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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가을학기 특강(4)
성경본문 디모데후서 4:6-8
전한날짜 2017-09-24
ㆍ조회: 444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을 지켰으니                 September 24, 2017

디모데후서 4:6-8
요절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안녕하세요!!
제가 2년전에 뵙고 돌아갈때 또 오겠습니다 하고 떠났지만 속으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시 뵙게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잘 아시는대로 주님께서 극적으로 이식수술 허락하시고 저에게 제2의 보너스 인생을 살게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이 덤으로 주신 삶을  믿음을 지킴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주님께 드릴수 있을까 많이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네이키드 스트렝스(Naked strength) 라는 말을 잘 아시죠? 사람이 죽고난뒤에 평가입니다. 어떤사람이 높은자리에 있을때나 좋은학위나 부를 가지고 있을때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마친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하느냐 입니다. 자 이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기를 희망 하십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답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 이고백이 사도바울의 삶의 평가이며 그의 성공한 삶이 였습니다.

첫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6)
6절을 보십시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다". 여기에서 관제가 된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 방식입니다. 구약 민수기 15장에 여러 제사방식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할때 헌물이나 헌금을 가지고 옵니다. 그중에서 얼마는 제사장에게로 가고 얼마는성전에 바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와인종류의 향료 같은 것으로 타는 희생 제물 위에 부으므로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drink offering" 이라고 표현됐습니다. 이 때는 반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다 드립니다. 한방울도 남겨놓지 않습니다. 와인이 타는 불꽃 위에 부어질때 그 냄새가 아주 향기롭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도바울이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4차전도 여행후 2차투옥된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수도 있었을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면서요. 그러나 바울은 믿음을 지키고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모든것을 예수님께 다 드렸지만 이제 그의 생명 마저도 구약에 나오는 관제에 비유하면서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청년기를 지나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참으로 마라톤과 같은 긴여정이구나를 깨닫습니다. 하지만 마라톤도 끝나는 선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출발선이 있고 또 끝나는 선이있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헌법의 기초를 쓰고 건국의 아버지중의 한 사람이라고 불리는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확실한건 없지만 죽음과 세금은 확실하다, "In this world nothing is certain but death & taxes."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인생에서 끝나는 선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 자신들도 끝나는 선이 아마 몇백년쯤 뒤에 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우리 어머니만큼 산다면 제앞에 12년이란 세월이 남았습니다. 만약 제가 우리 아버지만큼 산다면 저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저의 동역자 룻의 바람대로 산다면 30년 이상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일찍이 혹은 늦게 올수도 있습니다. 그 선이 일찍 오든지 나중에 오든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런데 KJV 에 보면 "and as it is appointed unto men once to die". 우리는 죽음과의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는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요 피할수도  또 연기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죽음과의 약속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앞에서 확실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바울은 그의 마지막 죽음 까지도 주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렸습니다. 자신이 로마서 12:1에 말한대로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순교의 제물입니까!

둘째. 내가 선한 싸움을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7)

이제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그분의 믿음의 유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말씀은 그의 마지막 인생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보고이며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기는 legacy 입니다. 바울은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원칙과 의무의 삶을 살았습니까?

첫번째로 그는 훈련된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는 싸움군이나 복싱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마주친 계속되는 투쟁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4-5에서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란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것과 수고로움과 자지못함과 먹지 못함과". 또 다른 성경에서는 바울의 영적인 투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어두움과의 싸움, 육신과 정욕의 싸움, 이방인들의 우상과의 싸움 등입니다. 바울에 대해서 무엇을 말 하든지간에 우리는 그가 쉬운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싸움을 피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마침내 모든 투쟁이 끝나갑니다. 곧 그의 총사령관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이 전투의 삶으로부터 명예로운 전역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군사에서 승리자로 추앙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선한 싸움을 마쳤습니다,

