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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7 SBC준비 1강
성경본문 누가복음 18:1-14
전한날짜 2017/07/02
ㆍ조회: 512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2017년 SBC 준비특강 제 1 강
말씀 / 누가복음 18:1-14
요절 / 누가복음 18: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되"(1)

박준은 목자님은 메시지를 앞두고 4 년 기다림 끝에 논문이 억셉트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견주어 보기에 무리는 있지만, 저는 기도한지 19년 만에 응답 받은 일이 최근에 생겼습니다. 수요일에 이번 학기 성적이 나왔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4.0 받았습니다. 대학원 학점 갖고 뭘 그려나 하시겠지만, 학창시절 새학기가 되면 늘 4.0 이상을 위해 기도했으나,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학점이라 제게 굉장한 감사제목이 됩니다. 주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고등학생들은 기말고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로 승리케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1-8절까지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하는 비유에 대하여, 9-14절까지는 스스로 의롭다하고 남을 멸시하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제자이면서, 동시에 내세울 것 없는 죄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1-8).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여기서 그들은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비유의 핵심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사탄이 걱정, 두려움, 욕망, 슬픔, 교만과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상품 진열대 한 쪽편에 "No Sale" 이라는 낡은 꼬리표를 단 물건이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왜 이 물건은 세일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사탄은 "다른 물건들은 충분한 여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만큼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쓸모 있는 것입니다. 이 물건이 없이, 나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 일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물건은 "낙심"이라는 것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낙심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입니다.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의 죄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면, 무엇을 하다가도 나 같은 게 뭘한다고 하며, 자포자기 할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난과 고난을 만날 때, 모든 것이 정지되어 그냥 주저앉게 됩니다. 기도의 경우,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더 이상 기도하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번 해봤지만 여전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경험이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심지어 기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낙심한 제자 생활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께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제자에게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는 것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순간에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이 납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시퍼런 홍해였습니다. 애굽 군대가 턱밑까지 쫓아왔고, 이스라엘 백성은 정말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때 그들은 ‘이제 죽겠구나’ 하며, 자포가지 하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두려워하고 떨고만 있으면,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리쳤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편이 되시고, 어떤 형편에서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그분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비유를 통해 이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서울특별시 제기동 벽산아파트에 한 재판장이 살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개무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재판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정의감이 투철하고 약자에 대한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는 당시 로마로부터 임명을 받아 유대 땅에 파견 나온 이방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위직 로마 관리인 재판장은, 유대 민족에 대한 멸시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니 정의감도 없었을 것이고, 사람을 무시하는데 약자에 대한 긍휼이 있을 리도 없었습니다. 그는 재판장으로서는 최악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제기동 벽산아파트 앞에 한 과부가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한번더’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악인으로부터 불의한 일을 당했습니다. 너무 너무 너무 억울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원한을 풀 길이 없었습니다. 과부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재판장의 판결뿐이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대학원에서 ‘사이버 법률’이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미국 판례를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교수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한국에서는 어떤 판사를 만났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인데도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가가 재판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애석하게도 과부의 경우 소송을 맡은 판사는, 불의한 재판장이었습니다. 그는 여인의 억울한 사정 따위에 신경 쓸 사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 한국이라는 것, 그 재판장은 심지어 불의하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 재판장이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조건 찾아갔습니다. 막무가내로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재판장에게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만나주지 앉자, 구글링을 열심히 해서 ‘개무시’ 재판장의 전화 번호를 알아내고,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이모티콘을 날리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재판장이 번호차단을 하면, 다른 핸드폰으로 계속 보냈습니다. 재판장이 카톡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을 알자, 그때부터는 문자 폭탄을 보냈습니다. 끈질김은 과부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녀는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번더’ 하며 도전했습니다. 사람들이 ‘한번더 사모님’하고 부를 때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또 ‘한번더’ 재판장에게 연락했습니다.

