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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7 SBC준비 2강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
전한날짜 2017/07/09
ㆍ조회: 504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2017년 SBC 준비특강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19:1-10
요절 / 누가복음 19:10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1,2)? 그는 누구를 보고자 했습니까(3a)?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3b,4)?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2. 예수님은 누구를 주목하셨습니까(5a)? 예수님은 삭개오를 어떻게 만나 주셨습니까(5b)?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3. 삭개오는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했습니까(6)? 사람들은 왜 수근거렸습니까(7)?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8)?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4.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을 선포하셨습니까(9a)?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9b)?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10)? ‘잃어버린 자’는 어떤 자를 말합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2017년 여름수양회 준비특강 2

 

말씀: 누가복음 19:1~19

요절: 누가복음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에는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 비유, 잃은 양 비유, 그리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인 탕자의 비유 등이 그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한 잃어버린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삭개오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삭개오는 어떤 점에서 잃어버린 자이며 잃은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세리장 삭개오(1~2)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여리고는 당시 향료생산의 중심지였고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나무성으로 불리었습니다.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 도시로서 고대로부터 이스라엘의 교통의 요지였고 또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상인과 여행객들의 왕래가 많아서 관세와 통행세를 걷는 큰 세관이 있었습니다. 이 여리고 세관의 책임자가 삭개오였습니다.

로마는 대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는 직접 관리를 보내어 세금을 징수하는 대신 식민지 백성들 중에서 사람을 뽑아 동족의 세금을 걷게 하였는데 그들을 세리라고 불렀습니다. 세리들은 따로 월급이 없었기 때문에 로마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고 남는 돈을 자신의 몫으로 착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리들은 동족들로부터 허가된 도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창녀들과 동급으로 여겨졌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과는 정 반대로 탐욕스러운 매국노가 되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욕을 먹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한 상처가 그의 진로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식민지 흙수저 출신으로서 권력과 부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리가 된 후에 삭개오는 자신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약자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삭개오는 로마로부터 인정받아 여리고의 세리장이 되었고 야자나무가 우거진 3층짜리 대 저택을 소유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삶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삭개오 앞에서는 굽신거렸지만 뒤돌아서선 육두문자를 써 가며 욕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를 이용만 할 뿐 식민지 출신인 그를 자신들의 무리에 끼어주지 않았습니다. 삭개오의 부인은 강남 사모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쇼핑이나 피부 관리에 바빠 삭개오를 뒷방 영감 취급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용돈 줄 때를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삭개오를 만나도 부끄럽다며 아는 채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터 라이브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살 수 없다.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어도 달콤한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지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기쁨은 살 수 없다.’

성 어거스틴 역시 인간의 마음에는 돈으로도, 명예로도,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공간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영적인 공간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결코 평안을 얻을 수 없나이다.”

 

