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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신년2강
성경본문 시편 1:1-6
전한날짜 2017-12-31
ㆍ조회: 342  
복 있는 자
2018 신년수양회 주제2강

복 있는 사람

시편 1:1-6(2)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이며, 그 삶이 어떠한지가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복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분이 쉬울 것 같지만 막상 현실에서 우리는 내가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연 복 있는 사람입니까?
이 시간,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을 함께 살펴보며 누가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2018년 새해에 복 있는 사람 되고자 하는 우리 모두를 주님께서 복 받는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소유나 인간 조건을 기준으로 우리가 가진 복의 유무와 크기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흔히들 사용하는 ‘금수저’니 ‘흙수저’ 하는 말들도 결국은 소유와 인간 조건이 중요하다, 이것에 따라 한 사람의 행불행이 좌우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만 보면 부모 잘 만나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 같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엄친아, 엄친딸도 아닌 내가 과연 복 있는 사람이 맞는지 회의가 들 수 있습니다. 또, 요즘처럼 불안정한 시기엔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한 사람이라야 복 있는 사람 같고 직장에서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시작하고 있는 1절에서는 소유나 인간 조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복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절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NIV 성경이나 원문의 느낌을 그대로 실린다면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감탄문 형태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 1절에서 제시하는 복 받는 길은 한 마디로 악한 세상과의 구별됨, 즉 삶의 거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악한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정직하게 살아간다면야 거룩하게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도 정직하고 바르게 말씀을 따라 살고자 애쓰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누구나가 다 하는 일을 나만 하지 않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반칙을 행하고 교묘히 불법을 저지르는데 나 혼자 규칙을 지키면 힘도 들고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세상에는 착하게 살다가 억울한 마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데 나 혼자 믿음의 길을 가노라면 마음도 금새 피곤해지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혼자 잘 난 척 하냐고 비아냥 거리는 소리라도 들으면 우리는 속이 뒤집어지고 나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바로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편 후반부를 보면, 악인들의 최후가 어떠한지 잘 나와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을 가리켜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고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또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고” 결국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의인의 삶을 살고 악인의 삶을 멀리 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거나 머뭇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악인들의 꾀에 빠지기도 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기도 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것은 그들에게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순간에 죽음이 아닌 생명을, 파멸이 아닌 축복을 선택할 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눈앞의 당장의 유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때 악인의 최후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선택의 순간에 이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택하는 길과는 다른, 믿음의 선택을 한다면,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에게는 우리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런 복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좀 지난 일이긴 한데 어느 날, 한 센터 목자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집 아들이 돈을 주웠는데 그것을 친구들과 써버렸고 그것을 알게 된 목자님이 도둑질이라며 크게 나무랬다는 것입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그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한편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반발심에 아버지에게 대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변호사니까 법적으로 이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이 전화를 받고 솔직히 좀 난감했습니다. 보아하니,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아버지 사이의 감정 싸움 같은데 잘 아는 목자님이라서 거절하기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점은 좀 감동이 되었습니다. 보통 부모님들은 자식의 죄에 대해서 엄격하기가 쉽지 않고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나무라고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목자님은 죄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비록 사소하다 하더라도 엄중히 여기고 철저히 싸우고자 하셨는데 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기만 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별 고민도 해보지 않고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고 내게 돌아올 유익을 계산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복 있다’ 하시며 복을 내려주심을 믿습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유익보다는 정직을, 세상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진정으로 복 있는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같이 2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두 번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 주야로 주의 율법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단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직’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만을 즐거워합니다. 여기서 ‘오직’이 중요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복 있는 사람이 즐거워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요즘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각종 게임에 영화, 드라마, 웹툰, 노래, 맛있는 음식, 각종 즐길거리 등 우리가 즐거워 할 만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거에는 TV라고 해봐야 고작 채널 3~4개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케이블TV만 해도 수십개가 넘고 게다가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백, 수천개의 개인방송이나 유튜브 채널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 재미 없게 사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상인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현실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여러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유일무이한, 비교불가한 절대적인 기쁨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비로소 우리의 존재 의미와 목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생명의 길인지, 파멸의 길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하나님 말씀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한편,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이 말씀에는 우리에게 있어 성경읽기는 일종의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습니다. 또 읽으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만 가지고는 성경이 읽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가 즐거워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성경읽기는 꾸준히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읽기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주야로’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다윗이 쓴 시편 119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147,148)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아마도 우리 목자님들 중에서도 잠자리에 누워서 잠들기 직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든지, 페이스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야로 스마트폰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우리에게 우리의 성경읽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선,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낮으로, 밤으로 두루 두루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매일, 하루에 최소 한 번은 말씀 묵상하는 것이 좋은 성경읽기의 습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있습니다. 바로 일용할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일용할양식 먹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는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1년 365일 일용할양식을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복 받은 많은 예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용할양식 책자에 소개된 것 중 세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주UBF의 한 자매님의 사연입니다. 이 자매님은 고등학교 시절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강원도 양구 오지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아침 6시 기상 저녁 12시 취침으로 이어지는 빡빡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어느 수학 수행평가에서는 빵점을 맞기도 하고 주변에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저녁 면학 시작 때마다 양식말씀을 먹는 것을 늘 우선하고자 결심하고 매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제목 3가지씩을 찾으며 투쟁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이 자매님을 만나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주시고 자기 한계를 이기고 공부를 감당할 힘과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분의 소감 제목이 “고교 3년 동안 일용할 양식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입니다.
