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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빌립보서 3강
성경본문 빌립보서 3:1-21
전한날짜 2018/01/28
ㆍ조회: 601  
푯대를 향하여
2018년 신년 빌립보서 제3강
말씀 / 빌립보서 3:1-21
요절 /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요즘은 예전에 비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삶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통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서 여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아무리 계획 없이 한다 하더라도 대략적인 그림은 정확히 그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동계올림픽도 보고 한국을 여행하려는데,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하고 티케팅 하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자유여행도 좋지만 목적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여행과 같습니다. 이곳저곳 재미있게 다니지만 종착지는 알고 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 삶의 종착지, 혹은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의 푯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의 푯대를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했습니다(1-12)

   이 부분은 작년 가을학기 개강특강 때 살펴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육체를 자랑하는 할례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인 자기들처럼 이방 크리스천들도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왜곡시켰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갈2:21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율법도 선하고 할례도 소중하지만 이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헛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되는데, 이것은 복음진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을 위해 할례와 율법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신도 사실 자랑할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 받은 정통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입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조건과 노력이 바울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행위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의 노예임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9:12). 이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고, 그 길은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이요, 완전한 구원의 길입니다(히10:19,20). 그리스도는 죄를 위해 십자가로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히10:12). 그의 대속의 피로 죄인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롬5:8,9). 이처럼 바울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자 자기의 자랑거리가 별 게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기 의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의를 얻는데 방해가 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다 해로 여기고, 잃어버리고, 배설물로까지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불탔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되 그리스도의 모든 삶과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까지 알고자 했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영원한 푯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 말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시84:10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래서 그런지 예전 소감에는 ‘이 죄인을 교회의 문지기라도 시켜주십시오’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였습니다. 그만큼 구원의 은혜가 크고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통하게 살찐 형제는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 몸이 나무 꼬챙이가 되도록 헌신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온 세상을 복음으로 삼킬 기세로 말씀 강대상을 들었다 놨다 하며 포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중에 지금 눈에 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의 은혜와 감격과 고백에는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은혜를 감당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합니다. 먼저는,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되 십자가 고난을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도 좋고 부활의 권능도 좋은데, 항상 십자가 고난이 우리를 부담스럽게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을 생각하면, 사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기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만큼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이 십자가 고난으로 이루어기 때문에, 이 십자가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는 구원의 능력, 하나님의 신비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배우고자 할 때 그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능력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복음전파의 고난을 감당했을 때,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고 로마가 정복되며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축복의 때에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젊을 때는 마음도 순수하고 가진 것도 별로 없기에 헌신하겠다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런데 사회생활 하며 점점 자기 것이 쌓여 가면, 젊을 때 받은 은혜를 감당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서는 말씀의 씨가 자라날 뿐 아니라,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향락에 대한 욕심의 가시도 자라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눈길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영적으로는 부패해져 간 이스라엘처럼 점점 이 땅의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안암골 학생조상인 79학번 Seven Tiger 중 어떤 목자님은 엘리야처럼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제대 후 당시 한국통신(지금의 KT) 공채 1기 수석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앞으로 사장까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 욕심이 들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후 원불교 승려의 딸과의 결혼식을 많은 원불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렸습니다. 그런데 약 5년 후인 90년대 초에 백혈병에 걸려 센터로 연락을 해와 기도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려주시면 하나님 전의 문지기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은혜가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던 것입니다. 당시에 Seven Tiger 동기 목자님들은 화장한 그분의 뼛가루를, 그분이 1985년에 휴가 나와서 군대에서 많은 신앙적 고난을 이겨낸 스피릿으로 예수님의 재림 메시지를 전했던 그 여름수양회 수양관 뒷산에 뿌려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겠다는 내적 푯대를 갖는 것은 우리의 삶과 구원과 영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 위안으로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핍의 때나 풍요의 때나 항상 도전을 받지만,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는 푯대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등대의 불빛이 폭풍 속의 배를 이끌듯, 푯대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생항해길, 인생여행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이 푯대를 향해 흔들림 없는 인생여행, 영원한 항구를 향한 항해를 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바울은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13-16)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생각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특히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 잘한 것이 많은 사람은 자랑하기에 바빠서 새로운 성장을 못합니다. 과거에 못한 일이 많은 사람은 후회하고 한숨 쉬느라 새로운 진전이 없습니다. 바울의 경우, 과거에 못한 일도 있고 잘한 일도 있었습니다. 못한 일, 즉 자기 의와 교만으로 예수님과 교회의 박해자로 살던 과거를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며 뼛속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는 반복된 후회보다는 깊은 참회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분명하게 삶을 바꾸었고,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변화된 후 그는 잘한 일이 정말 많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능가할 법한 일을 했습니다.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신약성경의 반 이상은 그의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자랑하거나 자족하지 않았습니다. 앞을 향해, 미래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는 옛 삶에서 돌이킨 후, 푯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과거 일을 후회하거나 자랑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목표, 영원한 푯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가 말하는 푯대는 부르심의 상으로도 표현됩니다. 고전9:24-27에서 바울은 운동장에서 운동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 달음질하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달음질이 방향성을 갖고 절제 있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실 썩지 않을 상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경기자는 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2월 9일이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선수들이 그 동안 땀 흘린 것은 메달을 따기 위해서 입니다. 