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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7 신년말씀 6강
성경본문 느헤미야 1-3장
전한날짜 2017/02/12
ㆍ조회: 975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자
2017 신년말씀(6) 느헤미야서 1강
말씀: 느헤미야 1-3장
요절: 느헤미야 2:17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자
         
        I. 애통하며 기도하는 느헤미야 (1-2장)
1. 때는 언제이며 느헤미야는 어디에 있었습니까(1:1)? 느헤미야가 유다에서 올라온 형제로부터 무슨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까(2,3),(스4:23)?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슬픔이 어떠했습니까(4)?

2. 그는 슬픔 가운데서 누구에게로 나아갔습니까(5)? 어떤 믿음으로 나아갔습니까? 그는 간구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자복했습니까(6,7)? 그는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굳게 붙잡았습니까(8,9,10)? 그리고 어떤 은혜를 탄원했습니까(11)?

3. 느헤미야가 언제 어떻게 왕에게 예루살렘 귀환을 요청케 되었습니까(2:1-5)? 이는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습니까? 왕은 어떻게 느헤미야의 귀환을 허락했습니까(6-9)?

4. 귀환 직후 느헤미야는 먼저 무엇을 살펴보았으며, 유다 지도자들을 어떻게 격려했습니까(10-18a)? 유다지도자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18b)? 이를 들은 대적들이 어떻게 비웃었습니까(19)? 그러나 느헤미야의 확신이 무엇이었습니까(20)?

        II. 성벽 재건에 참여한 사람들 (3장)
1. 양문과 그 주변 성벽을 건축하기 위해 누가 일어났습니까(3:1)? 양문과 어문 사이, 어문, 어문과 옛문 사이는 누가 건축했습니까(2-5)? 누가 참여치 않았습니까(5)?


2. 옛문부터 예루살렘 성벽까지, 그 다음부터 풀무망대까지, 그 다음부터 골짜기 문까지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어떤 사람들도 있습니까(6-13)?

