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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다니엘서 제 4 강
성경본문 다니엘서 4:1-37
전한날짜 17/10/22
ㆍ조회: 398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
다니엘서 제 4 강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
말씀: 다니엘서 4:1-37
요절: 다니엘서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 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다니엘서에는 다른 성경과는 달리 독특한 기록들이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구약성경의 기록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그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의 기록을 보면 모든 것이 이방 바벨론과 페르시아 왕궁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보여준 묵시 속에는 헬라 제국, 로마 제국 등 많은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의 운명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대로 결정된다는 것을 일관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한 제국의 왕의 생애도 하나님께서 개입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을 대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교만할 때 그를 치시고 짐승같이 행하게 하시고, 회개했을 때는 다시 왕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이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나라와 왕들의 심판자요 주권자되신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 교훈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오늘날 나라와 우리 각사람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Ⅰ. 느부갓네살의 꿈(1-18) 
 지난 시간에 배운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세우고 낙성식을 할 때가 BC 585년이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 속에서 구하신 그들의 하나님을 높이고 만일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그 몸을 쪼개고 그런 사람의 집은 거름터로 만들겠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4장에서도 조서를 내립니다. 이때가 BC 562년입니다. 그러니까 금신상 낙성식이 거행된지 23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느부갓네살이 내린 조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절-3절을 보십시오. 그의 조서에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요,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28-30절에 나오는 조서와 4:1-3절에 나오는 조서를 비교해 볼 때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3장에서는 왕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구원 받은 사건을 통해서 그들의 하나님을 그냥 여러 신들 중에서 뛰어난 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인정했지만 자신의 하나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능하고 놀라우신 분이요, 나라와 통치의 주권자요, 하나님은 영원한 주시라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하나님을 알게하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즐거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우상 숭배자요 교만하고 포악한 했던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일까요?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느브갓네살은 이제 그 이야기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이 때는 느부갓네살은 그동안의 쉬임없었던 정복전쟁을 마친 때였습니다. 세계의 부는 그의 창고에 쌓여 갔고 그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만족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제국을 생각하고 거대한 바벨론 성을 바라볼 때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천하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한 꿈을 꾸고나더니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가 꿈에서 본 환상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계의 정복자로서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 하나로 인해 그는 두려워하며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는 견디다 못해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불러 꿈을 말해주고 해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니엘이 그 앞에 들어왔습니다. 왕은 이때 다니엘이 과거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던 꿈을 맞추고 해석해준 것을 기억하며 그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꿈을 말해주고 해석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꿈의 내용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은 어떠했습니까?  
 
 10-17절까지는 왕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그의 꿈은 2 부 작이었습니다. 제 1 부는 기분이 좋은 꿈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땅의 중앙에 있는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점점 더 높이높이 자라났습니다. 그 나무는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마침내 나무는 하늘에 닿아 땅 끝에서도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는 풍성하여 만민이 먹을 것이 될 만했습니다. 그 그늘 아래에 들짐승들이 안식하고 있었고 공주의 나는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습니다.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다 거기서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온 세상이 이 나무 때문에 사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이 나무를 보면 이 나무는 영원할 것 같습니다. 이 나무가 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의 꿈을 생각하면 왕은 기분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의 꿈이 이어졌습니다. 꿈의 2부는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여기서 ‘순찰자’는 하나님이 보낸 감찰자 watchman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순찰자가 크게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를 보십시오. ‘ ...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그리고 순찰자는 꿈의 말미에서 꿈의 의미까지 말해주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면 다 잘난 사람인줄 아느냐, 아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천박한 자도 나라 위에 세워 그 나라의 왕을 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이여, 네가 이 큰 나라의 왕이라고 자기를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하나님은 너같이 지극히 천박한 자라도 나라의 왕으로 삼아. 하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아별 천박한 사람도 나라의 왕으로도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 순찰가가 한 말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 나라의 주관자되신다. 그래서 왕도, 대통령도 그 뜻대로 세우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째서 저런 사람을 왕에 되게 하셨는가, 대통령이 되게 하셨는가 하고 탄식하기 보다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깨닫고 구속사를 섬길 수있습니다. 세상의 정치와 경제 속에는 세상을 섬기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가 아주 풍성히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도자를 보고 처량한 생각이나 탄식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 편에서, 구속사의 맥락에서 사건과 사건들의 뜻을 생각하고 깨닫고 하나님 역사를 섬기며 기도하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다니엘의 꿈의 해석(19-37)
 왕의 꿈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은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꿈은 하나님이 왕을 징계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모셔 서고 있는 왕에게 이런 흉한 소식을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말합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다니엘은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왕에게 임한 일을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해석은 어떠합니까? 첫 번째 꿈은 느브갓네살의 영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왕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여 하늘에 닿고 그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 잎사귀가 아름답고 풍성한 것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번영을 상징합니다. 고고학 발견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살던 왕궁은 가로 세로가 각각 9.6km 였다고 합니다. 그는 건축 애호가로서 바벨론 제국의 곳곳에 대신전들을 세웠습니다. 또 유명한 공중 정원(Hanging Gardens)을 지었습니다. 또한 백 개의 문들이 있는 높은 성벽 위에는 4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그 위에서 회전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었습니다. 또한 높이 약 100m나 되는 성벽 타워가 있었고 수 톤에 달하는 금신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얼마나 엄청났던가를 보여 줍니다. 