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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다니엘서 제 5 강
성경본문 다니엘 5:1-31
전한날짜 2017/10/29
ㆍ조회: 384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서 제 5 강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말씀: 다니엘서 5:1-31
요절: 다니엘서 5: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다니엘서 5장은 바벨론 왕국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의 꿈과 그 해석을 통해 느부갓네살에게도 이미 계시하신 것입니다. 바벨론 왕국은 그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것같이 보였으나 100년도 못 되어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군사나 경제력의 부족에 있지 않고 영적, 도덕적 부패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 부패로 멸망했듯이 바벨론의 멸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한 나라의 멸망은 이것을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이지 그 외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바벨론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그 마지막 날에 있던 일을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의 결정적 죄악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이것을 함께 살펴보고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지, 그리고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벨사살 왕의 잔치와 하나님의 글씨(1-16)
 1절을 보십시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 술잔치를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신하와 왕후, 후궁들까지 다 오게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벨사살 왕은 지금 섭정 왕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나보니다스 왕은 바벨론 왕국의 초기 영광을 되찾겠다며 원정을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기를 17년째입니다. 느브갓네살 왕 이후 왕위 다툼이 치열했고 그런 만큼 나라가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나보니다스 왕은 정복전쟁을 위해 자기 아들 벨사살에게 왕 자리를 임시로 맡긴 것입니다. 그러면 벨사살 왕도 아버지가 이렇게 애쓰는 만큼 자기도 나라를 통치하고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 신흥 메데와 바사 연합군은 나보니다스가 군대를 이끌고 원정 가있는 만큼 이때를 이용해 바벨론 성을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벨사살은 이런 큰 술 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 성의 견고함을 믿었습니다. 바벨론 성은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둘러싸인 천연적인 요새와도 같습니다. 도시 주위에는 높이 10.6m 폭 2.6m의 성벽이 세워져 있었고, 이 벽 안쪽으로 800m 떨어져 똑같은 높이의 성벽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두 벽 사이에는 기름진 땅이 있어서 적이 도시를 포위할 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외벽 바깥으로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해저를 만들었는데 9m 깊이의 수로가 벽 주위를 따라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수로의 물은 유프라테스강에서 끌어 오기 때문에 항상 풍부했습니다. 이러한 바벨론은 난공불락의 성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지 지금 적인 침공해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다는 것은 그가 참 속없고 교만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술잔치에  와 있는 귀족, 고관들이요 왕후들과 후궁들도 다들 정신 나갔습니다. 지금 얼마나 위급한 때입니까?
이것만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 그는 술을 마실 때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은, 금 그릇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금과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벨사살을 위하여, 금신상을 위하여!’ 지금 벨사살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우상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능멸하고 있으니 이거 얼마나 망령된 짓입니까? 이것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 다니엘의 말에서 나오지만 그는 과거 느브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놀라고 조서를 내리며 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높이 찬양했던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술취하여 음탕한 잔치를 벌리면서 자기가 하나님 보다 높다는 식으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이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공공연하게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를 보며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비웃어가며 깔깔대며 술을 마셨습니다. 세상이 자기들 세상 같지요?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 함께 5절을 보십시오. 벨드사살이 이렇게 ‘위하여’를 소리높여 외칠 때 왕궁 촛대 맞은 편 석회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손가락은 어떤 글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왕이 이 손가락을 보고 얼굴 빛이 변하고 저것이 뭐지? 하면서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쳐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왕은 소리쳤습니다. “술객과 갈대아 술사, 점쟁이를 불러와라.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해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 목에 걸어주겠다.”. 그리고 그를 자기 다음의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큰 상을 걸어도 누구도 그 글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왕 뿐만이 아니라 함께 그 잔에 순을 마시던 귀족들도 다 두려움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나타난 손가락 하나로 잔치의 모든 것이 all stop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panic에 빠졌습니다. 이 손가락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성전의 그릇으로 술마시고 우상을 찬양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가소롭고 우습게 보셨겠습니까? 