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신앙고백
순교의 가치!!!
UBF | 기도요청 | 주일말씀 | 게 시 판 | 안암까페 | 페이스북
UBF해외|한국|모바일
양마가선교사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UBF공식까페
 
UBF > 안암 > 성경강해 > 주일말씀
첨부#2 2018년_신년_빌립보서_제2강_(메시지).hwp (21KB) (Down:61)
강의순서 2018 빌립보서 2강
성경본문 빌립보서 2:1-30
전한날짜 2018/01/21
ㆍ조회: 421  
예수의 마음
2018년 신년 빌립보서 제2강
말씀 / 빌립보서 2:1-30
요절 /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얼굴 표정이나 말과 행동, 삶을 통해 숨은 마음이 드러납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겸손, 자기 비움, 순종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품는 마음도 우리의 표정과 말과 행동과 삶으로 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알 때 마음이 부패한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할 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그 마음 품기를 기도합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그림으로 나타낸 사람이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는 19세기 중반에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20대 중반에 목사님이 되고자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무명화가로 활동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로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이 10년 동안 무려 21,00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 860점의 유화 대부분은 죽기 2년 전 동안의 작품이라고 하니, 거의 매일 한 작품 이상씩 그린 셈입니다. 이 중에는 작년 주일예배 때 보았던 ‘씨 뿌리는 농부’를 비롯하여,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오베르 쉬즈 우아즈의 교회’ 등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리고도 그의 생애 동안에는 단 한 작품만이 팔렸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신병과 가난에 고통하는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자인지 잘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보잘 것 없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에 품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고흐의 그 위대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의 숨은 이야기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그러한 삶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의 마음으로 mindset를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향한 걸음을 내딛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의 마음에 대한 네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가 되는 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1-4)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은혜로 받은 좋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이나 세리를 정죄하지 않고 격려하신 것처럼, 빌립보 성도들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복음전파 하다가 지친 몸과 마음이 주님 사랑으로 위로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성령 안에서 살며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교회라는 성령의 거룩한 그릇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게 하시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자비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이에 바울은 권면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이 짧은 한 구절에 ‘하나가 되라’는 말을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갖는 것이 예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툼과 허영이었습니다. 훌륭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도 다툼과 허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빌4:2에서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도록 권면한 것을 볼 때, 두 여인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복음역사를 실제적으로 많이 섬기시는 사모님들 사이에 섬기는 방법에 있어 의견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런치미팅 메뉴를 어떻게 할 지, 젊은 학생들을 진리로 도울 지 은혜로 도울 지 의견 차이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자녀 양육 등에서도 의견 차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사람이 이것저것 자유롭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자칫 허영으로 비췰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툼과 허영을 버리라 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뜻을 가지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독특한 재능과 개성과 능력이 있습니다. 경쟁심으로 보면 이런 것이 보이지 않지만, 한 마음을 품고 보면 상대방의 이러한 재능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어떤 형제는 성격이 좀 덜렁덜렁 하고 자유분망해 보이지만, 사교성이 많아서 친구들을 예배에 잘 초청합니다. 어떤 자매는 바쁜 생활로 인해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자기가 맡은 일은 철저하게 감당하여 동역자들을 감동시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코도 되고 입도 되고 손발도 된다는 것입니다. 코가 입이 될 수는 없지만, 코와 입은 각각의 독특한 역할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면,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할 형제나 자매가 없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귀한 지체들이요, 나와는 다르면서도 독특한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을 하는 것이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새 계명이었습니다. 우리가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서로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이요 마음입니다.

   또한 4절에서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일을 돌봐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돌봐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서로 돕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울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 합니다. 지금 인도의 IIIT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계시는 장디모데 선교사님은 대학 1학년 때 이타심이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연전이 끝나면 잠실운동장에 남아서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열심히 청소를 한 후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분의 학점은 1.0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은 돌아보았지만 자기 일은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에 말씀공부 하면서 삶에 포인트를 찾고 균형을 잡아서 지금은 훌륭한 교수목자요 선교사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기 일을 먼저 잘 하고 남을 또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 자기 가정, 부모 친척, 자기 요회, 교회, 자기 직장을 돌보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합니다. 또한 더 나아가 남을 돌아볼 줄 아는 목자요 지도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의 배고픈 오천 명의 무리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바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에게 양 무리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르치고, 지도자의 책임감을 심으셨습니다. 이처럼 다른 이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둘째, 자기 비움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5-11)

