을 배웁니까? 오늘날 우리가 끊어야 할 이방여인은 무엇입니까?  


4. 무리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12)?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제안을 했습니까(13-14)? 그러나 누가 이를 반대했습니까(15)?

5.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을 조사하는데 몇 달이 걸렸습니까(16,17)?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는 누구였으며 그들은 무엇을 맹세했습니까(18,19)? 백성들 중에는 어떤 자들이 이방 여인을 취했습니까(20-44)?

2017년 신년 말씀 에스라 5강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말씀/에스라 9,10장
요절/에스라 10:11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서 학자 에스라의 결심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말씀 역사입니다. 구원역사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없는, 그래서 말씀을 모르는 구원역사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성경선생으로서, 양들의 목자로 에스라와 같은 깊이 있는 성경 선생으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영적 갱신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틈에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고 또 이방여인을 자기 집 며느리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에스라는 분노하며 그들 중에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합니다. 어찌보면 가혹한 조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에스라는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시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I. 민족의 죄를 회개하는 에스라(9:1-15)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바벨론에서 가져온 예물들을 성전 제사장에게 인계하고 하나님께 번제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벨론에서 꿈에 그리던 조국 예루살렘으로 이렇게 돌아온 것은 참으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백성들의 지도자,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나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하고 있는 가슴 아픈 죄악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지도자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그들이 범하고 있는 죄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결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했기로 그게 무슨 죄냐?”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이방인과 결혼한 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우상숭배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각종 우상을 조각해 세우고 그 앞에 분향하며 제사를 지내고 온갖 음란한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것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가나안 사람들의 딸들을 자기의 아내요 며느리로 데려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들이 자기가 섬기던 우상을 섬기자고 가족을 유혹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니 그냥 여자만 오는데 그게 뭐 그렇게 심각하다고 그러냐 하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의 왕이요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 왕도 정략 결혼을 하고 이방 여인들을 궁중에 들여왔습니다. 이랬을 때 그 충성되었던 솔로몬도 아내들의 유혹을 받아 성전 마당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상상도 못할 죄를 범했습니다. 여인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분위기에 들어오면 자기 신앙을 버리고 개종해 하나님만 섬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들은 계속 왕궁과 이스라엘에 악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바알의 딸이라고 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온 나라가 바알 천지가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상숭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만연한  우상 숭배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은 처음부터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또 반발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 결혼해서도 둘이서 잘만 살던데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결혼은 둘이 잘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들 생각입니다. 그건 부모님들 생각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아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거기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결혼의 창설자가 되신 하나님, 모든 축복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 결혼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 거기에 하나님의 유업이 따라 오느냐? 그 가정이 하나의 작은 교회, 곧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축복을 담아낼 수 있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멀리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 다시 기회를 주시면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했는데 이렇게 시작에서부터 이방 여인들을 아내삼고 며느리 삼다니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말이 있지 않늡니까?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또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죄악된 역사,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이요 그런만큼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일에 제사장을 비롯하여 지도자들이 으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이방인들과 사돈 관계를 맺음으로서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던 그들과의 갈등을 피하고 필요한 도움도 받으며 현실적인 유익을 얻어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먼저 돌아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보기에도 큰 걱정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은 안되겠다해서 에스라에게 와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속옷과 겉옷을 찢는 것은 극도의 비통과 슬픔에 대한 표현이요, 머리털과 수염을 뜯는 것은 극도의 분노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아니 조국 이스라엘을 바로 세워보고자 어렵게 준비해 이 먼 길을 왔는데 어느 틈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그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멍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근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민족이 옛날처럼 다시 망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 것입니다. 아, 지나간 그 흑역사를 다시 반복해야 하는가, 이렇게 백성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을 보니 너무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그의 회개와 기도 내용이 어떠했습니까?  

