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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부활절 2강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5:35-58
전한날짜 2018/04/08
ㆍ조회: 283  
부활의 영광과 승리
2018년 부활절 특강 2강 (노오규)

부활의 영광과 승리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승리하고 영광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또 어떻게 승리하여 영광을 받고자 합니까? 우리는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영광을 얻은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힘든 훈련을 감당하고 결국 승리를 얻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을 누렸을 것입니다. 저는 동계 올림픽에서 500 미터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를 봤습니다. 우리나라 차민규 선수가 가장 빠른 기록으로 금메달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선수가 0.01초를 앞서는 바람에 금메달의 놓치고 말았습니다. 0.1초이라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0.01초 차이로 승리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너무 아쉽고 억울해서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승리와 영광은 0.01초 차이로도 빼앗길 수 있는 취약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은 세상의 모든 영광과 승리를 빼앗아갑니다. 이를 생각하면 이 세상의 영광과 승리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참된 승리와 영광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부활의 참된 승리와 영광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며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성도 중에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그들의 의문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그리고 몸은 금새 썩어서 흙으로 분해됩니다. 죽는다는 것은 그 생명과 몸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영원히 변하는 과정입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죽음의 과정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그 생명과 몸을 회복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죽은 후 화장을 해서 뼈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 경우에는 더 믿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이런 의문은 팩트에 기초한 합리적인 문제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36-38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바울은 그들의 질문에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그들의 질문이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부활의 과정을 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마치 한 알의 씨가 땅에 뿌려져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가 뿌리는 씨는 뿌려진 그 자리에서 썩고 죽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다음에 뿌려진 씨를 찾아보아도 벌써 흙으로 분해되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새롭게 다시 살아납니다. 뿌리가 나고 줄기와 잎이 돋아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납니다. 우리는 씨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이 과정을 이상하게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전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난 것으로 보고 기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서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제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씨 안에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나는지에 대한 유전정보가 들어있다는 것을 어린 아이라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씨가 죽을 때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나되 새로운 형체를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활의 원리입니다. 한마디로 부활은 죽은 후에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몸을 얻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미 수 많은 생명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고 유지되는 현상을 연구하면 할수록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생명 활동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유기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생명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기적과 같은 것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심지어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은 일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정말 어리석고 한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고 새로운 몸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할 때, 우리 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이왕에 새로운 몸을 받는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키가 180 이상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화를 찢고 나온 현빈이나 강동원 같은 비주얼로 변화되면 더욱 더 좋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몸도 제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닌 것처럼, 아쉽게도 새로운 형체는 제가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39절부터 41절까지를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바울은 다양한 종류의 형체와 그 영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형체만 이야기하지 않고 그 영광에 대해서도 이야기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형체에는 그 나름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는 그 나름의 영광이 있습니다. 낮에 힘있게 온 세상을 밝히는 해의 영광이 있고, 밤에는 수줍은 듯 비추는 달도 그 나름의 영광이 있으며, 은은히 반짝이는 수많은 별에도 각각의 영광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땅에 속한 형체에도 영광이 있고, 부활의 때 가지게 될 하늘에 속한 형체에도 영광이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이 땅의 형체도 나름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현재 내 모습이 영광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보잘 것이 없고 추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신 우리 각자의 모습에 그 자체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충만케 하셨습니다. 따라서 서로 비교하거나 다른 것이 되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모습 가운데서 영광과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체 발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저는 과거 제가 가진 형체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슬프고 우울하게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키가 작고 이마도 넓고 얼굴도 못생기고 게다가 머리까지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늘 허리를 꾸부정하게 굽히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제가 얼마나 하나님께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제 외모나 형편에 만족합니다. 가끔 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제 모습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제 고유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형체의 고유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몸에도 그 자체의 고유한 영광이 있는데, 그렇다면 부활의 몸에는 얼마나 큰 영광이 있을까요?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은 현재의 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42절에서 44절을 보십시오. 다 함께 읽겠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도 있느니라” 
먼저 땅에 속한 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선 썩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젊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형체도 언젠가는 늙고 시들고 썩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또 다른 특징은 욕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롭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실수로 얼룩집니다. 온갖 지저분한 죄로 인해 더러워집니다. 그리고 땅에 속한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납니다. 각종 사고로 인한 외상, 메르스 독감 같은 전염병, 미세먼지로 인한 호흡기 질환, 고혈압, 당뇨, 치매와 중풍, 각종 암과 정신질환, 그리고 건선, 백반증, 주부 습진, 무좀과 같은 피부질환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은 온갖 병에 시달립니다. 질병에만 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은 죄의 유혹에도 약합니다. 한 순간의 정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짓습니다. 최근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과거의 죄로 인해, 그 동안 힘들게 쌓아 놓았던 것들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썩고 욕되며 약한 땅에 속한 몸으로 인해 우리는 늘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우리가 입게 될 하늘에 속한 몸, 부활의 몸은 어떻게 다릅니까? 우선 썩고 쇠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강철 체력과 방부제 미모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몸은 강하기 때문에 다시는 아픈 것도 없고 다치는 일도 없습니다. 암에 걸리지도 않기 때문에 저와 같은 암을 치료하는 의사는 실업자가 됩니다. 다시는 죄의 유혹에 넘어질 일이 없기 때문에 미투 운동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성이 거룩하기 때문에 본성 대로 행동해도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소감을 쓰는 것이나 365일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힘들게 투쟁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마음의 생각을 즉석에서 그대로 말해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뿐 아니라, 쉽고 재미있고 권세 있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메시지를 준비하느라 밤새 수고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을 자신에 대해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의 기대와 소망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설레지 않습니까?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땅의 몸이 조금씩 늙어가고 쇠하고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쉽고 슬프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입었던 몸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의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 있다 사라질 이 땅의 영광에 소망 두지 말고, 신령한 몸을 입고 누리게 될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45절에서 49절에서는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육의 몸 (natural body) 과 부활 때에 입게 될 신령한 몸 (spiritual body)에 대해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은 첫 사람 아담이 가졌던 흙으로 지어진 몸을 말합니다. 아담의 육의 몸은 땅에서 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흙에 속한 것입니다. 반면에 신령한 몸은 예수님께서 입으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말합니다. 둘째 사람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입으신 신령한 몸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땅에 속했기 때문에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육의 몸을 입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살려주는 영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이제는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살아온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하늘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벗고 왜 예수님과 같이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이 땅의 썩어질 혈과 육의 몸으로는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과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변화는 언제 일어나게 될까요? 51절과5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변화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마지막 나팔 소리에 홀연히 일어나게 됩니다. 재림의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살아서 나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바로 변화됩니다. 