두번째로 그는스스로 분명한 방향을 잡고 살았습니다. "나는 나의 달려 갈길을 마치고" 여기에서 사도바울이 내가 나의 원하는데로 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 유명한 미국의 가수 Frank Sinatra를 아시죠? 그의 노래중에유명한 노래가 "I did it my way" 내 갈길을 갔네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가사중에 "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My friend, I will say it clear... I did it my way, Regrets, I've had a few.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자 지금 내인생이 거의 끝났구나. 내가 마지막 커튼을 마주하고 있네. 친구여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내 갈 길을 갔는데 후회막심이군. 내가 하기는 뭘 좀 했는데 내세울만한건 하나도 없다네". 저는 Frank Sinatra 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갈 길을 갔다가 마지막이 가까워 올 때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인기 가요가 된 것은 바로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모든사람들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이 아닌 우리 자신의 고집대로 갈 때 결국은 후회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노래가사대로 우리는 인생에서 뭘이룬것 같은데 내세울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미국과 유럽의 초상집에서 단골로 불려지는 장례식 성가(Funeral hymn or hymn at Wake)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후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자랑스럽게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노라" 하고 말합니다. 그의 삶은 예수님의 정해주신 방향을 잡고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충실히 이행하면서 살았습니다.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좋은 때나 나뿐 때나 행복한 때나 고통스러울때나 예수님의 방법대로 살았습니다. 그가 지난날을돌아볼때 아마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로 쉽지 않은 삶이었다 어떤 때는 정말로 어렵고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방황도 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길을 인도해 주셨다. 예수님의 은혜로 마침내 끝까지 올수 있었다" 라고 말입니다. 내방식대로 내갈길을 가면 반드시 후회하지만 예수님 인도하심따라 살면 바울과같이 자신있게 나의 달려갈길을 마쳤노라 할것입니다.

세번째로 그는 참 믿음의 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믿음을 지켰노라". 이 말씀은 진리를 위해서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또 세상이 그를 미워할때도 그는 전혀 개의치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않고 분명한 복음진리와 회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의 위협도 감수하고 견딜수없는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마이웨이(My way) 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믿음을 지키고 목적이 이끄는 삶이 였습니다. 어떤일이 일어나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좋을때는 물론이지만 나쁠때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일만 있어야 되는데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지키는 전쟁이요 투쟁입니다. 우리도 사도의 믿음을 배우고 지킴으로써 나도 믿음을 지켰노라 하고 인생 후반부에 고백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얼마나 당당한 믿음입니까!

셋째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8)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 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빛나는 믿음이 로마 감옥의 모든 어두움을 삼켜버렸음을 볼수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죽음의 고통을 넘어 의의 면류관이 있는 것을 봅니다. 과거의 고통과 아픔들이 이제 모두 그의뒤에 남고 믿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상받아 보셨죠? 그리고 상받을때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아시죠? 제가 초등학교때 안동군수가 주는 상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때 밑에쓰여진 안동군수 이승희 라는 이름이 50년도 더지났는데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상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상상이 됩니다. 그후로 중 고 대학시절 동안은 한번도 상을 받은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받을상은 어떤 상입니까? 그의상은 보장되어 있고 또 하늘나라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상은 의의면류관의로 영광스러운 상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 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것을 봅니다. 상을주실분은 의의 재판장 주님이시오 상을 받을 사람은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상을 어떤 위원회로부터 받는 것도 아니고 우편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상은 군수, 장관, 대통령상, 아니 노벨상이라도 감희 비교할수 없습니다. 만왕의왕,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로 부터 직접 받을것입니다. 이상은 또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며 사는 모든 사람들, 즉 여러분 위해 준비된 상 입니다. 하늘나라의 상급, 의의 면류관 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상입니까!

