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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다니엘서 제 9 강
성경본문 다니엘 9:1-27
전한날짜 17/11/26
ㆍ조회: 494  
하나님의 큰 긍휼을 구한 다니엘
2017 다니엘서 제9강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다니엘
말씀: 다니엘서 9:1-27
요절: 다니엘서 9:18b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우리가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다른 어떤 내용보다도 다니엘의 기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다니엘은 많은 면에서 우리들에게 기도의 실제, 그리고 그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는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은 자기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때 그는 얼마나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는지,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도와주시고 구속역사를 섭리하시고 이끌어가십니다. 이런 점에는 우리는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도의 모범을 다니엘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기도했는지 이 시간 함께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다니엘의 성경 공부(1,2)
1절을 보십시오. 때는 메대 족속 다리오 왕이 다스리던 통치 원년이었습니다. 이때는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이때는 정국이 안정이 되지 않아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십시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하나님 말씀 앞에 나와 조용히 말씀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대제국의 신임총리로서 할 일도 엄청 많았을텐데 이런 가운데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니엘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어찌하든지 기도하는 시간과 함께 이렇게 하나니 말씀을 읽는 시간을 확보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민족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팠고 그런만큼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날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다가 해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렘25:11,12). 이는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자기 민족에게 두신 계획을 알게 되었고 이것에 이어 오늘 본문과 같은 위대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 구속사의 비밀이 담겨 있는 위대한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 구속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깨닫고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기도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HOMO BIBLICUS, 우리는 성경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경 한권을 붙들고 이것은 읽고 묵상할 때 우리의 심령에는 삶의 위로와 확신, 활력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가 충만하게 됩니다. 저는 성경 통독을 위해 새번역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내용도 머릿속에 쏙쏙 잘 들어오고 이 말씀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며 새롭게 깨닫는 바도 많아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을 때면 문득 나의 존재의미는 성경을 읽는 데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의 힘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삶은 성경을 읽는데서 시작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히 119:5). 그러므로 우리가 방황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주의 말씀 앞에 나와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Ⅱ. 다니엘의 기도(3-19)
다니엘이 이렇게 예레미야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다니엘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결심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해방의 때가 문턱에 이르렀으나 아직 새로운 제국은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 같지 않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그 은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하는 않는가? 무엇보다도 그는 지난날의 자기 민족의 죄를 덮어두고 그대로 해방을 맞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것을 깨달은 자기라도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자 결심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였고" 이 모습은 비천한 죄인의 모습이요 한없는 애통해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하기에 앞서 이렇게 자신의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죄인이 지금 용서를 구하는 마당에 어떻게 곳곳하게 서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면서 그는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했습니다(4-8). 그는 먼저 하나님을 크시고 두려워할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시요 역사의 주관자시요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크시고 두려워할 분이십니다. 또한 이 하나님은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신앙고백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자기 백성에 자기를 포함시켜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며 애쓰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니엘만큼 하나님 앞에서 살았더라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망하기는커녕 하나님이 나라를 크게 축복하여 번영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백성의 죄를 판단하듯 ‘나는 아니라’는 식으로 자기 백성과 자기를 구별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범죄하여’, ‘우리가 패역하여’ 하며 자기도 백성들과 똑같은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정직한 기도입니까?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자기가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죄악된 본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차이가 없는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이렇게 금식하고 재를 뒤짚어 쓰고 엎드린 것입니다. 5a를 보십니다. 그는 ‘우리가 이미 범죄히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였다’고 했습니다. 정말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이니다.