가천UBF의 한 목자님의 사연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원래 양식을 꾸준히 먹지 않다가 양식부가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독려를 하려니 양심에 찔려 의무감으로 양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양식을 먹다보니 유익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꾸준히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분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불안정하고 뒷심이 약했던 사람이었는데 내면이 안정되고 또 신실해졌습니다. 불평이 많았는데 불평이 없어지고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형식적이거나 의무감에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캠퍼스 역사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일용할양식은 연약한 사람을 안정되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현재 일용할양식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사연도 좋았습니다. 한 연희UBF 목자님은 지극히 평범한 평신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역자의 권유로 1년 365일 일용할양식 먹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은 순전히 동역자가 상품으로 내건 태블릿PC를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 또한 양식을 먹기 시작하자 말씀의 위력을 서서히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딱딱했던 마음 밭이 새롭게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감을 발표하는 도중에 캠퍼스 목자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일로 김다윗 목자님께 칭찬도 받게 되고 홍콩수양회에 참석하여 현지 목자님들 앞에서 인생소감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칭찬보다는 지적을 많이 당해 서러웠는데 1년 365일 양식을 먹은 작년에는 상사에게 칭찬도 받고 또 회사 매출도 올라 동종업계 독보적인 넘버 1이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서도 꾸준히 일용할양식 말씀을 먹는 분들이 계시다면, 크고 작은 간증거리가 많으리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야로’라는 말씀 속에는 낮과 밤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밝을 때나 어두울 때 모두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이 말씀은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묵상은 특히, 우리 인생의 어두운 날, 환난의 날에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빛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역시 119편에서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니이다’고 하였고 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12월 초, 저는 직장 상사로부터 2년 동안 대전에서 근무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충격이 있었습니다. 올 여름 큰 집으로 이사도 했고, 대학원 코스웍도 아직 남았고, 세 명의 아이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동역자를 생각하니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믿고 영접하고 나니 마음이 비로소 평안해졌습니다. 문제는 2년 동안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메시지를 준비하다가 경성 UBF 서제임스 목자님이 오늘 본문을 가지고 전한 메시지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제임스 목자님이 1년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었을 때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비싼 NIV 성경 한 권을 사주시며 이런 방향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루 3시간 성경을 읽으십시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열심히 읽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접하며 제가 대전에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을 발견하였습니다.
성경선생이라고 하지만 저는 솔직히 소감을 쓰거나 메시지를 준비할 때, 모르는 말씀을 가르쳐야 할 때, 일대일을 할 때 외에는 정작 성경을 열심히, 잘 읽지 않았습니다. 바쁘고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늘 성경읽기는 뒷전이었습니다.
제가 지방근무하는 2년 동안 성경을 4회독 하고 1년 365일 일용할양식 먹기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양식을 먹고 성경을 4회독 하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 올라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고 성경 4회독 도전에 성공할 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다 보면 금새 서울로 돌아와 있을 것 같습니다.
다 같이 3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세상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인생의 어두운 때나 밝은 때나 말씀만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시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잎사귀가 늘 푸르르며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복 있는 사람의 인생 또한 이러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 삶에 늘 생명력이 넘치고 활기가 있게 됩니다. 푸른 나무 잎사귀가 하는 역할은 햇빛과 물을 이용해 광합성 작용을 함으로써 양분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 양분으로 나무는 자랄 수 있고 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말씀을 즐거워하다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마르지 않고 늘 푸르른 것처럼 우리도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록 인생에서 좀 힘든 일이 닥쳐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결코 넘어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삶에 비치어 어떤 어려움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센터 주차장 쪽에 심어진 모과나무 몇 그루에는 가을이 되면 노란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립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도 극상품의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간과 재능, 열정과 의지, 믿음의 공동체, 가정과 직장 등 모든 여건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열심히 열매를 맺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가 무슨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묵상에 힘쓰고 하루하루 최선의 삶을 살아기기만 한담녀 때가 되었을 때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 해 꾸준히 오직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이 말씀을 묵상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생명력으로 충만하며 때가 되었을 때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메시지를 준비하다가 우리 센터 한 목자님이 새벽기도 때 오늘 본문을 가지고 전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메시지 중 일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성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삼아 세상의 꾀를 따르고 죄를 지어도 성취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성공하여도 결국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허무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을 삽니다. 지금은 화려하게 밖으로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때를 따라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과 같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십니다. 저는 걱정이 들 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힘을 얻습니다.”

2018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사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성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도태되는 지름길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다”
초조할 때, 불안할 때 우리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우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열매는 없을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매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2018년 새해에 우리 안암골에 1년 365일 이 악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즐거워하는 복 있는 사람들을 많이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가 받은 복을 우리의 자녀들과 동역자들, 캠퍼스 양들에게 나눠주는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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