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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마가복음 1강
성경본문 마가복음 1:1-13
ㆍ조회: 40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018년 봄학기 마가복음 1장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말씀: 마가복음 1:1-13
요절: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새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 봄학기의 시작은 가을학기의 시작과 다릅니다. 가을학기와는 달리 새 봄학기 시작은 왠지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 이유인즉 첫째는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은 유달리 추웠습니다. 그러다가 곧 파릇파릇한 새싹이 오르고 꽃이 피기 시작할 것을 생각하면 ‘봄 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가’ 하는 기다림 속에서 가슴이 설레입니다. 금년에는 센터 주차장 화단에 해바라기 꽃을 꼭 심고자 합니다. 더운 여름 줄지어 환한 모습으로 서 있을 해바라기를 생각하면 꽃씨를 심는 봄은 신나는 계절입니다. 둘째는 새학기가 되면 새내기들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대학에는 뭐니 뭐니해도 새내기들이 들어올 때 그 분위기가 신선해집니다. 그래서 신입생을 freshman이라고 합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이제 캠퍼스에서 만날 새내기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우리가 공부하는 마가복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의  원문에는 동사 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절은 마가복음의 제목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봄학기 마가복음 공부의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I. 복음의 시작
복음의 시작! The Beginning of the Good News.  이 말은 “슬픈 일이 있습니까? 괴롭습니까? 그러나 내가 이제부터 기쁨의 소식, 곧 복음을 전해주겠으니 기대하십시오” 하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은 당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은 네로의 박해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큰 화제가 났는데 네로 황제는 이 화재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겠는데 이때 근거도 없이 화제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려 대대적인 핍박을 했습니다. 이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잡혀 죽기도 하고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신분이 낮고 가난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 이런 억울한 핍박까지 받으니 사는 것이 고난이고 슬픔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로마 사람들은 “아니 유대 갈릴리 출신의 예수라는 한 청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데 그 청년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낙심되고 신앙적인 회의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이렇게 복음을 쓴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희망의 메시지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들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 기쁨의 소식, 곧 복음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마가가 말하려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제목에 나타난 대로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마가는 이 예수라는 그 이름에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인류가 기다려온 구원자요 세상을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할 왕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마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옆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이지만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나 기적을 보고 ‘이 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야’ ‘아, 이 분은 누구길레 바람과 파도도 순종하는가’하는 말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로마 군병들을 지휘했던 백부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든 과정을 보고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는 고백한 것입니다. 아니 그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죽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길레 이런 말은 하는 것일까요?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가복음 첫줄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위대한 선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박해받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을 향해, 여기서 더 나아가 죄악으로 고통하는 온 세상을 향해 터져나온 위대한 기쁨의 소식 - Good news -입니다.
이어서 그는 마가복음 전반에 걸쳐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 인격은 어떠한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게 될 축복은 무엇인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우리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할 말씀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마가복음 공부가 끝날 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고한 믿음 위에 서고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와 기쁨 속에 각 사람의 심령에서 생명의 샘이 터져 나오고 우리 가운데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마가는 이 복음을 어떤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곧 예언과 그 성취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짧지만 분명한 역사에 기초해 예수님을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 말씀이 기록된 이사야 40장 말씀은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백성들이 이제 다시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 이 말씀은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의 곧은 길을 내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해야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제 곧 간절히 기대리던 대망의 그리스도가 오시니 광야에 길을 내듯이 마음으로 주님을 모셔들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외침은 경고의 외침입니까. 위로의 외침입니까? 우리는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곧이어  그렇게 안하면 심판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물론 회개 회개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주시고자 하신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유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징계하시는 말씀을 하셨다면, 이 말씀이 나온 40장부터는 끝까지는 회복의 말씀입니다. 이제 긴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된다는 위로와 비젼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징계 받고 포로로 끌려가 있는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두움과 슬픔에 차 있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40장 이후에는 구원과 회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실제 이사야서 40장 1절을 보면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헨델의 메시야를 보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구속자 예수님을 왕의 왕, 주의주 하면서 할렐루야 하며 힘차고 웅장한 찬양을 합니다.

