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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마가복음 3강
성경본문 마가복음 1:29-45
전한날짜 2018-03-18
ㆍ조회: 332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 1:29-45
요절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생명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제일 먼저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셨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새벽기도하시며 말씀전파하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신 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을 보면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따라 살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예수님 (29-34)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으신 후에 회당에서 나오자마자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가셨습니다. 시몬과 안드레의 집이라고 한 것을 보면 형제가 한 집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시몬이 예수님 일행을 집으로 초대한 것은 시몬의 집이 가버나움에 있었기 때문에 두고 온 가족들도 볼 겸 가까이에 있는 집으로 모시고 가서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점심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행은 시장기를 느꼈고 시몬이 예수님 일행을 자신 있게 초대한 것은 집에 가면 장모님이 계시니까 갈릴리에서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해물탕을 끓여 주실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몬은 결혼 후에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착한 사위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인격적인 펠로우쉽을 가지고 시몬의 가족들을 살펴보시고자 기꺼이 시몬과 안드레의 집을 심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일행이 집에 들어가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어두웠습니다. 시몬의 장모님이 열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왜 열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열병이 장티푸스인지 말라리아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며 펄펄 끓는 고열과 탈수현상이 나타나다가 죽는 병이었습니다. 장모의 열병이 단지 육신의 병만이 아닌 마음의 병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던 자기 사위가 예수에게 홀랑 미쳐 배와 자기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나 산으로, 바다로 다니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자 속에서 열불이 났습니다. 이것을 홧병이라고 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여기서 ‘사람들’이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시몬, 안드레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 등 4명의 제자들은 합심하여 예수님께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고 일어서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랬더니 시몬의 장모는 벌떡 일어나서 언제 아팠느냐 싶을 정도로 즉석에서 맛있는 해물탕을 끓여서 예수님 일행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가족을 고치시고 단순히 열을 내리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료해 주시고 기력을 회복시켜 주셔서 예수님 사역의 동역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낮에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루 종일 일하셨지만 잠시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해가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귀신을 쫓으신 일과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신 일에 대한 소문이 삽시간에 도처로 퍼졌기 때문입니다. 33절에 보면 온 동네가 예수님이 계시는 시몬의 집 문 앞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밤늦게까지 각종 병이 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일이 손을 얹어 정성껏 고쳐 주시며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II. 새벽기도하신 예수님 (35)

예수님은 그 다음날 몇 시에 일어나셨을까요? 아침 늦게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셨나요? 35절을 보십시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다음날 아주 이른 새벽 먼동이 트기 전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은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서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한적한 곳’(solitary place)이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광야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가버나움을 벗어나서 인근 광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한적한 광야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에 이끌려 가신 곳입니다. 광야는 예수님이 단독으로 하나님과 깊이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온 마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현 상태를 돌아보며 메시아 사명을 거듭 재확인하고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육간의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메시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이적에만 관심을 갖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명성과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는데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세상의 영광을 누리면서 편하게 메시아 사명을 수행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유혹하는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또 영적으로 어린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며 양들을 사랑하는 선한 목자요 빼어난 성경선생들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제자들이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이 호흡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산소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해서 의지하신 두 가지 영적 무기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둔하여지고 영적 분별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사명의식이 희박해지고 영적 파워가 약해집니다. 금방 세상문화에 물들게 되어 남과 비교하며 불평불만하게 되고 세상 염려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감을 잃게 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이 초라하고 연약한 죄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나라의 영광이 너무 초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나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밀물처럼 솟아나며 예수님께서 진실로 살아 계시고 일하고 계심을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 지며 자신감이 생기고 세상의 그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기도제목, 가족, 동역자, 양들 그리고 나라와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를 반드시 들어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다윗은 동트기 전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으며 예수님도 복음역사를 섬기시면서 새벽기도를 통해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새벽기도의 용사요 또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를 가장 우선시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사랑하는 분들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첫 시간에 하나님과 교제할 때 새벽이슬 같이 풍성히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육신의 피로를 무릎 쓰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을 깨우기에 힘씁니다. 새벽기도를 하려면 조금 일찍 자고 생활패턴을 야간형에서 새벽형으로 바꾸면 됩니다. 형편에 따라 각자 집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동역자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이 훨씬 기도가 잘 됩니다. 피치 못할 사유가 있어서 교회로 오지 못할 경우 집에서라도 빠지지 말고 꼭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I.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36-39)

