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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신년1강
성경본문 에베소서 4:1-16
전한날짜 2017-12-30
ㆍ조회: 354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라.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의 몸무게가 얼마였을까요? 일반적으로 신생아는 약 3.4kg 정도 됩니다. 태어나서 1년 지나 첫돌이 되는 1살 때는 10kg 정도 됩니다. 예수님도 1살 때에 체중이 태어날 때보다 3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체중이 불과 1년 동안 3배가 불어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중력이 지구의 6분의1인 달 표면에서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지구상에서는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 무릎, 발목, 척추뼈등이 피로골절로 으스러질 것이고, 심장이 충분히 피를 온 몸의 구석구석 보내지 못해 곧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들의 1년 동안 성장으로 인한 적응과정은 창조주의 하나님의 위대한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적으로 탄생할 때 우리는 거듭났다고 합니다. 거듭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영적인 성장을 경험해 가는데 하나님은 갑자기 슈퍼 울트라 캡장 영적 거목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어린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성숙이라고 한다면,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숙해 나가는데 이런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그를 닮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그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1장에서 3장까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전 우주적인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는 다양함 속에서 또한 하나 되기 힘써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숙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장 닮고 싶은 최고의 인간상이요, 우리 성장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성장해야할까요?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범사에 그리스도께 까지 자라나고자하는 분명한 목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I. 교회의 하나됨과 다양성 (1-12)

1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감옥에서 갇혀 있더라도 에베소 교회성도들에게 꼭 권면해야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됨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유대인 형제들과 함께 식사하자며 불러놓고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구우면서 유대인 친구! 너도 먹어봐!” 하며 , 오징어는 그들 면전에서 튀겨먹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금한 음식을 먹는 그들을 보며 ~ 짐승어떻게 이런 혐오스런 음식을 함부로 먹을 수 있지? 더 이상 같이 못 있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신자들은 유대인들은 뭐가 이렇게 까다로운가! 하면서 그들과 교제를 가진다는 것을 피곤하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서로 모임 갖기 위해 스케줄을 짜려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다 오순절이다 초막절이다 하면서 자주 날을 따지고 절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 약속 날짜 짜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만 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다른 것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다양한 민족들에 따라서 각자의 습관, 사상, 풍습이 달라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 차이를 차별로 오해하여서 쟤들은 왜 저래!’, ‘너 나를 무시 하냐!’ 하며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던 것 같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이유는 하나 되는 것이 인간적인 노력만 가지고는 극복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덕목 4가지를 권면하였습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용납이 그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온유는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가 나와 다르고 까칠하게 나오더라도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은 부족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용납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까지도 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같이 4절에서 6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서 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이 하나라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궁극적인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라고 한 것을 찾아보면, 몸이 하나, 부르심의 소망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출신과 성분이 다양해서 하나 되기 어렵다고 하는데 신앙에서 중요한 것들은 교회 내에서 이미 서로가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인간적으로는 서로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공통분모도 많아서 충분히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근거는 교회 공동체에 성령도 한분, 주도 한분, 하나님도 한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 성도들이 하나 될 수 있는 주된 근거는 그들의 신앙의 대상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서로 구별된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삼위의 하나님은 동일 신적 본질을 가지고 그 영광과 존귀와 능력 면에서 동등하십니다. 그런데 세분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삼위의 하나님은 상호내주 하시며 온전한 사랑으로 연합되신 분이십니다. 이슬람의 알라신은 단일신입니다. 교제가 없습니다. 불교의 신관은 범신론으로 어디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믿고 섬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적 존재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교회도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잘 알아갈수록 서로를 깊이 아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 됩니다. 우리의 하나 됨의 근거는 바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양성을 가진 가운데서 주님을 닮은 공동체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여기서 은혜는 구원의 은혜가 아니고 성령의 은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나눠 주시는 선물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계획에 따라 성령의 은사를 각 사람에게 나눠주셨습니다. 8절에서 10절까지는 이 은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신명기 말씀(68:19)을 인용해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 사단과 죽음의 모든 권세를 정복하셨습니다. 하늘의 악한 세력들을 멸하시고 그의 백성을 해방시키심으로써 하늘에 있는 온갖 은사들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승천 이후 성령님을 통해 모든 영적인 은사들을 내려주시고 그 은사에 따라서 교회 내에 직분이 생겼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사도는 예수님을 직접보고 들은 열두 사도와 사도바울을 말하는데 이들이 전하는 말씀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전하는 자로서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활동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초대교회 때에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순회 전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목사는 목자라는 의미이고 교사는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는 사람인데 목사와 교사는 같은 직분으로 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성령의 은사라 할 때 찬양, 신유, 방언의 은사등 다양한 은사들을 포함하지만, 사도바울은 지금 말씀과 관련된 은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하는 이 시점에서는 특히 말씀 은사들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은사들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런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개개인의 자랑거리를 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도 각 사람을 온전하게 하여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임은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온전하고 성숙한 사림이 될 때까지 돕습니다. 큰 사이즈의 모임이 되어서 대량의 편의시설과 주차장을 제공해주지는 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을 더 귀중하게 여기고 집중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봉사의 일을 하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기업이나 회사는 열심히 일한대로 평가를 매겨서 수당을 주고 진급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은혜로 주신 것으로 주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은사들을 주심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굳게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 각 사람들은 서로 다양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다양하게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소아의 암을 전공하고 있는데 암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면 낮은 배율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암세포들의 모양은 거의 다 일률적으로 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세포들은 다양하게 보이고, 같은 종류라도 어린 세포부터 어른 세포까지 여러 단계가 모두 보입니다. 암세포는 한 가지 종류 세포만 걷잡을 수 없이 마구 분열하여서 몸의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어 죽게 만듭니다. 반면, 정상세포들은 다양하면서도 서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서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우신 건강한 공동체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연령층과 성숙단계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은사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건강한 한 몸된 교회를 이룹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게 다양한 은사들 속에서도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데 필요한 말씀의 은사를 풍성히 주셔서 감사합니다.

