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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마가복음 6 강
성경본문 마가복음 3:7-35
전한날짜 2018-04-22
ㆍ조회: 277  
열둘을 세우셨으니
열둘을 세우셨으니
마가복음 3:7-35
요절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마가복음 사랑! 저는 봄 특히 4월이 되면 봄 처녀처럼 마음이 설레고 황홀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죽은 것 같았던 마른 나뭇가지에서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고 연녹색 잎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나도 저 아름다운 꽃잎처럼 영의 몸으로 부활할 수 있겠구나 라는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부패한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를 거듭 깨닫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왕국을 떠나 성육신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이 놀라운 기적이요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열둘을 세우셨으니”입니다. 요절을 읽고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관점과 예수님이 가지신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배우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역사와 세계선교를 위한 전략으로 열두제자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르심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누가 예수님의 가족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열두 제자를 세우신 예수님 (7-19)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 본래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율법의 규정을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도저히 지키지도 못할 규정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규정을 지키는 척하는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목자가 되어야 하는데도 백성들이 율법규례를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감시하는 종교경찰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의 메시지는 권세가 없어 지루하고 답답하였으며 백성들은 율법주의의 속박아래 고통하며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자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동맹관계를 맺고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였습니다. (6절) 예수님의 권세있는 말씀을 듣고 치유의 능력을 경험한 백성들이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께로 몰려가자 종교지도자들은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7절과 8절을 보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는데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이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신 큰일, 즉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신 일들을 듣고 사방 각처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복음은 갈릴리라는 지역을 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 오셨지만 세계만민의 구세주로 오셨으며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세계만민을 위한 구원의 기쁜 소식임을 보여 줍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 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만지려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시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의 이적 기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적인 치유보다는 육적인 질병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귀신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외쳤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You are the Son of God!)”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예수님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도록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누가복음 6:12,13a절을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가셔서 밤이 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산에 오른다”는 말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홍해를 건너 광야로 본격적으로 행진하기 전에 시내 산에 머물렀습니다. 모세와 아론 두 지도자는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습니다. 이들은 산에 올라가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밤새 기도하시면서 어떤 꿈을 가지셨을까요? 이제는 율법과 규칙에 매여서 생명이 죽어버린 유대교로는 안 되겠다, 바리새인들은 더 이상 무리들의 목자가 될 수 없다, 이제 사람들을 새로 선택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해야겠다고 결론 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선교전략을 짜시고 제자양성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의 복음전파사역을 조만간 끝내시고 십자가 대속의 사명을 완수하고 부활승천하실 것임을 내다보셨습니다. 예수님 이후의 사역을 계승할 후계자 양성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결론 내리셨습니다.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세리 레위를 부르신바 있었으며 나다나엘, 빌립도 부르신바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르심이 인간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주권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제자로 부르시는 것은 복중의 복이요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이는 온전히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내가 원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원하셔서 그 분의 주권에 따라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비록 실수하고 죄를 범할지라도 이 부르심은 결코 취소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은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해서 이 길을 걷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한걸음 걸음마다 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응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으며, 야고보와 요한은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기쁨으로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부르심으로 불가항력적인 신적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부르심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4절 상반부를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NIV 영어본에는 “He appointed twelve—designating them apostles” 즉 열두 명을 뽑아 그들을 사도로 지명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Apostle)의 뜻은 보내심을 받은 자(one who is sent off)입니다. 영어로 “Messenger” 또는 “Ambassador”(대사), 또는 “Envoy”(사절, 특사)라고 불립니다. 어느 나라든지 대사 임명식은 화려하게 거행됩니다. 대통령이나 국왕이 직접 대통령궁이나 왕궁에서 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상대국의 국가원수는 외국 신임대사의 신임장제정식을 화려하게 거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열두 명을 뽑으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특명전권대사들로 임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대사들로 임명된 자들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놀라운 은혜요 엄청난 특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부족을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려는 비전을 가지셨던 것처럼, 예수님도 열두제자 공동체를 통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세계선교를 위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려는 비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건설하시고 세상 만민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는 자는 핍박이나 유혹이 밀려오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견고히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사람이나 단체가 시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 가운데 나를 사도요 그리스도의 대사로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열둘을 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에는 택하신 목적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요절말씀인 14,15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라”(Come, follow me)고 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으로 향해 있던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돌리는 인생의 큰 방향전환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예수님 중심적인 생활로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던 데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소속을 바꾸는 것입니다. 편협하고 생명이 죽어버린 유대주의에서 생명력이 충만한, 전 세계를 향한 복음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르신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심으로써 제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과 목자의 심정과 사상과 십자가와 부활 등 예수님 전부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고 예수님의 심정(spirit)을 배워서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Little Jesus)가 되도록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상세하게 성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냄새나는 죄인들이 성육신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과 공동생활을 하다니!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교제를 나누며 예수님을 닮아 갈 때 우리는 훌륭한 제자양성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로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매일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새벽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항상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 하며 내 생명 다하여 일생 주님을 섬기겠다는 다짐을 되새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같이 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힘을 잃고 피로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는 것이 피곤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서 주님과 교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좇기에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택하신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즉, 전도인으로 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의 사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견하신 자들입니다. 사도의 미션은 죄와 사망의 바다에서 죽어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요,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에는 딱 한번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신 적이 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보내신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을 때 얼마나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지를 생생하게 말해 줍니다. 사도들을 통해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선교의 비전을 가지시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제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셋째,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사단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괴롭히고 못쓰게 만드는 것은 물질이나 인간이나 사회제도가 아니라 악령의 세력 곧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심고 불안하게 하고 쉼이 없게 합니다. 우리를 정욕의 노예가 되게 하고 시기심과 미움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우리를 자학하게 하고 자신감을 잃게 하고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세력을 파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악령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탄의 결박을 풀어 양들을 구출하는 영적 권세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겸손하게 성령을 의지하는 영적 리더들이 되도록 훈련하시고 키우셨습니다.