첫째로, 에스라는 민족의 죄를 자기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6,7절을 봅시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그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 머리끝에 넘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죄가 심했던지, 왕들과 제사장들이 이방 왕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고, 포로가 되었고, 종살이를 해야 될 만큼 그 죄악이 컷다고 고백했습니다. 본문의 기도에서 "우리"라는 말이 무려 31회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한 것은 사실 에스라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자기의 죄요 자기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둘째로, 에스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도 건축하게 하셨는데 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니 이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런 그들은 다시 망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이제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하면서 자기들은 할 말 없는 죄인들임을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구했습니다. 원래 할말 없는 죄인은 이렇게 주여 저를 다만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십시오 이 말밖에 달리 정말 할말이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그냥 그냥 긍휼로 용서해주세요. 그냥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세요”하고 간구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상황에선 오직 은혜와 긍휼만이 자기들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주께 나가 드리는 기도는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 순식간에 멸망해버릴 수 밖에 없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가 40일 주야로 금식하며 다만 용서를 구한 기도와도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 백성들을 보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며 그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길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뿐입니다. 우리도 에스라와 같이 민족에 대한 상한 심정을 가지고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이 죄가 많습니다. 각종 우상숭배와 온갖 부정 부패, 거짓말, 파렴치한 갑질, 무책임, 각종 모함, 폭력, 정욕의 죄 등 이런 것이 우리 주변에 글자그대로 만연해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뉴스를 볼때마다 충격입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이 분노 중에 참고 계시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까? 온갖 고난에서 건져주시고 얼마나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니 이거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우리 민족의 죄를 나의 죄, 우리 모두의 죄로 여겨 회개의 기도를 하며 다만 긍휼 베풀어주시길 바라는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바로 잡아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롬 8:34절에 보면 예수님도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많은 허물 가운데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기도 때문이요 우리 주 예수님의 끊임없는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그 피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며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은혜받은 자로서 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민족을 향한 상한 마음을 주시고 에스라와 같이 간절히 기도하는 은혜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들어주시고 이 땅에 회개의 역사, 구원의 역사, 바로 서는 역사가 충만히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이로서 우리 가운데 말씀이 임하고 영혼이 소생하는 충만한 역사, 더 나아가 제사장 나라로서의 쓰임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이방 여인을 내쫓는 에스라(10:1-44)
에스라가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0b절을 보십시오. 이때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였고,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였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지도자 한사람의 회개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중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나와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다"고 말하며 동족들의 죄를 자기의 죄로 인정했습니다. 사실 그는 이방 여인을 아내 삼지도 않았고, 며느리로 데려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라와 마음을 같이하고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스라에게 그래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며 그를 격려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큰 범죄를 하였으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며, 이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영적 갱신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이방여인들과 그 소생들을 다 내어보내고, 하나님과 새롭게 언약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일은 에스라 당신이 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울 것이니 힘써 행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식까지 낳았는데, 이들을 내어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은 그 가정을 깨트려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이 일에 앞장을 섰으니, 이 일은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방 여인을 내보낸다는 것은 큰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이 일이 힘든 만큼 현실적인 타협안도 나올 수 있습니다. "기왕 엎질러진 물이니,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봐주고 다음부터나 잘 하자"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스가냐도 이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스가냐는 단호하게 이방여인들과 그 자녀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다 쫓아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진리 편에 선 스가냐는 그 시대에 깨어있는 파숫군이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는 에스라의 동역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맹세하게 하자 백성들이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3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좇아내리라."(7,8) 어찌하든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에스라의 의지가 결연합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3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당시는 우기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흠뻑 젖었고,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범죄와 큰비를 인하여 떨었습니다. 이때 제사장 에스라가 이들에게 무엇을 촉구했습니까? 10,11절을 봅시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단호하게 도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 여인들과 그들 사이에서 난 자식들을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로부터의 출교시키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공동체에서 죄의 뿌리를 뽑아내고자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너무 가혹한 조치 같습니다. 그러나 봐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필연적으로 다시 우상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혈통적으로는 혼혈이 이루어지고 산앙적으로는 혼합주의에 빠져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애굽하여 만드신 제사장 백성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신 뜻도 떠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이 비극을 막고자 이런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끊어내야 할 이방여인과 같은 요소는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의 순결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음 정신과 헌신과 말씀 중심의 믿음과 순종을 거부하는 비 성경적인 가치관들이 본문에 나오는 이방 여인적 요소들입니다. 각가지 인본적인 가치관, 쾌락주의가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정과 욕심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일단 들어오면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처음부터 경계하고 또 그런 것이 있으면 내쫓아 끊어버릴 때 우리가 순수한 복음신앙을 유지하고 이 시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섬겨나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비로서 섬길 수 있습니다.

에스라의 단호한 방향이 떨어지자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2절을 봅시다. 무리가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런데 이때 백성은 너무 많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여기서 당장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안하여 에스라는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세워 3개월에 걸쳐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이방 여인과 자식들을 내어보내는 실제적인 회개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18-44절에는 이방 여인을 취했던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것을 다 공개했습니다. 제사장 무리 중에 이 죄를 범한 사람들, 레위인 중에서 범한 사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가 그랬는지 일일이 다 기록했습니다. 에스라가 왜 이렇게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를 한 것일까요?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철저하게 죄를 끊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저질렀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대대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가르치고자 함이었습니다.

또한 마지막에,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갱신의 역사는 인간의 큰 아픔이 수반한다는 것를 지적해 줍니다. 사실 그들의 자식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부모를 잘 못 만난 일이지요. 이런 그들이 깨어진 가정의 자식들이 된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 민족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 다는 것을 뜻할 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죄가 주는 고통이요 열매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위해 얼마나 뼈아픈 댓가를 치루게 되었는가에 대한 증거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아들을 믿지 못해 그만 여종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주셨을 때는 이스마엘이 더 이상 이삭과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마엘은 알아서 키울테니 너는 그를 내보내라. 이제까지 자기 아들이요 상속자라고 붙들고 있던 이스마엘을 내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인간적으로, 아버지로 도무지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불신에서 온 죄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이스마엘을 내보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한번 들어와 자리잡은 인간적인 요소, 그것이 자라나 문제가 되어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이런 큰 아픔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곪은 환부를 도려내려면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을 아시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에스라를 통해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뿌리까지 뽑아서 근본적으로 치료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말씀대로 가르치고자 작정한 사람, 학자 에스라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죄악에 대하여 큰 슬픔과 분노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에스라를 이 회개 역사의 주역으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에스라와 같이 이 민족과 캠퍼스 청년들의 죄악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을 심는 영적 지도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구체적으로 에스라와 같은 말씀의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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