 

II.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 (13-16)

1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는 것은 성숙하게 된다는 뜻으로 교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각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된다는 말은 교리의 통일성을 말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는 늘 이단의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이럴 때마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올바로 믿을 것인가를 정리하여 왔고, 이런 노력에서 나온 것이 바로 신앙고백서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이후 개혁자들의 신앙인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는 신앙고백서를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교회가 이런 분명한 진리의 체계 위에 서서 하나 될 때 이단 사상이 조금도 설 수 없게 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의 특징은 분별력이 없어 교활한 말로 속이면 쉽게 잘 넘어갑니다. 어린아이의 단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기를 잘합니다. 그리고 온갖 세상 교훈의 풍조에 말려들기를 잘합니다. 그러므로 요동하지 않고 진리위에 서기 위해서는 분명한 진리의 체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센타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벨직신앙고백서, 도르트신경 및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강의를 할 때 종종 참석하여서 나의 신앙의 체계를 세우는 것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약간 이과적인 사고체계가 있어서 그런지 문학적이거나 감정적인 설득만 가지고는 마음 깊은 곳에 말씀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점차로, 저는 성경을 공부하는 양은 많았지만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아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정은 그냥 칼빈주의자들의 주장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분명히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였습니다. 율법과 구원의 관계도 불명확하게 부분적으로 알고만 있어서 통합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분적인 성경지식을 가지고 짜깁기 한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체험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복음진리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설명해야 하는 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배워야 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바로 성경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회사를 통해서 여러 영적인 스승들이 체계화한 것들을 도움삼아 성경을 올바르고 풍성하게 알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서 성경에 대한 진리의 체계가 잡혀갔고 성경공부를 할 때나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떠한 맥락 속에서 이런 성경의 진리들이 연결이 되는 지 알아가서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가자 내가 하는 모든 영역에서 조금씩 사고의 체계가 잡혀감을 느꼈습니다. 전공을 공부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나의 세계관을 형성해 가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삶속에서 주님의 진리의 풍성함을 만끽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어린 아이처럼 진리에 서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그치고 대신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영적으로 성숙하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성숙에는 두 가지가 모두 다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진리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자칫 방종과 나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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