이 위로는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네로의 박해 아래 고통할 때 그들에게는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하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모든 것을 이겨나갈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2주 전에 한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수양회의 큰 주제도 바로 위로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많은 사람들이 로마 교회와 권력으로 박해를 받으며 순교해 갔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도 다름 아닌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성도들의 삶속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시대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믿음으로 살자니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언제나 위로하십니다. 때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을 때 우리의 회개도 하나님의 위로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위로라고요? 그렇습니다. 회개는 죄로 고행하는 마음을 풀어주는 위로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에 이어 바로 그리스도의 위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면 언제나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이 광야에 나가서 외쳐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물론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 요한이 되고자 하기 전에 먼저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자기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회개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세례요한이 외치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아주 단순하게 살지면 백성들은 그의 사는 모습보다는 그가 외치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이렇게 회개하러 나왔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은 완악안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쳤을 때 다 나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아 합니다. 그들은 거국적인 회개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래야할 때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적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참으로 악하고 죄악된 모든 것을 드러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성추행, 성폭행으로 인한 me,too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죄악된가, 또 이런 추한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치와 모욕감에 오랜 세월을 시달렸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어떤 부부는 성폭행을 당한 수치와 모멸감 때문에 참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그의 아내는 정말 죽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사회 곳곳에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많은 죄악이 드러나는데 참 보기 민망할 지경입니다. 드러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 스스로 참담한 생각이 들지만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어른 세대가 어린 세대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다니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구하시고자 이 일을 대대적으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평화 통일을 말하고 국민 소득 몇 만불을 말하지만 먼저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남들만 보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어떤 점에서 회개해야 하는지 먼저는 자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고 선지자 예레미야 같이, 다니엘과 같이 우리 민족의 죄를 등에 업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민족의 죄를 내죄로 알고 간절히 기도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는 희망도 없습니다. 나부터 먼저, 우리 모임부터 먼저 하나님께 나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죄로 찢기고 상처난 이 세상을 치료하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말합니다.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세례 요한은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선지자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이나 많은 종교지도자들, 세리도, 심지어 로마의 군병들까지도 그를 인정하고 존경하여 그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쯤이면 세례 요한은 세상에서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때 자기 뒤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켜 자기는 그의 신발 끈도 풀기를 감당하지 못할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신발 끈은 하인 중에서 가장 낮은 하인이 담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그는 하인 중에 가장 낮은 하인도 안 된다니,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유해 말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역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 그 자체가 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8절에서는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세례란 원어로는 ‘물에 푹 잠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는 침례라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자기 죄를 씻듯 머리끝까지 물속에 푹 잠겼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성령 안에 푹 잠기는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존재를 성령에 푹 잠기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사람이 영적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며 죄를 슬퍼하고 죄와 싸우는 자기 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셨다니, 이것 자체도 참으로 놀랍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영원합니다. 창조주과 피조물이라는 차원이 다른 간격이 있고 거룩하심과 죄악됨 사이에 서로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다니. 그리고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며 우리를 온전히 품어주시며 함께 하신다니, 이것 만큼 놀라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이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잘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배우면 그거 참 복된 삶을 살게 되는데 적당히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잘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교회에 자기 이름을 걸어두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나의 구원의 주요 나의 왕이시라는 것을 알고 확신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 예수님에 대해 왜 그렇게 외쳐 바라보게 했을까요? 우리가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정말 잘되기를 바래서입니다. 얼마 전에 ‘잘되는 나’라는 책이 있었는데 정말 잘되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이번 봄학기 마가복음을 새로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짧은 한마디 말씀에 우리의 회개와 희망이 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시작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II.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9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예수님에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그리스도이신데 어째서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은 장차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으시면서 당신께서 대속의 주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이것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정식으로 구속사를 이어 받는 바턴 터치입니다. 요한은 이제까지는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했는데 이제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므로 그의 사역을 끝이 나게 됩니다. 이로서 본격적인 예수님의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세례를 방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곧 물에서 올라오실 대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나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로 내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막혀있던 구원의 문을 여시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사야서 61:1,2절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여기에는 ㅏ나님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여기서도 위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충만하셔서 비둘기 같은 온유함으로 슬픔 속에 있던 자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베풀어주십니다.  

둘째로 이렇게 성령이 임할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당신이 기뻐하시는 아들로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역시 구약의 예언에서 그 뜻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42,43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시편 2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어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스리라‘(8:7,9).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감당하시는 동안에는 오직 은혜로 섬기시며 더 나아가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그가 다시 오시는 날 그는 모든 원수들, 불의한 자들을 철장으로 다 깨뜨리되 질그릇 깨뜨리듯 할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감당하시며 우리를 십자가 은혜로 구원하시며 우리의 원수도도 이렇게 친히 심판하시며 공의를 세우십니다.  

이렇게 복음 역사의 시작에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가 되어 하늘 문을 여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광야로 나가서 40일 동안 사단의 시험을 받으시며 본격적인 공생애를 대비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구원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나타내심이요 하나님의 권능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복음의 주인공이십니다. 우리가 금년 봄학기 마가복음을 통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감사,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한 희망 넘치기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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