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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가을학기 특강(2)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3:10-15
전한날짜 2017/09/10
ㆍ조회: 559  
지혜로운 건축자
주일메시지

지혜로운 건축자

고린도전서 3:10-15(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인생은 건물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먼저는 기초를 놓고, 그 다음 차례차례 쌓아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작년 12월에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의 높이는 무려 555미터 123층에 달하는데 전 세계적으로는 5번째로 높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런 초고층빌딩 역시 어김없이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세우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집을 잘 짓기 위해서 이 기초를 놓고 세우는 과정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집을 잘 지으려면 이런 지혜로운 건축자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급하다 서두르지 말고, 기초를 놓아야 할 때 기초를 놓고, 그 위에 견고한 재료로 한 층 한 층 쌓아올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놓아야 하며, 또 어떤 재료로 집을 지어야 하는지 겸손히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0절부터 15절까지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건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건물은 우리의 신앙 내지 삶을 의미하고, 건축자는 좁게는 사역자, 넓게는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건축자는 어떻게 건물을 짓습니까?

첫째, 지혜로운 건축자는 반석 위에 터를 놓습니다. 바울이 말한 건축의 첫 번째 단계는 ‘터’를 닦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터’란 건물을 지탱하는 토대,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터 닦는 일은 전체 건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201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당연히 이 건물을 지을 때 터를 닦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치가 하천 옆이다 보니 지반이 무르고 또 땅을 파는 과정에서 물이 흘러나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터를 단단히 놓았기 때문에 6층이나 되는, 그래도 제기시장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건물의 ‘터’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대충하고 넘어가기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건물이 주저앉거나 기울어지는 등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건축자는 시간과 돈이 좀 많이 들고 힘이 든다고 하더라도 기초공사를 중요시하고 기초공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러한 건축의 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기초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놓였는지 간과하기 쉽습니다. 기초가 아직 제대로 놓이지 않았는데도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 보고 나의 신앙 혹은 다른 사람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부실한 기초가 신앙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영적 함몰’이라는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대학 3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 전까지만 해도 저의 신앙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센터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대일 양도 섬기고 있었고 여러 가지 십자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모든 일이 갑자기 피곤해졌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영적 기초가 부실한 데에서 비롯된 ‘영적 함몰’ 증상이었습니다.
건물이든, 사람이든 기초가 부실하면 누구나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교회를 개척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믿음의 터를 닦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다 같이 11절을 읽겠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이 닦은 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터는 어느 누구도 다시 닦을 수 없는, 완전하고도 유일한 우리 신앙과 인생의 기초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오,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에서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삶의 참된 만족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이 예수님 위에 터를 잡는 사람만이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인생의 집,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집을 짓고 있는 건축자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집을 세우기 전에 먼저 기초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제가 사회에서 만난 대학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려대 법대 03학번인 그는 사법시험에 몇 번 낙방한 후 로스쿨에 들어가 올 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도 취업이 쉽지 않은 요즘, 그는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에 취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배는 저와 식사하는 동안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제가 아직까지 이룬 것이 없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나의 자리가 불완전하고 위태롭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제가 만난 후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늘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고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제가 아직까지 이룬 것이 없어요”라고 되뇌이며 자신의 성취에 대해 조바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서둘러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기초를 아무 데나 대충 놓고 건물부터 올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지은 것을 허물고 다시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위에 인생의 기초를 놓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내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생애를 본받아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인생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인생의 비바람이 불고,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다 할지라도 결코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는 참으로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시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러다가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까 불안스럽습니다. 꼭 전쟁까지 아니어도 자사고는 정말 폐지되는 것인지, 대입 제도는 또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집값은 오를 것인지 말 것인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삶의 요소는 정말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도 반석 되신 예수님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488장의 2절, 3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초 놓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우리가 인생의 기초를 견고히 놓아 결코 흔들림 없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지혜로운 건축자는 귀하고 견고한 재료로 집을 짓습니다. 건축의 첫 번째 단계가 터를 놓는 일이었다면, 두 번째 단계는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라면 터는 물론이고, 그 위에 무슨 재료로 집을 지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의 용도와 목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 날에 있을 불 시험 때문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짓고자 하는 건물의 용도와 목적을 고려하여 건축 재료를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단독주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들어보니, 집을 지으려고 계획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건축자와의 미팅이었습니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 집 주인과 건축자가 여러 차례 만나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집에 거주할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 집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집을 설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건축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종류의 집을 지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에 관해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앞서 9절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6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하나님의 집, 다시 말해 성전입니다.
성전은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찬양이 드려지는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짓고 싶은 건물은 성전이 아닌,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롯데워드타워’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고 싶을 수 있습니다. 또, 럭셔리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최고급 아파트를 짓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은 수십만 권의 장서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을 짓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크고 화려한 건물이 싫고, 그저 우리 가족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갈 집 한 채 짓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우리가 지어야 할 인생의 집은 다름 아닌 ‘성전’입니다.
흔히 집은 집 주인을 닮아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건물이 다름 아닌 ‘성전’이라는 사실이 우리 인생과 신앙에 대하여 말해주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나 자신만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나 자신의 만족과 유익만을 위해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태초에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때 기쁘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 때, 그리고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며 살 때 행복하다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기쁨, 영어로 JOY는 예수님을 첫째 삼고 JESUS FIRST, 이웃을 둘째 삼고 OTEHRS SECOND, 나를 마지막으로 삼을 때 YOU THIRD 찾아옵니다. 제가 최근에 이사 간 집이 죠이 선교회 근처인데, 센터 오가는 길에 죠이 선교회 앞을 지날 때마다 이것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때 ‘집의 용도와 목적’과 더불어 고려해야 할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불 시험’입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어제 뉴스를 보니, 현재 미국에서는 ‘어마’라는 이름의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이 플로리다에 상륙할 예정이어서 그곳에 살고 있는 560만명의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이 곧 상륙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데, 그냥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 역시 집을 짓고 있는 우리를 향해 “불 시험이 있을 것이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강력한 불 시험 속에서도 결코 타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에는 ‘불 시험’만 나와 있지만 우리가 애써 쌓아올린 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는 꼭 ‘불’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진일 수도 있고, 허리케인일 수도 있고, 인생에서 밀려닥치는 온갖 예기치 못한 여러 재해들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험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여 인생의 집을 튼튼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할까요?
12절과 13절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재료는 총 6가지,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입니다. 이 재료를 적당히 분류해보면, 앞의 세 가지는 비싸고 견고한 재료이고 뒤에 세 가지는 값싸고 약한 재료입니다. 물론, 나무나 풀, 짚도 건물의 용도에 따라서는 나름 훌륭한 건축재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임시로 지어 며칠만 쓰고 말 건물을 짓는데 굳이 금, 은, 보석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나무나 풀, 짚으로만 지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지어야 할 건물이 며칠 쓰고 말 가건물이 아니라, 오래도록 써야 할 성전이라면 어떨까요? 게다가, 우리가 집 지을 터는 다른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노른자위 금싸라기 땅 위에 나무나 풀, 짚처럼 값싼 재료로 집을 지을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금이나 은, 보석과 같은 귀한 재료로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면 당장 우리 마음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지난주 메시지에서 이바하 목자님은 파스칼의 ‘팡세’를 예로 들어, 우리가 이해득실을 따지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보다 유익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찬가지의 시각으로, 오늘 말씀에 한 번 적용해보겠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 중에, (오늘 저희 직장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네요) 부동산 투자의 귀재가 한 명 있습니다. 그의 지론은 ‘내 돈 없이도 얼마든지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직원의 투자 비법을 아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강의 핵심은 이런 것 같습니다. 내 돈이 없어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고 그 빌린 돈으로 집값이 오를 만한 지역의 아파트를 사서 이자 이상의 차익을 남긴다는, 다들 아는,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원리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 직원은 이렇게 해서 지난 몇 년 새 꽤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외제차도 사고, 현재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동산 투자의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터를 분양받아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짓는 건물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입니다. 이 좋은 터에 성전을, 그것도 금과 은, 보석으로 지으면 이 건물의 가치는 도대체 얼마나 높아질까요? 엄청난 차익이 예상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공적을 드러낼 인생의 불 시험이 시시각각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허리케인이라면 차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피하면 되겠지만, 이 불 시험 앞에서 우리가 피할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평생 동안 지은 우리의 집 안에서 이 불 시험을 오롯이 당해야 하고 그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왕 불 시험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차라리 대충 적당히 건물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금과 은으로, 보석으로, 우리의 가진 귀한 것으로 최선을 다해 우리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묵상집에서 오스왈드 체임버 목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최고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사랑, 금과 은, 보석보다도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18과 1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우리 대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에메랄드보다 붉고, 사파이어보다 아름다우며, 다이아몬드보다도 영원한 보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게 될 때, 그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상대방의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그들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금이나 은, 보석도 귀하지만 이런 것들의 가치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유한한 금, 은, 보석의 가치와 영원한 예수님의 보혈의 가치를 도저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과 희생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이미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요절 말씀인 10절을 다 같이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니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우리는 아름답고 고귀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입니다. 우리가 짓는 성전이 수십 층을 넘어가는 거대한 빌딩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도 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크기나 화려함, 겉으로 보이는 장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터 삼는 것이고, 그리고 그 위에 우리의 겸손과 순종, 섬김과 사랑, 믿음과 희생, 말씀과 기도로 쌓아올린 건물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이 성전에서 충분히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할 것입니다.

