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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2018 마가복음 10강
성경본문 마가복음 5:21-43
전한날짜 2018-05-20
ㆍ조회: 270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ᅟ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찬송: 543장(어려운 일 당할 때)
말씀 : 마가복음 5:21-43
요절 : 마가복음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리고 늘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질병문제, 자녀문제, 두려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는 자를 축복해 주시는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문제를 들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함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두 사람 (21-29)

  예수님은 거라사의 군대귀신을 쫓아내시자마자 돼지농장 사람들의 강권으로 배를 타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맞은편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돌아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호숫가로 모여 들었습니다.(21) 그들은 대부분 병들고 영육 간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언제든지 이들을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도착하셨을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나요?

첫째,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돕기 위해 호숫가에 서 계셨을 때 무리 가운데서 황급히 달려 나와 예수님 발아래 엎드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회당장은 덕망이 높고 모범적인 평신도 지도자가 맡았습니다. 회당건물 유지관리, 예배준비 등 모든 행정업무를 감당했는데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명예로운 직분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 지역의 유지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였습니다. 회당장은 근엄하고 위엄있게 보이기 위해 턱수염도 기르고 품위있는 긴 예복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본 지역주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적인 판단과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예수님을 이단시하고 죽이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막3:6)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당장이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와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그들에게 미움을 사서 회당장직에서 파면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회당장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였을까요?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12살 난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야이로에게 오랫동안 자녀가 없다가 늦둥이로 태어난 딸이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외동딸이 태어난 이후로 가정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야이로가 회당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딸이 ‘아빠’하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 하루의 피로가 가시고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딸이 색연필로 긴 턱수염을 기르고 긴 예복을 입은 멋진 아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보면 야이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곤 하였습니다. 또 야이로는 집에서 딸과 소꿉장난을 같이 할 때면 나이 먹은 것도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야이로 회당장은 회당에 가서도 늘 딸 생각만을 할 정도로 딸을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요즈음 말로 ‘딸 바보’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스러운 딸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40도의 고열을 오르내리며 시름시름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의 지위를 활용하여 가버나움과 주위의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불러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가서 딸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 기도하면 나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았지만 그 때 마침 거라사 지방에 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야이로는 갈릴리 호숫가에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속히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야이로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보좌를 움직였는지 예수님은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시자마자 군대귀신을 쫓아  내시고는 돼지농장 사람들에 의해 등 떠밀려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오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회당장으로서의 위신과 체면과 자존심을 다 벗어 던지고 또 회당장직에서 파면 당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주님, 제 어린 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오셔서 손을 얹어 살려 주십시오.” (현대인의 성경) “제 어린 딸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살려 주십시오”(공동번역)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애원했다는 것은 예수님만이 딸을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나이 지긋한 회당장이 달려와 발아래 엎드려 간구할 때 좀 당혹스러웠지만 사랑하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과 간절한 믿음의 간구를 들으시고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요청대로 그 즉시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갈 때 큰 무리가 따라 오면서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어댔습니다.(24)

둘째,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무리에게 에워싸 떠밀리면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고 계셨는데 무리 중에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여성병으로 계속 하혈을 하는 병입니다. 율법은 혈루병을 부정한 병으로 규정하고 환자가 만지는 것마다 앉는 장소마다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율법사회에서 이 여인은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레15:25-27) 아무도 그녀와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인은 소외되고 고립되어 고독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1,2년도 아니고 12년 동안 병을 앓았다니 여인의 모습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계속 하혈을 했기 때문에 얼굴이 창백했고 영양결핍으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으며  눈은 초점이 없었고, 뼈만 남은 모습을 하였으며 몸 냄새가 심하여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공주로 자라다가 꽃다운 나이에 원인도 모르는 혈루증에 걸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애간장을 태우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만일 이 여인이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친구도 떠나고 부모님들도 애를 태우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여인은 12년 동안 병을 고치기 위해 용하다는 의사들을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돌팔이 의사들에게 사기를 당하여 엉뚱한 민간치료법으로 인해 오히려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남겨준 재산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었고 도리어 갈수록 병은 악화가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절망이요 자기 상실이었습니다. 여인은 자기를 상실한 채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부정한 자라는 죄의식과 고독을 씹으면서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바로 이 절망적인 순간에 여인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한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더러운 문둥병자도 만지셔서 깨끗케 해 주시고 중풍병자도 일어나 걷게 하시고 한 손 마른 사람도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시고 고치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고침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예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12년 동안 쌓인 운명주의,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은 안 된다는 패배주의, 절망적인 생각, 부정한 몸으로 무리 가운데 섞여 들어갔다가 발각이 되면 돌에 맞아죽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예수님께 나아간다고 해서 과연 불치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등 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인에게는 태산을 바다에 던지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야이로처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인은 두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떨리는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안간 힘을 써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살짝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하혈이 멈추었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너무 기뻐서 마음속으로 “예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외쳤습니다. (Praise the Lord! Thank you, Jesus!)
   야이로와 여인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야이로는 유대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유명 인사였지만 여인은 이름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야이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담대하게 간구하였지만 여인은 은밀하게 예수님께 나아왔으며 공개적으로 간구할 수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딸 문제를 가지고 왔지만 여인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고난이 그들을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만든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반드시 들어 주실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와 상황에 처하더라도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예수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과 주위의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야이로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여인은 두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고 무리 속을 헤쳐서 담대하게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겸손히 나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발아래 엎드려 간절히 간구함으로 기도의 응답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믿음을 온전케 해 주신 예수님 (30-43)

