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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수양회 후 특강
성경본문 누가복음 17:7-19
전한날짜 2017-07-23
ㆍ조회: 476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20170723 주일메시지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말씀 : 누가복음 17:7~19
요절 :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지난주 창세기 여름수양회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창세기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저의 20대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1학년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몰라 혼돈 가운데 있었고, 2지망 합격으로 패배의식과 열등감에 억눌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말씀공부를 마치고 제기천변을 따라 걷는 동안,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몰려왔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말씀을 공부할 때 믿음으로 사는 삶이 이해되지 않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말씀공부를 마치고 나서 심야버스와 배를 타고 멀리 울릉도 고향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양으로 인해, 목자님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빕니다. 이후 하나님의 훈련을 장기간 제대로 받은 후에야, 믿음의 삶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튼. 이번 창세기 여름수양회 가운데 은혜가 있도록 섬기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온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섬김의 수고를 감당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름수양회 이후 특강 말씀으로 딱~인 것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 무익한 종과 감사하는 자세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7~10)
7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한 종이 있었습니다. 종은 동이 틀 때 일어나 아침밥을 먹은 후 하루 종일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그는 주인의 눈을 피해 요령을 피워가며 적당히 일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쉴 새 없이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한편 집에 돌아와 보니 주인도 별다방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지금 막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종과 주인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피곤해 보이는 종을 본 주인은 “아이구 왔는가~? 오늘도 수고 많았어~ 얼른 씻고 와~ 그 사이 저녁을 준비해 놓을께~. 먹고 싶은 거 있어~?” 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렇게 말할 자가 누가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과연 주인의 입에서는 “어, 왔어? 오늘 저녁은 시원한 콩국수 먹을 꼰~데~~?” 라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은 종에게 “너는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시종을 든 후 그 후에 먹고 마시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이 이 당시 종의 위치였습니다. 종은 종일 허리가 끊어지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을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바로 쉬지 못합니다.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다고,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지 않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눈으로 레이저광선을 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요리사모드로 들어가 주인을 위해 요리를 하고 주인이 다 먹을 때까지 서빙을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청소모드로 바꿔 설거지와 집안청소까지 마친 후에야 먹고 쉽니다. 이것이 종이 하여야 할 일이고, 종은 종으로서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러면 그 종은 정말 무익한 종일까요? 아닙니다. 무익한 종이 아니라, 주인이 명령한 것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유익한 종입니다. 그럼에도 왜 무익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 걸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종이 유익한 종의 자세를 가진다면, 자기를 주장하게 되고 주인의 명령에 마음으로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반면 스스로를 무익하게 여기는 종은, 주인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주인이 명령하는 것을 그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인에게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 역사를 섬기면서 수고를 많이 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을 때, 스스로 유익한 종이라는 자기 의가 생기기 쉽습니다. / 자기 의가 생길 때, 교만한 마음과 남을 판단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 도리어 하나님 역사를 방해하는 쓸모 없는 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반면 자신이 어떤 자인지, 곧 주인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임을 안다면, 또 어떤 희생을 통해서라도 죄인을 구원하려는 주인의 마음을 안다면, 그리고 자신의 수고로 말미암아 생명이 살아나고 주인이 크게 기뻐한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 끝까지 주인의 일을 충성되게 감당할 것입니다.

바울은 4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지 않았고 자족하거나 피해의식이 없었습니다. 그의 무익한 종의 자세는 빌립보서 3:13, 1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0:28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김을 받아야 할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섬기는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무익한 종으로 온전히 순종하고 희생하셨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와 심판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캠퍼스 가운데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캠퍼스 목자요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와 축복을 알 때,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으며,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혹시나, 우리 안에 보상심리나 자기 의와 자기 자랑의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에서 돌이키기를 기도합니다. 무익한 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감사하는 사마리아인(11~19)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지막 사역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저 멀리 한 떼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열명의 나병환자였습니다. 나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으로, 문둥병, 한센병이라고도 합니다. 나균은 피부, 말초신경계, 코와 구강의 점막을 침범하여 감각을 마비시고 근육조직을 변형시킵니다. 몸에 상처가 나도 잘 알지 못하여 반복적으로 감염이 되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는 내려앉고, 눈 안구는 돌출되어, 좀비와 같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레위기 13장에는 나병에 대한 규례가 있는데, 나병이 걸린 사람은 율법적으로 부정하게 간주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단절감, 흉하게 변한 자기 몸뚱이를 보는 좌절감, 그리고 부정하게 되고 저주를 받았다는 절망감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누가 이 고통, 이 슬픔, 이 고독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그들 중 9명은 유대인이고 1명은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이었지만,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마을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들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들었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을로 오시기만을 숨어 기다렸습니다. 저 멀리 예수님 일행이 보일 때 그들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해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절박한 심정으로 소리 지르는 그들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들을 향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14절 상반절을 읽겠습니다. “~하셨더니”까지 입니다. 시작.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당시 제사장은,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을 진단하여 격리시키고, 나았을 때 검사하여 완치판정을 내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은, 나병이 완치되었으니 확인 받으러 가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여전히 흉측한 몰골인데 제사장들에게 가려면, 제사장들에게 가는 도중 나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돌 맞을 위험도, 만약 낫지 않았을 때 또 한번의 좌절감과 허탈함도 무릅써야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4절 하반절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가는 도중 어느 순간, 떨어져나간 손가락과 발가락이 새로 생겨났고, 내려앉았던 콧대가 높아졌고, 눈 안구는 제자리로 들어갔고, 고름과 진물로 지저분했던 피부가 깨끗해졌습니다. 아~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그들은 풀쩍풀쩍 뛰면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 오! 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은 나병환자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15, 1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사마리아인 1명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똑같이 나음을 받은 9명의 유대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완치 판정을 받기 위해 제사장들에게 갔을까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향으로 달려갔을까요? 아니면 만약 나병으로 인해 망한 인생을 역전시키려고 노량진 고시촌에 들어 갔을까요?