메달을 따면 상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고, 상금도 받고, 광고협찬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이 큽니다. 이번에 정현 선수가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중의 하나인 호주오픈에서 발바닥 피부가 벗겨져 너덜거리는 가운데 부상투혼을 불살랐던 것도 그만한 명예와 댓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을 향한 운동선수들의 투혼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매사에 상을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삶을 꾸려가며, 더 잘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입사라는 상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노력에 대한 보상, 값진 상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은혜로 한다고 해서 게으르고 의존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기대하며 열심히 땀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물질이나 세상 권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길을 완주한 사람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상입니다. 성경은 상에 대해 여러모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므나 비유에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시며(마25장, 눅19장), 주님의 칭찬과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히11장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이 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힘써 달려가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바울은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아갔습니다 (17-21)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인해 눈물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지막이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자기들 수치를 오히려 자랑거리로 생각합니다. 오직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원수와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20,21).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세 번째 푯대인 하늘의 시민권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골3:4에서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롬8:29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후3:18에서는 ‘우리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를 것이라’ 했습니다. 고전15장에서는 ‘땅에 속한 형체가 있는 것처럼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다’고 했습니다(고전15:40). 부활의 몸은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 영적인 몸입니다(15:42-44). 우리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15:49). 이러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 곧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우리가 장차 변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 시민으로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소망하는 바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소망하는 바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이 땅의 삶에 충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의롭고 정의롭고 도덕성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땀 흘려 노동하여 정당한 보상을 누리는 충직한 이 땅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론 여행도 하며 삶의 여유를 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렇게 현실에 충실한 것처럼 하늘 소망에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말로만 하는 종교적인 위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직면하게 될 분명한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아기 때와 젊을 때가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중년의 때, 늙음의 때, 그리고 죽음의 때가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죽음과 심판의 날은 한 발 한 발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날을 자신 있게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눈은 저 먼 곳을 응시할 때 가능합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푯대는 이 땅의 구체적인 삶의 목표와 꿈과 비전을 포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넘어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에게 이런 하늘나라의 푯대가 분명했을 때, 그의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마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뻐했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을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이 푯대입니다. 부활과 영생,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그 나라 시민권을 누리며 사는 것이 궁극적인 푯대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는 하늘을 푯대 삼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점점 현실에 매이고 있습니다. 땅의 시민으로만 충실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려 합니다. 그러나 땅의 시민권도 중요하지만 하늘 시민권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전도서 기자처럼 ‘모든 것이 헛되다’하며 인생을 허무하게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 시민권자라는 이 소중한 권리를 잘 행사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땅의 것을 생각하면 많은 염려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어떤 강남의 36평 아파트가 23억 한다는 정말 억 소리 나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강남 구민, 서초 구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값이 이렇게 급격히 뛰면, 풍선효과처럼 한 쪽에서는 점점 살기 힘들어집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미래가 불안해집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월급은 그대로고, 취직은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런 것이 세상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시민의 삶입니다. 이런 세상을 개혁하고 바꾸어 가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런 중에 우리는 삶을 살아갈 지혜를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김생민의 영수증처럼 ‘스튜핏, 그레잇’ 하면서 알뜰살뜰 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타트 업을 하고, 투자를 하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것이 이 땅의 삶의 푯대를 잡는 일입니다. 우리 선배 목자님들을 생각하면, 70,80년대 그 어려운 시대부터 세계선교 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심지어는 90년대 말 IMF 때도 힘든 시대에 주저앉지 않고 세계선교 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때 파송된 분들을 특히 ‘IMF 선교사’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세계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았을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나 인간적으로도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지는 이 땅의 시민으로서 크고 작은 목표 가운데 충실히 살아갈 뿐 아니라, 하늘 시민권자로서의 푯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영원으로 인도할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힘든 시대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푯대를 잘 설정하여 방향성 있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얻고자, 부르심의 상을 얻고자, 하늘 시민권자로 살아가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영적 푯대를 향해 달려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상급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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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 빌립보서 제3강
말씀 / 빌립보서 3:1-21
요절 /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1. 바울이 반복해서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1)? 삼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참 할례파는 어떤 사람입니까(2,3)? 바울에게도 어떤 육체의 자랑거리가 있었습니까(4-6)?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2. 바울이 육체의 자랑거리를 해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7,8a)? 바울이 잃어버린 것과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왜 그렇게 했습니까(8b,9)? 바울은 그리스도의 어떤 점까지 알고자 했으며, 어떤 자세로 노력합니까(10-12)?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에 대한 바울의 자세가 어떠합니까(13)? 바울은 어떤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자 합니까(14)? 이것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의 마음가짐임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15a)? 지금까지 이룬 것을 바탕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라고 합니까(15b,16. 고전9:24-27)?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고전9:24-27)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4.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바울의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17. 고전11:1)? 이와 대조적으로 십자가의 원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18,19)? 우리가 향해 달려갈 또 다른 푯대는 무엇입니까(20,21)?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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