오늘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참으로 의지가 강하고 보통사람들은 범접할수없는 비범함과 초인적인 능력이있기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상에 초인이 있습니까? 영화나 소설에만 나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고백 고린도 전서 15:10을 기억하세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빚진자의 심정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고 의의 상을 받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잘 알수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이 입은 주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것이었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미국에 멤피스라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미시시피 강위에 부산의 영도다리같은것이 있습니다. 오클라호마에 살던 한청년이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테네시주에 있는 멤피스로 이사를 갔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다른직장을 잡을수없어 교량지기로 직장을 얻어 일하면서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는 다리를 내리고 또 배가 지나가는 시간에는 다리를 올렸습니다. 희망이 없는 직장이지만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10살된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여느때와같이 하루는 아들이 점심도시락을 들고 아버지를 찿아와서 교량목에서 함께 먹으면서 아버지의 일하는것을 지켜보며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큰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하는 아버지는 이 세상 누구보다 크게보였습니다. 점심이 끝나고 아들은 다리난관 쪽으로 걸아가면서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자랑스럽게 "아빠" 하고 몇번이나 불렀습니다. 아빠도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아" 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돌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움직이는 큰 기어박스 속으로 떨어져 양쪽 톱니바퀴사이에 끼여버렸습니다. 당황한 아빠는 아이를 구하고자 내려갈려는데 멀리서 수백여명을 태운 기차의 정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아빠는 어찌할줄 몰랐습니다. 다리를 내릴려니  톱니바퀴가 돌아가서 아이가 죽고 내리지않으면 기차승객들 모두가 강속으로 떨어져 죽습니다. 여러분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차는 점점다가오고 아이는 밑에서 구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양쪽을 흘끔흘끔 돌아보던 아버지는 마침내 결정했습니다. 아들을 희생함으로써 기차속에 있는 승객 모두를 살리고 다리를내리는 손잡이를 힘껏당겼습니다. 다리는 내려가고 톱니바퀴는 돌아가면서 아들은 갈기갈기 찢어젔습니다. 기차는 아무일없이 지나가고 아버지는 허둥지둥 내려가서 피투성이가 된 죽은 아들을 붙들고 오열을 합니다. "아들아 아들아" 눈동자같이 사랑하는 아들,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잃고 통곡하고있는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많은 생명을 살리기위해 아들을 죽이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살리기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세상이 불평등하다고요? 그래서 믿음을 지키기 어렵습니까? 기차승객들을 살리기위해 아들을 죽인 아버지야말로 불평등 하지 않습니까? 죄인들 살리기위해 죄없는 아들을 죽인 하나님이야 말로 불평등 하잖아요! 왜요. 우리를 너무사랑하사 불평등을 감수하신 하나님사랑. 그사랑 그은혜를 알때 우리도 사도 바울과같이 믿음의 삶, 빚진자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 은혜만이 우리의 믿음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찬송가 "너 거기 있었는가" 아시죠? 제가 음치지만 1절만 불러 보겠습니다.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Whoo ooh ooh ooh Sometimes it causes me to tremble! tremble! tremble!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 항상 기억하세요. 사도 바울의 13권의 편지에는 모두 은혜가 있을 찌어다 하고 시작하고 은혜가 있을지어다 하고 끝냅니다.  은혜는 있어도되고 없어도 되는게 아닙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알때 우리도 이 험한 세상에서 바울과 같이 믿음을 지키는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간암 진단을 받고 제자신에게 물어 봤습니다. "Now what?" 이제 뭐? 제가 내린 답은, "Regrets" 후회뿐이네 였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볼때 저는 많은 허물과 용서받을수없는 죄만 남겼습니다. 제 과거를 되돌려서 그 모든것들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못난만큼 오히려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와 긍휼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은혜들중 몇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1954년 경북 안동에서 5남매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가정은 유복하고 당시에 일본 유학가서 대학까지 나오신 아버님은 집안에서는 엄하시고 밖에서는 가난하고 약한자들 돌보셨습니다. 어머니는 바깥일로 바쁘신 아버지를 대신해 자녀들을 조상들 가르침을 인용하며 유교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저는 어릴때 건강했고 잘 먹었습니다. 부모님은 맏형님은 맞이로 둘째 형님은 몸이 약해서 제 여동생은 외동딸이라서 막내동생은 막내라서 관심과 사랑을 주었으나 저는 별로 신경안써도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니 그대로 버려두었습니다. 어린생각에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무술도장에 나가면서 학교에서 소위 주먹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고 담배와 술 그리고 극장가를 배회하면서 중, 고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은 지방삼류에 들어갔고 토탁회(토요일마다 탁주 마시는모임) 를 만들어서 대구 동성로 다방과 향촌동 술집에 있는 시간이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많았습니다. 저는 황금같은 학창시절을 무의미하고 철학도 사상도없이 낭비해 버렸습니다. 이런자를 1975년 군복무중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대구에서 훈련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갈렙 목자님의 도움으로 당시 가장 아리따운 여인 룻동역자와 1979년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후 1989년 주님의 은혜로 아리조나 주립대 개척을위해 10년간 다니던 안정된 직장 태영을 그만두고 종로에서 훈련을 받은후 선교지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않은 저희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영어도 어렵고 문화충격도 크고 무엇보다도 식당일 청소일을하며 새로운곳에 정착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주님께서 1년만에 언어정복도 도와주시고 물질자립도 주립대 환경미화원 으로 안정된 직장과 무료등록금 혜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교사로 미국에온지 3년째 되던해 근무했던 회사의 태영 부회장님이 연락했습니다. 자네 미국에 있으니 알라스카 개척의 지부장으로 가면 어떻겠는가? 그때 저는 가난을 벗어나고 알래스카 대학캠퍼스를 섬기면된다는 명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가지 않았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때까지도 때묻지않은 순수한 열정이 있었는지 두번생각않고 "NO" 하였습니다. 그저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