 바울은 신령한 몸을 덧입을 그날을 바라보며 확신있게 외칩니다. 53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 비로소 부활로서 사망을 이기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25장 8절의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는 말씀과 호세아서13장 14절의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말씀이 성취됩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성취와 승리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사망 권세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패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육의 몸을 벗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을 그 날은 / 사망을 삼켜 버리는 진정한 승리의 날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바울은 최종적인 권면을 합니다. 5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죽은 사람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의심할 것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자기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느라 우리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몸의 부활을 믿는다 하더라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는 말씀은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그것도 조금만 힘쓰라는 것이 아니라, 항상 힘쓰고 더욱 힘쓰라고 하니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주의 일을 우리의 삶의 현장과는 별개라는 생각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것만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면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으로 알려진 로렌스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수도사가 되기 위한 교육이 부족해서 부엌에서 설거지나 잡일을 하는 평수사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하려 애쓰고, 이 일을 힘써 감당했습니다. 그는 비록 설거지를 하였지만, 다른 어떤 수도사보다 영성이 뛰어나 ‘부활의 로렌스’ 또는 ‘주방의 성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로렌스와 같이 어떤 일을 하든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라면 그 자체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 안에서 한 수고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또한 영원토록 그 가치가 남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보기에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동기가 자기와 세상 영광으로 가득하다면 죽음과 함께 모두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삼성의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신부님께 신의 존재에 대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물었습니다. 특별히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어렵다는데 왜 그러한가 물었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던 그가 이렇게 질문한 것은 그의 수고와 성취가 죽음 앞에서 헛된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올해 요절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말씀으로 정하였습니다. 헛된 세상일은 적게 하고 헛되지 않은 주의 일을 조금 더 감당하면 되겠구나 하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여 어떤 일을 하든지 내면의 동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면의 동기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대 교수로서 학교와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와 교육 등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지런히 연구 논문을 쓰기 위해 수고하고 힘썼습니다. 한 달에 한편씩 논문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목표한 대로는 아니었지만, 지난 3년 동안 평균 석 달에 한편씩 논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수고한 논문이 출판하였을 때, 그 동안의 수고를 보상받는 것 같아 기쁨과 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다른 연구자가 좋은 논문을 썼다는 소식을 들으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내면의 기쁨과 감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의 수고는 말 그대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믿음으로 한다고 하였지만, 제 욕심과 영광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헛된 내 욕심과 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 수고하지 않고,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광과 승리를 얻고자 온갖 수고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영광과 승리는 죽음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고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헛된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만 참된 영광과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 신앙이 있는 자들에게 부활의 영광과 참된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헛된 세상 영광과 승리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지 말고,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흔들림 없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8년 부활절 제2강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57, 58

부활의 영광과 승리


1. 고린도 성도들 중에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35)? 바울은 땅에 뿌려지는 씨의 비유를 통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깨우쳐 줍니까(36-38)?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15: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15: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2. 육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39)?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어떠합니까(40,41)? 죽기 전의 인간의 모습과 부활 후의 모습이 어떻게 다릅니까(42-44)?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3.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은 어떻게 다릅니까(45-47)?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장차 우리는 누구의 형상을 입게 됩니까(48,49)?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4.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50)? 그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51)? 나팔 소리가 날 때 우리는 어떻게 변화됩니까(52,53)?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 그때 어떤 말씀이 이루어집니까(54,55)? 하나님은 어떻게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를 주십니까(56,57)?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58)?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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