 많은 사람들은 절박할 때 예수님을 간절히 찾다가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문제해결사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해결을 넘어서 우리와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각 사람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영적으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며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여인은 은밀하게 예수님께 나왔기 때문에 고침을 받은 후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 나가려고 했습니다. 여인은 나음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충만하여 예수님께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몰래 빠져 나가는 것이 죄송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여인이 몇 발자국 걸어 나가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며 주위를 둘러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무척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주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을 기어이 찾고야 말겠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 보셨습니다. 여인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나아와 모든 사실을 고했습니다. 여인은 자의식과 수치심을 무릅쓰고 자신의 추한 과거와 또한 자신에게 이루신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치시러 급하게 가던 길을 멈추시고 왜 이 여인을 찾으시려고 하셨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으로 볼 때 누가 옷자락을 만진 사람인지를 아셨을 것으로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졌지만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나아온 여인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해 주시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에 떠는 여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예수님은 여인을 보시고 왜 몰래 옷자락을 만졌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칭찬해 주시고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인이 믿음으로 한 것이지만 몰래 옷자락을 만졌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 것을 보시고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심으로 여인에게 참 평강을 주셨습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육신의 병에서 고침은 받았지만 영혼의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마음속의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도록 함으로써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고 영혼의 구원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여인을 찾으신 것은 인격적인 바른 관계성을 맺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나와의 상호관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맺기 위해서는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서 치유 받은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간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자신이 혈루증으로 인해 얼마나 오랫동안 육신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 병이 나아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었음을 간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아'라고 부르신 것은 참담한 몰골을 했던, 그래서 사람들이 멀리했던 여인을 회복시켜서 아름다운 자녀로 삼으신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육신적인 치유를 넘어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축복으로 여인은 육신적으로, 율법적으로 영적으로도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유대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온전케 해 주셨습니다. 여인을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Thank you, Jesus!) (찬양)

     야이로는 예수님이 여인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죽어가는 딸을 생각하며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이 집에 늦게 도착하시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마음에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었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여인과 말씀하고 계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절망적인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35). 그들의 말은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장례식을 치를 준비나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딸이 죽지 않을까 불안과 초조로 마음 졸이던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딸이 죽었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과 허탈감이 몰려 왔을 것입니다. 몰래 새치기한 여인에게 대한 원망과 여인의 긴 인생소감을 들으시느라 시간을 지체하신 예수님에 대한 원망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야이로의 마음 가운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 말은 예수님도 죽음을 어찌할 수 없지 않느냐고 주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탄의 음성이었습니다. 야이로는 두려움으로 인해 절망하고 믿음을 상실할 신앙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야이로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3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즉시 개입하셔서 야이로를 보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마음에 두려움이 심기우기 전에 재빨리 부활의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불신과 회의를 심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야이로에게 믿음과 확신과 용기를 심으셨습니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인간은 죄의 결과로 평강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거짓 덫에 빠져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2:14-15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단에 매여 평생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여러모로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심습니다. 두려움은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성 단절에서 나옵니다. 젊은이들은 학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학교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준비도 병행해서 해야 하고 스펙도 쌓느라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제자를 세울 수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욕 맨해튼에서 방황하는 한인 홈리스들에 대한 취재프로를 보았습니다. 그 중 영어도 잘 하고 멀쩡하게 생긴 한 중년 남자는 알콜 중독자인데 가족을 떠나 홈리스가 되었습니다. 알콜 중독을 끊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그를 보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술을 끊을 수 없나요?” 그는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책임감이 너무 무겁고 두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해 잘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계속 어두운 뉴스만 보도합니다. 사상 초유의 청년실업률,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임박 등의 뉴스를 들으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소심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무력해 집니다. 개척하고 정복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려워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딤후 1:7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통해서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마음으로 믿고 의심치 아니할 때 어떤 고질병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366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매일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두려움에 잘 빠지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는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잃지 말고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신과 두려움을 심는 사람들의 말에 요동치 말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굳게 의지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도 파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두려움과 싸우며 예수님과 함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에는 울고 불며 통곡하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3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자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빛과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께서 아이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을 다 내어 보내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들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Talitha koum!) 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은 아람어로 탈리타는 소녀, 쿰은 일어나라는 뜻으로 유대인 부모들이 매일 자녀를 깨울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는 아이를 깨우듯이 "소녀야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아이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일어나서 걸었는데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도록 많이 경계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문제로 두려움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면 내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모두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두려움과 싸워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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