이 나라는 참으로 세상 만민을 먹이고 입힐 만큼 모든 면에서 풍성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권세와 영광은 너무나 엄청나서 영원할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해석은 왕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순찰자를 보내 그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찰자 watchman 을 보내신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들을 감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역대하 16: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또한 시 138:6절은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 중심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등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느부갓네살 왕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셨는데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며 교만할 때 하나님은 순찰자를 보내 그 나무를 베어버리라며 심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신 순찰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고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좀 부족해도 진실되게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겸손히 긍휼을 구하는 자를 보시고 크신 은혜를 베풀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자를 보시고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은 죄악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갑자가 자유를 빼앗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좀 나쁩니다. “나를 감시하지 말고 좀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까? 나를 보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기에요? 하나님은 악을 행하고 교만하 자를 다 보고 계시며 때가 되면 심판하십니다. 이래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악을 행할 때  징계하시고 우리를 바로 세워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부당한 감시자가 아니십니다. 죄를 즐기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 하나님을 참 불편하신 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 감사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우리의 선행을 기뻐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고, 악인의 악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깊이 감찰하시고 반드시 모든 것에 보응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늘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왕에게 임한 심판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떠합니까? 이것은 앞에서 읽은 대로 느부갓네살이 왕으로서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박탈당하고 사람에게서 쫓겨나 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때 동안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곱 때 할 때의 때는 꼭 1년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계절, 혹은 반년 등 어떤 일정한 기간을 말합니다. 대체적으로 일곱 때는 3년 반으로 여깁니다. 어쨌든 이런 훈련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은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닫게 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자비로우셔서 그를 뿌리째 뽑아 버리지 않으시고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습니다. 아무도 이 그루터기를 어떻게 할 수 없도록 쇠와 놋줄로 동여 들풀 가운데 가둔 것은 그를 영원히 멸하고자 하심이 아니요 그를 낮추시고 회개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를 통해 하나님의 종의 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왕에게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때 하나님 편에 서서 분명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에게 꿈을 해석해 주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과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악한 일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무자비하게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또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와서 제국을 건설을 위한 노예로 삼았습니다. 왕은 죄가 많습니다. 큰 죄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왕이 죄를 회개하고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창고문을 활짝 열어서 이들을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며 상한 심정으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자는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왕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진실되게 죄를 회개하면 다 받아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는 자는 이 피값으로 대속하여 구원하십니다. 다니엘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왕에게 조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목자 된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자세로, 그리고 목자의 마음으로 주의 양무리들을 섬길 수 있게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말을 들은 왕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왕은 다니엘로부터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또 동시에 그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복음의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심판히시는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영접해야했는데 과거같이 ‘너 신통하구나 해석해 줘서 고맙다’하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렸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8절부터는 자기가 어떻게 교만하게 행하다가 심판을 받고 또 거기서 구원받게 되었는지, 모든 것이 꿈의 내용대로 되었음을 회고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어느 날 그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때에 바벨론 성을 내다보며 자신이 이룬 업적으로 인해 자만심에 빠져 독백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내가, 나의 도성, 내 위엄의 영광." 그는 자기의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다고 하고 성도 ‘나의 도성’, 위엄도 ‘자기 위엄’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화자찬하며 스스로 영광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느부갓네살은 한없이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느브갓네살은 이미 다니엘로부터 교만하면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것을 전혀 마음에 새기지 않았습니다. 잠언서 16:18,19의 말씀에 의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약 4:6).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여지없이 낮추셨습니다. 왕의 자만심에 찬 말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이때 느부갓네살은 땅을 기면서 소 흉내를 내고 ‘음메~’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깜짝 놀라 그를 들로 내쫒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정말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의 몸은 하늘 이슬에 젖고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게 되었습니다(32,33). 하나님은 그의 이성을 앗아가시고 짐승의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현상은 수광병이라는 정신질환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환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동물처럼 행동하면서 그 동물의 특유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우광병 환자는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고 '음메'하고 소처럼 울며 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생의 모습을 잘 말해 줍니다. 로마서 1:21-31절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자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버렸을 때 인간의 고귀함을 상실하고 짐승의 마음을 가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인간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죄짓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니 이게 어찌 제정신입니까?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멸시하고 이 하나님을 자기 삶에서 몰아내며 교만히 행할 때 그 결과는 그 결과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품격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늘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겸손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멸시하며 교만히 떠드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형상을 잃어버리고 누구라도 짐승같이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 일곱 때가 지났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여기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하나님께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겸손하게 되었을 때 훈련은 끝나고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왕권도 회복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자기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음을 심령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에 그는 자기를 구원해주시고 다시 높여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합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는 이제 총명이 돌아왔으며 나라의 영광도, 자신의 위엄도 광명도 다 되찾게 되었고 그는 다시 세움받고 그의 나라는 위세가 극에 달했습니다(36). 하나님께서는 그가 겸손했을 때 그의 모든 것을 되돌려주고 그의 나라와 권세를 더 강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는 정말 큰 죄에 빠졌었지만 구원받고 그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왕은 지난 날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한 후 최후로 말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느부갓네살 왕이 겸손 훈련을 받고 깊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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