36, 37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예수님이 집에 안 계셨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병든 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환자가족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주님, 어디 계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몬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자 어깨가 으쓱해 졌습니다. 환자가족들이 예수님을 먼저 좀 만나게 해달라고 제자들에게 뇌물을 주며 청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에 큰 보람을 느꼈을 것입니다. 시몬과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예수병원을 짓고 그곳에서 사무를 보며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인기에 편승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새 번역에는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로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상치 못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의아해 했습니다. 한 곳에서 병원을 차리고 환자들을 치유해도 될 텐데 왜 굳이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가 말씀을 듣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기 위해 찾는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로 인간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적 자체를 시행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적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오셨다는 것을 가르치시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갈릴리 상류 지방에만 하더라도 200여 마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열광적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마을들로 가자고 하신 것은 이 세상의 인기와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메시아 사역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가까운 마을들로 같이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는 비행기를 타면 어느 나라라도 하루 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세계를 “지구촌”이라고 부릅니다. “Global village” 지구촌 마을입니다. 교통의 발달로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가까운 마을들이 되었습니다. 지구촌 마을 곳곳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구촌의 여러 마을들로 같이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혼자 가시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자’(Let us go)고 하십니다. 가까운 캠퍼스에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요즈음에는 외국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시작한 안암 UBF 한글학교에서는 중국, 인도네시아, 몽골, 캄보디아, 노르웨이, 미국, 독일, 영국, 짐바브웨,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이 중 몇 명은 성경공부도 하고 있고 영어예배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0:13-15에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다른 마을들로 가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캠퍼스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생명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영적으로 무지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한 명의 학생을 상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축복된 삶인지를 차분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캠퍼스와 지구촌 여러 마을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V. 문둥병자를 깨끗케 해주신 예수님 (40-45)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며 열심히 역사를 섬기고 계셨던 어느 날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40)
문둥병은 조직과 신경을 파괴하여 살을 썩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눈썹도 빠지고 시신경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실명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신경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바늘로 찔러도 아픈 줄 모르고 찬 것, 더운 것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문둥병자는 온몸에 문둥병이 걸린 것을 볼 때 상태가 매우 심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고통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문둥병은 상처 난 부위를 통해 접촉으로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문둥병자는 격리 수용시킵니다.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은 부정한 병으로 문둥병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격리하여 마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레13:45,46).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가까이 오면 돌을 던졌습니다. 또 그가 지나간 자리는 소금을 뿌렸습니다. 문둥병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여 격리된 장소에서 무서운 고독을 씹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문둥병은 천형병이라 하여 하나님께 저주받은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것입니다. 그는 저주받았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의 영혼은 절규하며 절망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쳤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을 저주하며 세상을 저주하며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문둥병의 증세는 죄의 증상과 비슷합니다.

첫째, 죄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듯이 문둥병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일그러뜨립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주 아름답고 균형 잡힌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랑과 연민과 지혜와 의로움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순수하고 기품이 있는 책임성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사람을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부패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둘째, 죄가 사람의 양심을 마비시키듯이 문둥병은 사람의 신경조직을 마비시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셋째, 죄가 사람의 관계성을 단절하듯이 문둥병도 사람을 고립시켜 고독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 이 문둥병자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는 다 받아 주시고 치유해 주신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들켜서 돌에 맞아 죽으면 어떡하나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를 안 받아 주시면 어떡하나  의심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죽음의 두려움과 의심을 이기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겸손히 간구하였습니다.

믿음이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반드시 나를 따뜻하게 받아 주시고 깨끗케 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떻게 대해 주셨습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를 보자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에는 moved with pity, moved with compassion, had mercy on him ‘그를 불쌍히 여기셨다’로 되어 있는데 NIV 성경에는 Jesus was indignant 즉, ‘예수께서 분개하셨다’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창조된 사람을 흉하게 만들어버린 문둥병에 대해서 분개하셨습니다. 속이 상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뭉클하며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안 대시고 고쳐 주실 수도 있었지만 당신의 거룩하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I am willing, Be clean!” 예수님은 몸을 굽혀 주저함 없이 그의 몸을 터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럼, 내가 원하고 말고, 당연히 내가 깨끗하게 고쳐줄게”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죄는 우리의 내면을 더럽게 합니다. 음란영상이 우리의 내면을 더럽힙니다. 돈에 대한 욕심, 이기심, 거짓말하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 운명주의적인 생각 등이 우리의 영혼을 더럽힙니다. 죄는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합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는 얼굴과 온몸이 일그러진 흉한 모습의 문둥병자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겸손히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며 고쳐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합니다. 기도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깨끗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치유함을 받고 참 생명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고쳐 주시고는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시기를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의 규례에 따라 그 사람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이러한 이적에 대해 열광할 경우 교권주의자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의 복음전파와 구원사역을 방해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였던 그 사람은 참지 못하고 나가서 이 일을 사방에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찾아 왔습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능력 있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실 수 있었던 것은 이른 새벽에 광야로 홀로 나가셔서 간절한 기도를 통해 영육간의 힘을 얻고 사명의식과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적을 보여주시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되 보다 많은 곳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예수님께 나아와 죄 씻음을 받고 깨끗하게 되어 캠퍼스와 여러 곳에 말씀을 전파하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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