 
3. 분문, 샘문,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그 이후부터 군기고 맞은편까지 재건에 참여한 자들은 누구입니까(14-19)?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 군기고 맞은편부터 성모퉁이까지, 성굽의 맞은편과 오벨 성벽까지, 마문위로부터 양문에 이르기까지 공사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은 누구입니까(20-32)?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5. 이상에서 상한 심정의 지도자 한 사람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2017년 신년 말씀(6) 느헤미야 1강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자
말씀: 느헤미야 1장-3장
요절: 느헤미야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불에 탓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에스라서에 이어 이제 느헤미야 말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서는 성전 재건이 중심이었다면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중심내용입니다. 성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외부세력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어느 민족이든 자기들 수도에 성벽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민족이 아닙니다. 성벽 건축은 민족 공동체를 세우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다니 느헤미야는 이것을 민족적 수치로 여겼습니다. 이런 만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도중에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굳게 세웠습니다. 그러면 아주 오래전 구약시대의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가 다시 세워야할 성벽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시작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성벽 재건을 위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심정이 나옵니다. 여기에서부터 성벽 재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I. 애통하며 기도하는 느헤미야 (1-2장)
 1절을 보십시오. 때는 아닥사스다왕 20년, BC 444년으로서 BC 51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지 7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기슬르 월은 태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이때 왕은 겨울 별장인 수산궁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때 11절 말씀대로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수산궁에 있었습니다. 술 관원은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는 고관이 맡은 직책으로서 왕의 술상에 오르는 술에 독이 있는가 여부를 살피고자 술을 먼저 마셔보았습니다. 당시에 왕들은 항상 독살의 위험이 상존했는데, 바로 아닥사스다 왕의 아버지였던 아하수에르 왕도 독살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술 맡은 관원은 왕이 각별히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왕과 함께 있으면서 세상에 각종 진기한 술, 위스키, 보드카, 한국의 백세주 등 많이 마셨을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마침 그의 한 형제 하나니가 두어 사람의 동행과 함께 유다로부터 도착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신앙과 삶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은 BC 586년에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하였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BC 458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 역사가 추진되다가, 에스라서 4:7-23에 나온대로 주위 이방인들의 모함과 모략으로 아닥사스다 왕이 금지 명령을 내려 성벽 재건이 중단되었습니다. 이때 이방인들이 이 기회에 기왕에 건축된 성벽마져 허물어 버리고 성문들을 불태워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았습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성벽이 서야 민족의 자존심이 서는데 이게 원수들에 의해 무너지니 얼마나 분하고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은 힘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왜 느헤미야는 이렇게 슬퍼하는 것일까요? 성벽 무너져 있는 것이 어떤 점에서 이렇게 그에게 큰 슬픔이 되었을까요? 첫째는 예루살렘 성벽은 성전을 보호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벽이 무너져 내려있으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성전이 초라해져 보입니다. 성전 주변의 것들이 질서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벽이 없으면 주변 이방인들의 죄악 된 신앙, 사상들이 마구 들어와 이스라엘은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다시 불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보호하는 것이요 이와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거룩하게 세우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들째로 성벽이 없으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보호되지 못합니다. 성벽이 없으면 민족을 지켜줄 방패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 민족들에게 능욕을 당했습니다. 성벽이 있어야 그 성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뭉치고 자기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 되게 하는데 상징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성벽이 없으면 나라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성벽은 나라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한 나라의 수도는 반드시 성벽으로 둘러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너져 있다면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성벽이 없다만 하나님 나라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가가서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느헤미야는 슬퍼하면서 성벽 재건을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께 나와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해당되는 성벽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벽입니다. 이 성벽은 얼마나 견고한지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내주는 강한 성이요’하는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견고한 성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견고한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씀과 기도의 성벽을 쌓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성벽을 쌓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떠났을 때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의 죄악된 가치관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말씀을 공부하며 진리에 기초해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것이 우리 모임에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이와 함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안하면 우리가 거세게 밀려들어오는 세상 죄악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기에 힘쓸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사랑과 사명의 성벽을 쌓아야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사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성벽과도 같은 것으로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된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형제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해주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해하고 격려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자기 것을 나누며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의 모임으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선전부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서도 말씀을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하며 제자양성을 합니다. 이러 하건데 우리가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캠퍼스 미션과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말씀과 기도, 사랑과 사명의 성벽을 두b고 외부 원수의 세력에서 우리를 지켜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강하게 하십니다. 이로서 우리가 생명의 역사, 만민 구원역사를 능히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견고한 성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위해 먼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는 먼저 조상들의 죄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때 그는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조상들의 죄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기도한 것일까요? 이는 이스라엘의 죄 문제를 자기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조상들과 같은 핏줄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국이 영광을 누려도 같이 누릴 것이고 고난을 당해도 같이 당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 만큼 조상들의 죄도 자기에게 속한 죄로 여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동족들에 대한 강렬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대표하듯 제사장적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어 느헤미야는 회개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곧 언약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는 범죄하여 여러나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택한 곳, 곧 예루살렘을 돌아오게 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그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한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무너진 성벽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또 성벽도 없이 무너진 성벽 사이를 오가고, 불탄 성문을 드나드는 백성들이 참으로 불쌍히 여겨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거기 도무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 중에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려 4개월 동안 앉아서 울며 금식하는 가운데 하늘의 하나님께 성벽 재건이라는 이 한 가지 기도제목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이런 기도를 시작으로 성벽 재건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죄, 사람들의 죄 문제를 보고 날카롭게 비판하기는 잘하지만 그들은 눈물도 없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자기 백성들이 죽고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지나이다”(애 2:11). 예수님도 회개치 않는 자기 백성들을 보시고 흐느껴 우셨습니다(눅 19:14). 조나단 에드웨드는 미국이 청교도 신앙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깊이 병든 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상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찰스피니는 맨허턴 길거리에서 “저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죄악 가운데 방황하도다”하면서 부르짖고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눈물을 받으시고 미국에 제 1차, 2차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 시대을 보고 울며 기도할 수 있어야합니다. 사치와 향락에 깊이 빠지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보면서, 교회가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도 기복주의, 물질주의에 빠지고 또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 당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슬퍼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섬겨야할 대학의 젊은이들이 진리 없이 방황하고 이제 정욕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즐기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 이사무엘은 60년대 초 가난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 대학생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 눈물을 받으시고 대학 캠퍼스에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어디든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은 할 수 없어도 나라와 캠퍼스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종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세상의 죄문제, 양들의 죄 문제를 내 문제 여기고 마음 아파하면서 어찌하든지 기도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II.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건축하는 느헤미야(2:1-3:32)
 2:1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왕 20년 니산월이 되었습니다. 니산월은 태양력으로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기도한 지 4개월째 되는 달이었습니다. 그는 4개월 동안 밤낮으로 줄기차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눈물이 얼굴을 뒤덮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도는 하지만 자기가 실제적으로 이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전에 그는 왕의 술맡은 관원으로서 항상 얼굴이 밝아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얼굴에 어느덧 수심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왕이 이것을 알아보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때 내가 크게 두려워하며’ 당시 페르시아 법에는 왕 앞에서 시중드는 사람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으면 그 순간 직위가 박탈당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경호를 맡은 술 관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왕이 보았으니 이때 느헤미야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때 느헤미야는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 사실 예루살렘 성벽 건축 금지 명령을 내린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칫하면 모반을 꾀하는 자로 인식이 되어 삭탈관직에 온 가족이 함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왕은 뜻밖에도 부드러운 말로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는냐" 이때 그는 마침내 기회가 왔구나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말했습니다. 5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하나님은 이런 느헤미야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 때 왕후가 왕 곁에 앉아있었더라.’ 얼핏 보면 아니 이 말이 여기 왜 써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옆에 있으면 남에게 아량을 베풀게 됩니다. 구제모금을 할 때 데이트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가서 모금통을 내밀면 10명이면 10명 거의 다 모금에 응해줍니다. 연애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옆에 왕후 때문에 이 일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몇 날에 행할 것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며 자상한 태도로 물었습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느헤미야는 기한을 정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 ’ 왕이 오냐 오냐 했더니 느헤미야가 간이 부은 것일까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간이 부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왕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8b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because the gracious hands of God was on me.’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어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하고(느 5:14) 군대 장교들과 마병까지 딸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리는 왕의 조서를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보내었습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출현은 강 서편의 실력자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10)