또한번의 갈등은 당시 아리조나에서 가장 큰 한국교회 지구촌 교회 목사님이 제게 신학교를 보내주고 모든 등록금을 지원할테니 우리 교회에 와서 국제결혼하신 분들의 모임이 있는데 매주 영어 설교만 한번씩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제게는 참으로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신학을해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내면에 깊은 명예욕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목사님께 저는 대답하기를, "죄송합니다 목사님, 저는 평신도 선교사로 사는것도 과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낮은신분인 환경미화원 으로 일하면서 어떻게 그런 제의를 사양할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당연히 명예욕을 따라갔을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간호대학 과정에서 병원실습을 갔는데 환자중하나가 저의 영어발음 액센트를 불평해서 간호학과장이 저보고 영어를 더배우고 연습해서 오라면서 탈락시켰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플과 예과 과정을 모두 우수하게하고 본과에 들어왔는데 환자 한명의 불평으로 쫓겨나는것이 억울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학과장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종차별에 근거한것으로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빽없는 저로서는 속수무책이였습니다. 그래서 학교 심사 소청 위원회에 억울함이라도 한번 호소해보자고 하면서 거의 20페이지의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문법이고 문장의 세련됨이고 개의치않고 안생소감 쓰듯이 간호학을 한이유가 자비량 선교사로 또 예수님같이 아픈 환자들 돌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아픈환자 위한다는것은 그때는 그저 하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회 청문회에 가서 질의응답이 끝나고 최후진술을 할때, 저는 창세기 12장 1-3을 인용했습니다. "저는 미국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러온 평신도 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사로온 나를 축복하면 축복받으리요 저주하면 저주 받을것입니다" 하고 마쳤습니다. 그후 2주뒤에 다음학기부터 복학하라는 통지가왔고 학과수석졸업하고 학과장은 전출되어 갔습니다. 저는 다윗이 골리앗을 눕히는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큰 위기는 2000년경 저는 영적으로 힘들고 방황 하였습니다. 외부적인 문제든 내부적인 문제든 저는 고향센타를 자의든 타의든 떠나게 되었고 갑자기 부모형제와 끈떨어진 고아같은 신세로 전락한것같이 외롭고 고독하였습니다. 특별히 외딴곳에서 가정교회를 계속하는것이 견딜수없도록 외롭고 깊은 고독을 느렸습니다. 많은 가정교회들이 한인교회로 흡수되는것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외롭고 고독해보신적 있으시죠? 외로움은 죽는것보다 힘든다고 했지요. 견딜수 없는 외로움의 고통으로 내 인생이 마치 망망대해에 나침반이 없는 조그만 보트에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양마가 목자님이 아리조나로 전화하셔서 저의 가족을 안암센터로 초청해 주시고 고아와같은 저희들을 품어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자녀들도 방학마다 부르시고 도와주시고 다윗 주니어는 믿음의 가정까지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후로는 저희는 더이상 외롭지 않고 김 모세 목자님과 안암이라는 든든한 후원자 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믿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시고 은혜로 선교사명에 남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결과 선교자에서 세명의 가정교회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다니엘챙(타이완 유학생) 데이빗 김 주니어(2세 선교사) 그리고 갈렙 쿡(미국 현지목자) 가 가정교회를 이루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개척하여 목자하나 세우는것, 특별히 가정을 세우는것은 저로서는 불가능이였으나 온전한 주님의 은혜로 역사의 기초를 놓을수있어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한것은 제 동역자는 그래도 열심히 밥하고 머리도 깍아주고 했으나 저는 성질만 내고 양들을 좇아내기만하는 허물만 남겼습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제가 간암 진단을 받은후 안암 UBF의 기도와 지원은 무익한 종인 저에게는 값없는 은혜였습니다. 