. 삭개오야.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3~7)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 세관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며 그들과 거리낌없이 식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세리 출신의 마태를 제자로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지나시는 행렬로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곧바로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키가 너무나 작아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사람들의 어깨밖에 닿지 않았습니다. 폴짝폴짝 점프를 해도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였습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돌무화과나무 한그루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돌무화과나무로 달려갔습니다.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코알라 한 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 기괴한 광경을 휴대폰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체면도 버리고 이렇게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다라는 말은 예수님을 보고자 열망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삭개오의 구원 이야기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은 삭개오의 간절한 소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데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핵심도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관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마침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던 중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 삭개오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 만남은 한 잃어버린 자와 구원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전 존재를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내 이름 아시죠 (He Knows My Name)’라는 노래를 지은 토미 워커 목사님이 필리핀에 갔을 때 그곳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토미 워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되풀이해서 물었습니다. 그는 왜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묻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그의 존재를 영접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토미 워커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무명가수시절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낙담하던 그는 이사야서 4914~16절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어머니가 젖 먹는 자녀를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러나 혹시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손바닥에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그 손바닥의 굵은 대못으로 확증하셨습니다. 토미 워커의 내 이름 아시죠를 다 같이 불러 보시겠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삭개오의 집은 어떤 집입니까? 공인된 죄인의 집이요 민족의 배신자의 집입니다. 그의 집은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스크루지의 집처럼 항상 찬바람이 씽씽 부는 집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편에서도 삭개오의 집에 유하는 것은 예수님의 평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여리고 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예수, 매국노의 집에 머물다니. 급실망, 기대 많이 했는데 진짜 실망이네요.” 라는 댓글로 도배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유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의 집에 유하신 것일까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가 베푼 잔치에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 예수님의 관심은 건강한 자, 의인이 아니라 병든 자와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와 같이 내면이 병든 자의 영혼의 의사가 되어 주셔서 그들의 내면의 병을 치료해 주시고 그들의 죄를 회개시키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로서 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8~10)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개하여 새 삶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돈의 노예였던 그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속여 빼앗은 재물은 네 배로 배상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회개는 말로만의 회개가 아니라 실천이 따르는 회개였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갈망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바뀌려면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때 진정한 변화가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변화되고자 노력하기보다 먼저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자 열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이란 그가 회개한 그 순간을 말합니다. 그가 회개하자 곧 정죄와 심판이 힘을 잃었습니다.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는 것은 삭개오 뿐 아니라 삭개오를 통해 그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는 가정에서 저주의 근원, 화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가정의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신분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자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자아도 잃고 본래의 사명도 잃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속에 있어야 하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사단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 하나님을 떠난 영혼을 마구 파괴합니다. 사단은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들은 각종 중독과 음란과 미움과 불평의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죽음 이후에는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잃어버린 자된 우리를 찾아 구원하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비유가 누가복음 15장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판에서 양들을 먹이다가 양 한 마리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는 양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금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흉악한 늑대의 밥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벼랑 근처에 서 있는 그 양을 발견했습니다. 목자는 기뻐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친구와 이웃을 불러 모아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더 귀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자기를 비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목자를 떠난 잃은 양과 같이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자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간 탕자와 같이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영혼의 기근으로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여름수양회는 잃어버린 자와 같은 우리 영혼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생명의 잔치이자 구원의 잔치입니다. 삭개오처럼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용서해주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번 여름수양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오는 천국잔치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잃은 자인 저도 찾아오셨습니다. 어려서 심장승모판 탈출증으로 남들처럼 뛰어다니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빼빼마르고 성격도 소심해서 아무도 저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디가도 있으나 마나한 자와 같았습니다. 9살 때 어머니가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간병하시느라고 장기휴직을 하셨던 아버지도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 엄마 없는 가난한 집 아이라는 콤플렉스와 운명주의로 대인기피증이 생겼습니다. 2가 되어 사춘기가 되었을 때 저는 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겨 다니던 교회도 그만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청소년부를 맡으셨던 박수진 전도사님이 저의 집에 심방을 오셨습니다. 그분은 교회학교 소풍을 가기 전에 늘 과자를 사가지고 오셔서 가방에 불룩하게 넣어 주시고 가셨던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집 앞에서 정민아, 정민아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롱에 숨고 말았습니다. 2008년도에 필리핀 선교여행 중 빗길에 교통사고로 박수진 목사님 부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장롱에 숨어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제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주셨던 그 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대학에 들어가면 나를 이해해 줄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다른 친구들보다 모든 면이 부족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을 줄이고 등교 시간 버스 안에서도 성문기본영어 단어를 외웠습니다. 성적은 조금씩 올랐으나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몇 몇 친구들은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저를 놀리곤 하였습니다.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일어서면 드디어 일어났다면서 박수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대입 준비를 위해서 과목별로 노트를 정리해서 모아 두었는데 고3 9월 중순에 이 노트를 모두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저는 마지막 정리를 위해 준비한 노트가 모두 사라지자 눈앞이 하얘졌습니다. 결국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고 2지망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보니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여자 친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입학하자마자 학교는 학내 문제로 무기휴학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섰지만 문이 굳게 닫힌 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 친구와 고대 뒷산에 올라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가 되어서 집에 가곤 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환영해주거나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 두 명의 선배가 다가 와서 제게 성경을 공부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어려서 교회에 다녔던 경험이 있었고 수업이 없어 시간도 남아돌았기 때문에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성경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이었으나 사실은 성경공부 끝나고 목자님이 가끔씩 사주시는 라면이나 떡볶이, 순대를 기대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그동안 하던 성경공부를 정리하고 명동성당 근처에서 중국집 배달 알바를 시작하였습니다. 철가방 생활을 한 지 열흘 쯤 지나 배달을 하려 중국집 문을 나서는데 낯익은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지금 호주에 선교사로 가 계신 이 여호수아 선교사님이셨습니다. 당시 명동성당 근처는 데모대가 많아서 전투경찰들의 검문검색이 심했습니다. 목자님은 몇 번의 검문을 거쳐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국집에서 일하면 말씀공부도 못하고 주일날 예배도 못 드리니 그만 두면 더 좋은 알바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더 좋은 알바에 혹해서 목자님을 따라 갔습니다. 목자님이 소개시켜주신 알바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하는 알바였습니다. 비록 몸이 약한 제게 노가다 알바를 소개시켜주시긴 하셨지만 철가방을 들고 다니던 소망 없는 저를 찾도록 찾으시던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학교 때 나를 이해해 줄 여자 친구는 못 만났지만 20대가 가기 전에 윤희 사모님을 만나 18년 동안 변함없는 삶의 동반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허물 많은 저를 참아 주고 함께 한 윤희 사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몸이 약해 소망 없는 저와 가족을 위해 수지침과 수지뜸을 배워서 아플 때 마다 침으로 뜸으로 음식으로 약으로 섬겨준 동역자의 인내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과거 저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아무와도 눈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목자님들의 사랑으로 차가운 저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된 후에 저는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고 이 직업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욱하는 성격 탓에 학생들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준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게 작은 자 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작은 자, 병든 자, 죄인을 영접하신 예수님을 배우고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은 없습니다. 제 주변에는 소외된 학생, 몸이 아픈 학생, 마음이 아픈 학생, 분노 조절 장애 학생,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학생, 무례한 학생, 각종 중독에 매인 학생 등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는 대학캠퍼스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바리새인들처럼 이들을 마음으로 판단하고 소망을 끊고 마음에서 잘라버린 적이 많습니다. 이를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소자 한 사람은 예수님 편에서 잃어버린 자입니다. 제 남은 인생 가운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각 사람을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우리가 다음 주에 있는 여름수양회에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우리의 돌무화과나무에 오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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