 11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길은 3개월의 여정이었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의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당장에라도 공사를 시작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3일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그 뒤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만 데리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방백이나 제사장이나 귀인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행했습니다(16). 이는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원수인 산발랏과 도비야와 연관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 주위를 돌아보니 과연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어 타 흉물스럽게 되었습니다(13). 뿐만 아니라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성벽 잔해들이 널려있어 길이 메워져, 더 이상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이런 성벽을 들러 보고 온 느헤미야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의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또한 이렇게나 파괴된 예루살렘 성을 보고 '과연 내가 이 역사를 해 낼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백들, 제사장들, 유다 사람들을 모아 말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한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느헤미야는 먼저 그들이 당한 곤경이 어떠한가를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폐화된 예루살렘 성과 불타 없어진 성문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거룩한 성전이 있는 성이 이렇게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은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큰 수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도무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권면하였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는 이런 수치를 당하지 말자." 그는 황폐화된 예루살렘 성을 어찌하든지 중건함으로써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정과 소원이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기를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동안 원수들에게 시달렸습니다. 성벽 재건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모든 것이 너무 힘들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내면의 불신을 극복하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 Lets start rubuilding –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힘을 내어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성벽 재건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할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좀 수치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먼저 일대일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금년에는 일대일을 열심히 하면 좋겠습니다. 일대일 하는 것,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1980년대의 부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가운데 말씀 역사가 흥왕했던 1980년대를 그리워 하며 ‘Again 1980’을 외치는데 그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 교회와 우리 모임  전반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주체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이때 우리나라에 세계 10대 교회 중 몇 개가 세워졌습니다. 이때는 신랑 후보 1 순위가 목회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80년대 제가 학생목자 때에는 부족해도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가 양들 만지기만 해도 일대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이 의심 않고 먼 센터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분석해봅니다. 내가 믿음이 없는건가, 양들이 소원이 없는 것인가, 시대가 악한 것인가? 생각해보니 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안되니까 가만 있어야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까지 놓쳐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시대가 악함을 말하면서 하나님 앞과 심판주 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하면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할 일은 언제나 변함없이 말씀을 전파하는 것, 그리고 제자 삼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말은 우리는 열심히 일대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려워서 확실히 양들과 일대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과야 어떠하든 열심히 나가 전파하며 우리는 일대일하며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제자양성해야 합니다. 우리 모임의 특징은 일대일 성경 공부에 있습니다. 일대일은 우리 뼈속 깊이 새겨있는 우리의 DNA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열심히 기도하며 일대일을 섬기고자 하는 것, 이것이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에 합당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것 분명히 수치입니다. 지난 주에 전국학생연합수양회에는 총 336명이 참석했습니다. 이것은 작년에 비해 120명이 더 참석한 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학생들을 모아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이번 주에 새내기들이 캠퍼스에 온다며 학생목자, 사모님들, 목자님들이 모여서 어떻게 양들을 일대일로 초대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의논하고 방향 잡고 합심해서, 동역해서 하면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기까지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차거운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뜨겁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금년에는 일대일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그리고 그룹별로 합심해서 기도하며 이 역사를 섬겨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3장에는 모든 백성이 힘을 합하여 42개 지역으로 나누어 성벽 재건역사를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제각기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수축하고 또 자기 재능과 능력을 드려 힘써 일했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들은 이것을 극복하고 52일만에 성벽을 완전히 재건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느헤미야와 같이 시대나 캠퍼스를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어떤 성보다도 더 강한 성이라는 것을 알고 힘써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그 사랑 안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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