메시지를 쓰다가 지금도 선교지에서 충성하시는 몇몇 선교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과 은, 보석으로 집을 짓고 있는 귀한 삶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의 삶도 그렇게 될 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막 신앙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 단계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건물을 세우는 중이거나 제법 건물을 올렸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미 건물을 완성한 사람은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항상 공사 중이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 각자의 영적 성숙의 단계에 맞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금은보석으로 아름답게 세워져 올라가는 성전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그런 아름다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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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 준비 특강 (2)
말씀/ 고린도전서 3:10-13
요절/ 고린도전서 3:10
(명확한 본문 이해를 위해 새번역을 추가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



1. 바울은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 어떤 점에서 지혜로운 건축자입니까(10,11)?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신자와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될 수 있습니까?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새번역-(10)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2. 이 기초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은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10b)? 건축 재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12)? 무슨 재료를 썼는가 하는가가 언제 드러나게 됩니까(13)?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새번역-(12)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13)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3. 그날에는 작품(공적,공력)에 따라 어떤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까(14,15)? 타는 재료와 타지 않는 재료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각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할까요? 여기서 작품(공적,공력)을 따라 상을 주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와 소망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새번역-(14) 어떤 사람이 ③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 ③또는 '세워 놓은 일' (15) 어떤 사람의 ④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 ④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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