특별히 양마가 안나 선교사님, 김모세 이누가 목자님 안암 1, 2부 동역자님들은 가족이상으로 돌봐주시고 간절히 기도해 주신 은혜는 잊을수가없고 빚진마음 잊지않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천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많은분들을 통한 주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 저 자신도 하나님께 암에 대해 투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었지만 주님 앞에 믿음으로 살고 몇년 남지않은 삶이나마 주님께 관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고 육체적인 병의 회복에 관계없이 주님의 사랑을 의심치않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실 투병기간 동안 직장일을 게을리하거나 제가 준비해야할 주일 말씀을 빠지거나 룻은 주일 점심 섬기는일등을 감당하지않는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은혜로 기쁨으로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제 와이프 룻이 당신 투병기간동안 한번도 짜증낸적 없어요 "You never got cranky" 하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목자님들이나 친구 친지들이 위로 전화오면 오히려 그분들을 위로하고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룻 동역자에게 죽음을 초월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한예로 제게 기증자가 나타나기 일주일전 2015년 10월에 간에 새로운 덩어리가 세개나생겼습니다. 그 덩어리들 제거시술을 받고 열이 너무도 오르고 집에 쉬는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 이제 곧 하늘나라 가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룻동역자가 기증자 기다리다가는 죽겠으니 다윗 주니어 간을 이식받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때 방문했던 아들도 그렇게하자고 권했으나 저는 하늘나리 가는것도 주님 뜻으로 영접했기 때문에 거절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지난 60년동안 주님주신 은혜가 감사할뿐이었습니다. 처 자식 먹여살려야 하는 아들에게 1%라도 잘못되는것을 원치않았습니다. 일주일 쉬고 다음주 화요일 수요일 정상출근하면서 열심히 일을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2014년 10월29일) 아침 기증자가 있다고 수술연락이오고 성공적인 수술로 새생명을 받았습니다.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 간호사들이 이렇게 누더기같이 된 간을 가지고 생존해 있을뿐만 아니라 직장까지 그만두지 않은것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빠른회복과 전혀 문제없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든과정이 병원 역사에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가지예로 이식수술후 입원을 4일만한것은 미국 병원 역사에도 처음입니다. 이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열차속의 승객들과같이 저는 한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먹고살고 죄짓고 허물만 남겼는데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사랑입니다. 새생명을 받았을때 참으로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을 다시 보니 살아있는것이 참으로 기쁨니다. 생명은 참으로 좋은것입니다. 육신적인 생명도 이렇게 좋은데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 주님이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믿음으로 살 때 이 상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앞에 놓여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고 기대가 됩니까? 주님은 우리의 투쟁과 그를 위한 희생을 절대로 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싸워왔는지 얼마나 어려운 유혹을 견뎌왔는지 또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지켜왔는지 다알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 경주를 마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을때 내갈 길을 가다가 후회하는 것보다도 주님앞에서 자랑스럽게 나는 믿음을 지켰노라 하고 고백 할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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