   5-9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의 마음은 자기 비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자기 영광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워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웠습니다. 그리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이되 왕이나 귀족으로 살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로 자기를 낮추어서 죄인을 섬기셨습니다. 이 정도도 놀라운데, 이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죽으셔서 죄인들을 위한 대속제물로 희생하셨습니다. 구약제사에서 소나 양이 제물이 되어 번제단에서 불태워 없어졌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우리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저 높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십자가 번제단에서 태워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비웠습니다. 적극적으로 자기를 낮춰 종이 되어 죽기까지 섬기고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을 다 불살라 태워 우리를 위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자기 권리 포기요, 낮추심입니다. 자기 비움이요, 자기 희생입니다. 순종이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 마음을 너희 안에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동일한 mindset를 가지라 합니다. mindset이라는 말은 어떤 확고한 마음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만날 때 그것을 해석하고 반응하게 하는 미리 준비된 마음 태도입니다. 즉 내가 예수의 마음으로 mindset를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앞으로 살아갈 때 당하게 되는 많은 상황 속에서 예수님처럼 응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인내하고, 섬기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희생하겠다는 마음 자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자 mindset를 갖추고, 이 마음을 품을 때, 이러한 마음이 우리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람을 사랑하며 인내하며 살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마음을 품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는다고 갑자기 다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삶이 차츰차츰 변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동역자들 사이 다툼과 경쟁을 넘어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섬기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9-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고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높이셨습니다. 계5:12에서 천사들은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나님의 역사원칙은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이고, 비우는 자를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채우고, 높이셨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의 마음으로 자기를 낮춘 사람을 반드시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역사원칙을 신뢰하여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12-18)

   12-18절에서 바울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라,’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서는 겸손과 자기 비움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은 우리의 거룩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은 구원의 은혜를 기초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삶입니다. 이것은 이미 십자가로 완성된 구원의 은혜를 잘 지켜나가는 생활입니다. 구원 받은 자답게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이 죄는 형제끼리의 다툼으로 인한 원망과 시비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갈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리스도인에게 요청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흠 없는 거룩한 삶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고 싶은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빈센트 고흐의 그림에는 유독 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밤하늘의 별은 어두운 인생을 밝히는 소망이 됩니다. 이러한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별과 같은 삶을 세상은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빛에 이끌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지만, 세상은 예수의 사람들이 언덕 위의 집처럼 그 빛난 행실로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흠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의 별이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이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 밝히 나타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일 위에, 즉 빌립보 성도들의 이러한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의 피를 전제로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자신은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 말합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과 신자의 흠 없는 삶이 귀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복음의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19-30)

   19-30절에서 바울은 세 부류의 복음의 동역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동역자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옥에 갇혀 있기에 빌립보 성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그들에게 속히 보내어 그들의 사정을 알고서는 안심하고 위로를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를 칭찬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데,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해 왔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디모데가 얼마나 귀한 복음의 동역자인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다시 보내는데, 그는 예전에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섬기라고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빌립보 성도들이 심히 근심하게 된 소식을 바울이 듣고서는,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다시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안심시키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말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을 기억하라 말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인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했고, 이런 그를 위해 마음 쓰는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서도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형편을 섬세하게 살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복음의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겉으로 나타나서, 결국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규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곧 내가 되는 것입니다. 고흐의 고뇌와 감성이 그의 그림을 통해 나타났듯이,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예수의 사랑과 생명이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찬란한 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러한 소망으로 다 함께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2018년 신년 빌립보서 제2강
말씀 / 빌립보서 2:1-30
요절 / 빌립보서 2:5

                                              예수의 마음



1. 빌립보 성도들에게 어떤 좋은 것이 있었습니까(1)?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하라고 권면합니까(2)? 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3,4)?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 바울이 왜 빌립보 성도들에게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하고 있을까요(5)?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6-8)? 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9-11)? 예수님의 자기 비움과 영광은 어떤 점에서 우리에게 본이 됩니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3. 빌립보 성도들이 항상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12)? 하나님의 뜻을 행할 소원과 힘을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13)?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할 때 어떤 좋은 결과가 있습니까(14-16)?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헌신적인 마음이 어떠합니까(17,18)?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4. 바울은 디모데의 어떤 점을 칭찬하며 그를 통해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까(19-24)?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바울의 마음은 어떠합니까(25-30)?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복음의 동역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2: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2: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Bookmark an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