그러면 그들은 무슨 그렇게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까? 5b,6절을 보십시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이 말한 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주의 종들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죄라고 하면 우상숭배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증거하고 도둑질하는 등 많은 것을 열거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생각한 죄는 좀더 근본적인 것으로, 곧 주의 법도와 규례, 곧 말씀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의 말씀을 듣지않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앗에서 다니엘이 고백할 것처럼 하나님은 주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인자와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떠날 때 거기서부터 죄와 불행이 시자됩니다. 말씀을 떠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허망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또한 육신과 감정과 욕심을 좇아 살게 됨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비참하게 망하게 됩니다. 말씀 공부를 멀리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를 멀리하는 것은 내 자유를 위해 지혜로운 것 같지만 실상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요 패역이요 행악이며 반역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생명을 누리며 삶속의 주의 인자와 자비가 넘치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실제 이스라엘이 이런 죄를 범했을 때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7,8절을 보십시오. "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죄의 결과는 큰 수치였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왕이나 귀족이나 온 백성이 적의 칼에 죽고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오고" 이 말씀은 영어로 보면 "Lord, you are righteous 즉 하나님은 옳으시다.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우리가 범죄 했다고 해서 우리를 이렇게 망하게 하시고 70년 동안이나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까?"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옳지 않음이 없고 그의 심판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심판을 받는 것도 하나님이 어느날 결심해서 임의로 하신 것이 아니라 주께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축복과 저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여 들어와도 복, 나가도 복을 받고 심지어는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매사에 승리의 인생을 살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28:1-14).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행자지 하면 모든 축복이 저주로 변하여 들어와도 저주, 나가도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재앙이 끊임없이 좇아 다니고 그들은 패배의 인생을 살게 되며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여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28:15-68). 그들이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이렇게 기록된 말씀대로 저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반드시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께서 자신만은 특별히 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 했을 때도 봐 주시지 않고 심판하셨습니다. 심판하셔도 아주 엄하게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예외가 없이 누구든지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하시지만 불순종하면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그들을 할말없는 죄인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방금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용서를 구하는 것일까요? 뻔뻔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하나님은 범죄 했을 때는 심판하시지만 그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만 한다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흉악한 강도가 그 죄를 진실되게 회개했을 때 그를 받아 주시고 낙원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공의가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긍휼과 용서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판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해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란 없습니다. 죄인이 무슨 낮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까? 이사야 64:6절은 말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긍휼을 의지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면서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죄를 심판하시면서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한없이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에 약하십니다. 소경거지 바디메오가 어떻게 눈을 떴습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했기 때문에 그가 주님의 긍휼을 덛입고 눈을 떴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며 기도하므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 앞에 나와 긍휼을 구하는 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의 긍휼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있길 기도합니다. 자기의 비천함을 알고 ‘주여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돌봐주십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십시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은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긍휼과 권능으로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재앙으로 애굽은 심판하시고 출애굽하게 하시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도 이 소문을 듣고 이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말했고 가나안 사람들은 이 하나님에 대해 듣고 간담이 녹아 무서워 성문을 꼭꼭 잠그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면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런 것처럼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자기 민족을 용서해주시고 권능으로 구해주시길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주를 위하여’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이 그렇게 명성을 얻으시길 기도한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9절도 보십시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주 자신을 위하여 하옵소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셔서 세상이 알아보는 위대한 하나님이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거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가령 여름수양회를 할 때 큰 회개의 역사가 있길 기도하면서도 이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드러나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조물이요 그의 긍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17:1). 그리고 우리에게 주기도문에서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사옵니다하고 기도를 마치게 하셨습니다.(마6:9)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에 전능하신 능력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는 의를 분명하게 세우시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심판과 환란 속에서 긍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은 긍휼과 영광을 붙들고 주님 앞에 나와 간구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간구하는 기도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목자의 심정에 충만한 기도를 하되 동시에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주의 긍휼을 의지해 우리 민족을 복음으로 축복해주시고 이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나길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기도하고 우리나라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영광 드러내주시길 기도해야합니다.  

Ⅲ. 칠십 이레(20-27)
다니엘이 자기와 그 백성의 죄를 자복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간구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와서 저녁 제사 지낼 즈음에 그에게로 왔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온 것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회복될 인류 구속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디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에는 70이레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실 은혜의 역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는 490일이지만 비유적으로는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90년이 됩니다. 이 기간은 크게 일곱 이레, 육십이 이레, 중간 공백기, 한 이레 4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시간표와도 같습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성경학자 엔더슨 이라는 사람이 믿을만한 계산을 해냈습니다. 그는 처음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한 69이레를 이렇게 계산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BC 445년 3월 14일을 70이레의 시작으로 보고 계산을 했습니다. 69이레가 끝나는 날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바로 그 날이 됩니다. 이때가 AD 32년 4월 6일입니다. 그래서 이 날 이후 왕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늘 말씀대로 죄악을 용서하시고 영원한 의를 세우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 승천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만왕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활동하는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이 끝나는 날 재림하셔서 70이레가 끝나는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성도들은 구원하시고 산자와 죽은 자들을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세우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계획 속에서, 심지어 날짜 계산까지 해놓고 구속사를 진행하십니다. 이것을 생각해볼 때 세상 역사는 참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 우리가 힘써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물론 세상에 의미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시대 속에 또 다른 한명의 다니엘이 되어 다니엘과 같은 삶을 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 시대는 참으로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모르고 이 땅에서 어떻게 복받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는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70이레를 생각하면 이런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긍휼과 죄사함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기도에 힘쓰며 이 마지막 때에 만민 구원역사를 위해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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