16-19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나옵니다. 이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특징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나서기를 좋아하고 큰 소리를 잘 치며 강한 것 같으면서 약했습니다. 반면 요한은 조용하지만 불같으며 약한 것 같으면서 강했습니다. 야고보는 인간적인 야심이 강하여 한번 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불개미 정신이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멍하면서도 긍정적이었고, 빌립은 복잡하면서도 부정적이었습니다. 마태는 세리 출신답게 이기적이었고, 도마는 무슨 일을 만나든 일단 의심해 놓고 보는 의심에 있어서 대가였습니다. 또 바돌로매는 사색적이었고 시몬은 정치적인 혁명분자들의 열심당(Zealots) 소속이었으며 행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는 순진한 자요, 가룟 유다는 음흉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키우지 아니하시고 그 개성대로 키우셨습니다. 이는 새 이스라엘 각 족속의 목자로 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특출한 자들이 아닌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셔서 그들을 비범한 인물들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고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현재는 부족하지만 장차 사도행전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일군들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장차 변화된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소망 가운데 키우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부족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나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불의에 빠져 자학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에게 큰 소망을 두시고 소망 가운데서 나를 양육하시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을 생각할 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족한 우리를 그의 제자로 부르시고 소망 가운데서 양육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무엇보다도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과의 교제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영적 권세를 덧입어 마귀를 물리치고 양들을 구출하는 생명구원의 역사를 힘차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누가 예수님의 가족인가? (20-35)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는 몰려드는 수많은 무리들을 섬기시느라 음식을 먹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복음역사에 몰두하셨을 때 사탄이 맹렬하게 공격해왔습니다. 사탄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을 동원하여 예수님이 미쳤다는 악 소문을 퍼트리고 예수님이 귀신들렸으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인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이 말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인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들린 자라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엄청난 영적 무지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이 얼토당토아니한 거짓말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라나 가정에 내분이 일어나면 망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어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십니다.  
27절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 말씀에서 강한 자는 사탄을 가리키고, 집 세간은 사탄에게 고통을 받는 인간을, 강한 자를 결박한 더 강한 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한 분으로서 연약한 인간을 옥죄고 있는 사탄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생명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성령모독죄란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를 말합니다. 즉 메시아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거부하고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비난하는 자들은 결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란 성령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인데 이들은 성령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이 밥도 안 먹고 미친 듯이 복음역사를 섬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정신이 아니다, 미쳤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가족들의 눈에 예수님이 좀 심하다, 지나치다고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안의 장남인데 집을 나가서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와 형제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온 가족이 예수님을 붙들어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64km 떨어진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왔으나 수많은 무리들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밖으로 나와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33,34,35절을 읽겠습니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 말씀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나와 상관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도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지만 더 큰 의미에서 앞으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 즉 새로운 교회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은혜를 덧입고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들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 한다”에서 “누구든지” (whoever)라는 말은 예수님의 새로운 신앙공동체는 폐쇄적이 아니라 개방적이며 글로벌한 가족관계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돌이켜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세상의 가족관계를 넘어서 예수님과 가장 친밀한 영적 관계요 영원하고 참된 가족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있으십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애타는 심정으로 줄기차게 기도할 때 부모님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십자가 대속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의 하나님의 복음역사를 계승하여 섬길 수 있도록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새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새 이스라엘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에도 우리를  제자들로 부르셔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같이 있게 하시고 교제하시며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은 작은 예수가 되도록 키우십니다. 또 세상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마귀를 물리치는 영적 권세를 가진 사도들로 키우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피보다 진한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합심하여 거룩한 캠퍼스 사명을 힘차게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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