17, 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린 그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가 무엇입니까? 감사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에 나오는 한 명의 사마리아인처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기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적이 있게 하신 예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결과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함으로 나오는 자의 믿음을 축복하시며 구원을 확정해 주셨습니다. 나머지 9명은 나병에서 낫는 동일한 은혜는 받았지만,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각자 자기의 길로 감으로써, 구원의 은혜는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말씀에 나오는 나병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나병환자와 같이 절망적입니다. 죽는 존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들에게 희망이었던 것처럼, 죄인들에게 희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아니고서 어떻게 죄인이 죄 용서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번 창세기 여름수양회에서 창조와 타락,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심판받을 죄인을 위해 독자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으로 인한 죄 사함과 영생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사마리아인과 같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구주 예수님께로 와서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살 때 감사가 매일매일의 삶의 기초가 되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충만한 구원의 은혜 가운데 능력 있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살지 않을 때는, 상황이 나빠지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내는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오는 삶을 살면서, 감사가 충만한 인생살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대학 2학년 여름수양회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서 저의 정욕의 죄문제, 인생의 무의미로 인한 무기력 등을 해결 받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저의 심각한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여야 할 순간에, 저를 위해 사는 인생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는 “구원의 은혜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 그 외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유대인 나병환자와 같이 제 길을 떠났습니다. 저는 고시원에 들어가 나의 의지와 성실을 의지하여 행정고시에 매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장래불안과 계속 이어지는 2차시험 불합격으로 좌절하였습니다. 결국 나의 의지와 성실을 꺾으시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왔을 때 제가 재발견한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귀한 것은, 행정고시 합격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만을 깊이 붙들었을 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무지막지한 본부장님으로 인한 괴로움도 견딜 힘을 주셨습니다. 가끔 믿음 없이 헤맬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의 표현을 하는 일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많은 저와 오랫동안 씨름하시며 예수님께 나옴으로 구원의 확정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올해 초 괴로운 본사생활을 마치고 가까운 청량리지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얍샵한 어떤 분이 알짜 고객들을 선점하는 바람에 저는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시편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말씀에 따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고객들에게 선을 행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저의 구주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이때 저는 변화무상한 상황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새로운 고객을 보내주시며, 또 지혜를 주셔서 저를 믿고 투자하는 고객들이 손해는 보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제 실제적인 삶 가운데서도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축복의 증거와 실체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생각할 때,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게 되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항상 붙드는 가운데 무익한 종의 자세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 나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나아오고 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기도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영육간에 크게 성장하며 하나님 역사를 무익한 종으로 충성되게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전 한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그는 1년 동안 말씀공부도 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회사 합병으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고민이 많은 가운데 결단하고 휴가를 내어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십자가 말씀으로 전체 소감발표도 하고 제자선서까지 하는 1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회사에 가보니 지점에서 본사 핵심부서로 인사발령이 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말씀공부와 예배가 뜸해지더니 결국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 형제가 지금이라도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의 표현을 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확정의 은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2017년 누가복음 제 26 강(수양회 후 특강)
말씀 / 누가복음 17:7-19
요절 / 누가복음 17:10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1. 당시 종들은 주인이 명한 대로 하고서도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7-9)?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행한 후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10)?



2.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서 예수님께 무슨 간청을 했습니까(11-13)?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14a)? 그들이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14b)?



3. 열 사람 중 누구만이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했습니까(15,16)? 예수님은 무엇을 안타까워 하셨습니까(17,18)?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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