세상 권세와 나라와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이렇게 손가락 하나만 나타나도 끝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단체, 나라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고 무시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며 술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자기들에게 아직 아무런 일이 안일어나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참으시고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실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그렇게 방자하게 굴던 어느 날, 죄악이 쌓다가 어느 임계점에 달할 때 그들 앞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는 것을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망하기 시작합니다.  최후의 심판 때는 손가락 정도가 아니라 백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 너무나 무서워 기절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권세와 부, 젊음. 건강 ...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이런 것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놓고 대단한 것인 양 함부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깐 손 좀 보시면 다 끝입니다. 우리는 오늘 내 안에 있는 교만을 살펴보며 그것을 다 털어내야 합니다. 어제도 괜찮았고 오늘도 괜찮으니까 내일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즉시 떨어버려야 합니다. 교만은 참 헛된 것입니다. 어제도 참고 오늘도 참으신 하나님이 이 다음 순간, 내일에는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은혜의 때입니다. 교만과 죄는 속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손가락이 나타나 정해준 운명을 맞을 것이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면 하나님은 공포의 손가락 대신 은혜와 사랑의 손길로 우리를 광명과 생명, 평강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리 큰 나라도 물통 속의 한방울 물과 같이 별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 이름을 경외함으로 살아가야 할 뿐입니다.  

 벽에 씌여진 네 글자로 인해 연회장이 순식간에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을 때 왕비가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왕비는 왕을 안심시키며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곧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의 우두머리로 삼았던 다니엘을 소개하며 그에게는 지혜와 총명이 있어 이런 글을 능히 읽고 해석할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은 왕의 부름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왕은 다니엘에게 글을 읽고 해석해 주면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Ⅱ. 벨사살 왕을 책망하고 해석해준 다니엘(17-31)
 이러한 왕에게 다니엘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 ....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해석은 하나님의 일인데 다니엘은 그것을 해석해주면서 이 땅에 어떤 것으로 보상받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의 영광이란 풀의 꽃같이 허무한 것이 아닙니까(벧전1:24)? 그는 처음 바벨론의 끌려왔을 때나 지금이나 긴 세월동안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만큼 그의 영적 눈은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죄악된 환경과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분명한 자세로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로서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18-24절까지는 벽에 쓰인 글씨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해석에 앞서 벨사살 왕의 교만을 책망합니다. 그는 먼저 느부갓네살 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말해줍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느부갓네살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마음이 높아지고 뜻이 완악하여 교만하게 행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서 나온 것같이 그는 큰 바벨론 성을 바라보면서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하면서 모든 것이 자기가 한 것처럼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그가 바로 이렇게 말할 때 ‘그래?’ 하면서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폐하시고 그가 이 모든 영광과 자랑을 잃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 그 마음이 짐승과 같아졌다고 말했습니다.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느부갓네살은 비로서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를 세우는 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것을 깨닫고 자기 백성들에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조서를 전국에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통치자일수록 더욱 그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는 것이 이 교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벨사살 왕이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술잔치를 벌리고 성전의 그릇을 술잔 삼아 마시면서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그에게 말합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우리는 배우고자 해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음란과 우상숭배를 경고하면서 이스라엘 역사에 기초해 교훈했습니다. “ .... 그들이 멸망하였느니라.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성경은 교훈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다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겠다면 뭐 하러 성경을 공부합니까? 청소년기에 있는 사람들, 중고등 학생들은- 중딩, 고딩 –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다 인생 경험에서, 신앙경험에서 나온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만 한다’고 하며 짜증내고 문을 쾅 닫고 제멋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잘되는가. 잘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배우고도 배운대로 해야지 우리가 말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이것을 진심으로 배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호흡은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완악하면 하나님은 언제라도 우리의 호흡을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자존심, 완악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의 교훈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멸망이냐 축복이냐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아직 손가락이 나타나기 전에.