재판장은 얼마 동안 과부의 사연을 듣지 아니하다가, 나중에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부의 청원이 계속 되자, 개무시 재판장의 내면에도 드디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과부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번거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과부의 끈질긴 요청에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자신을 괴롭힐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답답했습니다. “오 마이 갓” 여기서 괴롭게 한다는 말은 원문으로는 멍이 들게 하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권투에서 잽을 날리듯이 잔매를 계속 때리면, 결국 멍이 들게 됩니다. 이처럼 과부가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탄원하자, 불의한 재판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어쩔 수 없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7, 8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여기서 ‘하물며’가 중요합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계속되는 청원에 마음을 바꿨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재판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의로우시고, 은혜롭고 자비하십니다. 과부와 재판장은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벽산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하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2)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만히 계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택하신 자녀들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원한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하십니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8)

8b을 보십시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좀처럼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의 재림은 끝없이 연기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때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런 말도 했습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제가 기도할 때 붙드는 말씀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레미야 33:3이라고 추측 하셨겠지만, 아닙니다. 제가 붙드는 말씀은 이사야 62:6,7 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저는 이 말씀에서 ‘세상’을 ‘고대 캠퍼스’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가슴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뜨거워지고 눈물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게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방해 공작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이 캠퍼스에서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기도하는 데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비유 하나가 있습니다. 제목은 ‘눈송이의 무게’입니다.
아주 작은 박새가 비둘기에게 물었습니다. "눈송이의 무게를 알고 있니?"
비둘기가 대답했습니다. "눈송이의 무게라고? 눈송이에 무슨 무게가 있겠어. 허공처럼 전혀 무게가 없겠지."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박새가 말했습니다. "언젠가 나는 눈 내리는 전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었어. 할 일도 없고 해서 나는 막 내리기 시작하는 눈송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지. 가지 위에 쌓이는 눈송이 숫자를 말이야. 눈송이는 정확히 3,741,952개가 내렸어. 그런데 말이야."
박새의 잔잔한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 눈송이 하나가, 3,741,953번째 눈송이 하나가, 가지 위에 내려앉자, 가지는 그만 뚝 부러지고 말았지. 무게가 전혀 없는 허공과 같은 눈송이 하나가 앉았을 때!"
박새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겼던 비둘기가 나지막이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래 맞아.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부족한 건지도 몰라. 세상에 평화가 내리는데는."
눈송이 하나에 무슨 무게가 있겠습니까만, 어느 순간 눈송이 하나가 더 얹히는 순간 가지가 부러지는 것입니다. 그 한 송이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만있던 가지였을 텐데 말입니다. ‘하물며’ 내가 주님 앞에 드리는 그 기도가 이 눈송이 하나만 못하겠습니까? 여름 수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 번의 기도, 한 번의 전화, 또 한번의 카톡 문자로 인하여 양이 구원받을 수 있고, 그 한번의 기도, 그 한번의 전화, 그 한번의 문자가 없어서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그 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도해야겠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도 제목을 들고 나와야겠습니다. 한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그런 수양회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9-14). 9, 10절을 보십시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래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기도의 내용이 분명 감사인데, 누가 봐도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았다, 이렇게 살고 있다,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자기를 높이는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같이 올라온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한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그런 곳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본문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올 믿음은 있었으나, 차마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받아 주십사 구할 용기는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보아도, 자기 삶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 어그러져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나온 터라, 하나님께 송구하고 죄송스러웠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오자마자 기도가 시작되자 마자 가슴을 치며 회개를 쏟아 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도 알고 그의 아내도 잘 알고, 그의 두 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를 높이는 기도가 있는 반면에, 자기를 낮추는 기도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는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시는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만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김모세 목자님의 카톡 대문을 보면,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입니다. 우리도 여름 수양회를 앞두고 먼저는 자신의 무력함과 죄악됨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인정하고, 긍휼만을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께서 우리가 섬기는 양과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구해야 겠습니다.

오래 전에 다니엘서를 읽다가 지옥 불구덩이 환상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자꾸 이상한 것이 보여서 이게 뭐지하며 일부러 안하던 설거지를 하러 갔지만, 그곳에서도 그 장면이 계속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죽는 것이었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하나님께서 물었습니다. 도와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19년 전 신축 센타, 바로 이곳에서입니다. 주님은 그때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실재하고, 우리를 이 지옥 불구덩이 속에 건져내실 분은, 예수님만인 유일한 구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밤 12시가 넘었지만 알고 있는 모두에게 삐삐 음성 메시지를 남기며 이 복음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모르겠습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인지도.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자라면,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도하되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고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여름 수양회를 앞두고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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