 이렇게 왕을 책망한 후 다니엘은 글을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이 단어들은 모두 명사형인데 그 의미를 풀어 말하면 메네는 "세어 보았다," 데겔은 "무게를 달아보았다," 그리고 우바르신의 ‘우’는 접속사 ‘그리고’이고 바르신은 ‘베레스’라는 단어의 복수형인데 "두개로 나누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무서운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
 ‘메네’는 하나님께서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메네’가 두 번 반복된 것은 강조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세셨다, 여기에 오류가 없습니다. ‘너는 끝났다’ 이것은 확고하다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이 교만했을 때 하나님은 이제 그의 날들 세어 끝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끝났다고 선언하시면 모든 것은 중지됩니다.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곧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의 생각이나 말, 행동, 그리고 그의 삶, 이 모든 것을 달아보니 도무지 무게가 나아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무거운 왕관을 쓰고 있었지만 그는 참으로 속없고 경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 방탕함으로 그는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베레스’는 무게를 잰 결과로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메대와 바사의 침공으로 그의 왕국은 망하고 벨사살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먹어야할 자기 죄의 열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a), 그 후에는 오직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히 9:27). 그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나라도 왕의 권세도 다 끝났습니다. 30, 31절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세였더라.’ 이스라엘의 왕들이 우상숭배하고 영적으로 타락하였을 때 나라가 망했듯, 바벨론도 이렇게 왕이 하나님을 멸시하며 우상을 찬양하며 숭배했을 때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정치, 경제, 외교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특히 지도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많이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서도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호흡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우리의 날 수도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 존재의 한없는 가벼움을 느낍니다. 이 존재의 가벼움, 바람 불면 꽃씨 같이 어디론가 후욱~ 날아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절망스럽습니다. 우리의 영적 무게는 얼마인지,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진다면 이대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 모든 것이 암당하고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믿는 자로서 최소한의 자기 무게는 지키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사무엘상 2:3은 말합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우리는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의 입에서 오만한 말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의지해 살아가면 됩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우리의 무게를 더해주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있습니다. 주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므로,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의 이 엄청난 은혜 덕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어보고 세어보아도 부족함이 없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우신 의는 우리 것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을 통과해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이 은혜를 잘 지켜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꼭 알아야할 것은 우리가 이렇게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은 세고 계시고 달아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이상 사용하실 수 없고 축복해주실 수도 없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얘야, 아무리 세어봐도 안되겠다. 그만 살아라. 그리고 더 죄짓기 전에 데려가십니다. 사울 왕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교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자기 부하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이런 그는 회개할 기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았고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걸 알겠다고 무당에게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시며 그를 돕고자 하셨지만 그의 날을 세고 또 세어보시고 확정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 이상 무게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났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같은 날 그의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다윗은 어떠했나요? 그는 처음에 잘했는데 그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제로 궁궐로 불러들여 통간하므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무게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간에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는 다툼이 일어나고 나라는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라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시며 이 원칙을 적용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한없이 고귀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행동은 천박하여 예수님을 슬프시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죄악된 우리 본성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적당히 봐주고 지나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이 죄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핍박과 유혹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가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히 12:4).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이 그대로 보응하시고 축복할 자를 축복해주십니다. 그러나 적당히 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7-9)

‘메네 메내 데겔 우바르신’ 이 말씀은 벨사살 같이 교만한 자, 불신자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그리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먼저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 It is finished. 끝났다, 내가 너희를 위한 죄값을 다 치루었으니 이제 끌났다 - 하는 이 마지막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벨사살 왕에게 ‘끝났다’는 말은 이제 심판이 남았다는 말이지만 예수님이 하신 ‘끝났다’는 말은 우리를 살려주는 말이요 바로 여기서 우리의 새로운 삶의 시작됩니다. 우리를 심판에서 건져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쓰을 배우면서 그 교훈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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