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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14년 역대하 5강
성경본문 역대하 10:1-13:22
전한날짜 2014/11/30
ㆍ조회: 1700  
승리와 강성해짐의 비결
2014년 가을학기 역대하 5강
                         
                  승리와 강성해짐의 비결
말씀/역대하 10:1-13:22
요절/역대하13:11

 





우리는 역대상과 이제까지의 역대하서를 통해서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번영을 공부했습니다. 이 두 왕은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축복해주셨는가에 이야기의 초첨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범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솔로몬 왕이 말년에 나타난 우상숭배, 그의 배교는 아주 큰 범죄였습니다. 역대하에서의 솔로몬 왕 치적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지만 이는 나라와 그의 후손들에게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친 큰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우상생배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하나님이 그 나라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섭리하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역대서 기자는 이제 죄에 결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나라를 새롭게 새우고자 하는데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에 대한 참담한 결과들에 대해 말하면서 돌아온 유대 민족에게 다시 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의 교훈이 있습니다. 교훈을 얻는 자는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로호보암과 아비야의 기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본문을 통해 범해서는 안되는 죄가 무엇인지, 그 죄의 여파를 생각해보며 이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할 것인지 배우는 시간 되길 기도합니다.

I. 르호보암 시대의 교훈

  물론 르호보암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이에 대해 정당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을만한 때에는 분명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로호보암의 시대는 죄와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그의 시대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째, 나라가 남북으로 분렬되었습니다.  
로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뒤를 이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왕국의 중심지인 세겜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지를 얻고 명실공히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때 솔로몬 말년에 솔로몬의 미움을 사 애굽으로 망명을 갔던 여로보암이 솔로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때 맞추어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가 돌아오자 북쪽 지파 사람들은 여로보암을 앞세워 르호보암에게 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harsh labor)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것은 우리가 너를 왕으로 인정할테니 이제 노역과 세금을 좀 줄여서 우리가 좀 쉬게 이 문제 관해 공약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당시에 백성들이 많은 건축 사업에 동원되었고 또 세금도 많이 내어야했기 때문에 실제 마음 고생들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르호보암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르호보암은 삼일간의 말미를 달라며 먼저 이 문제에 대해 솔로몬 생전 신하로 있었던 원로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때 이들이 말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이 말은 통치하기에 앞서 먼저 아버지 솔로몬 왕 때 많은 일 때문에 지쳐있던 백성들을 위로하며 이들의 마음을 얻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왕을 좋아하고 영원한 왕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뭐, 그들을 잘 섬기고 기쁘게 해야한다고? 그들이 내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해? 젊은 그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로들의 가르치는 조언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과 의논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어떠했습니까? 10b절, 11절을 보십시오.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  이들의 조언은 아니 이런 놈들은 그대로 두면 왕에게 더 기어오를 겁니다. 아주 초장에 잡아 왕이 무서운 줄 알게 해야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말은 르호보암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삼일 후에 아주 포악한 말로 젊은 신하들이 가르쳐준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분노했습니다. “야~ 자기 아버지 보다 더 하겠다네.”하면서 “르호보암, 너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너는 네집 살림이나 잘 챙겨라. 우리 돌아갑시다!”하고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오직 유다 성읍에 사는 유다 지파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이 사태를 수습해보고자 감독관 하도람을 그들에게 보냈지만 그는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자 세겜으로 갔지만 그만 나라의 대부분을 잃게 된 것입니다. 19 절을 보십시오.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이 두 나라는 끝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후에 다 각각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삼일간의 말미, 이 짧은 기간에 원로들의 말을 멸시하고 민심을 가볍게 여긴 르호보암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하는지, 그것을 몰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많습니다. 야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 들을 줄을 모릅니다. 신앙 선배들의 조언과 부모님들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그들의 말을 고리타분하게 여깁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좀 엉뚱한 인용 같지만 이것은 만고의 진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영혼이 살아나는 것과 똑같이 들을 귀가 있는 자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듣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신앙선배들, 목자님들, 학교의 선생심, 부모님들의 말씀에는 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인생의 연륜과 통찰이 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인생 경험과 신앙체험에서 나온 지혜와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최근에 ‘Reading으로 Lead하라’ 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좋은 책, 특히 고전을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인생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혜자들에게 듣고 배운다는 것이요 이런 사람들이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하게 되고 또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이 책을 통해 믿음의 선진들의 고뇌와 그들의 기도, 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주관자 되시고 목자가 되시고 왕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워렌 버팻 같은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상담자인데 이 사람이 자기 책상 속에 은밀히 감추어 놓고 읽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지혜를 얻고 판단해줍니다. 신명기 6:5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면서 교훈이 시작됩니다. 듣는 자가 구원을 얻고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들을 귀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로서 인생의 실수, 낭패를 면하고 은혜와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다 함께 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러면 나라가 이렇게 갈라지게 되었을 때 르호보암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존심을 걸고 군대를 18만명이나 모아 북진통일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스마야를 보내 르호보암과 유다, 베냐민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특별히 여기서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말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진 것은 솔로몬 시대의 극심한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니 하나님이 하신 이 일을 네가 돌이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죄를 후대에 갚으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중에서 우상 숭배의 죄는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 때마다 외우는 십계명 중 제 일 계명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그러므로 르호보암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를 단순히 자기의 잘못으로 볼것이 아니라 그것을 엄위하신 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고 순종해 회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르호보암은 이번에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대신 남쪽 지역에 애굽의 침략에 대비해 15개의 방비 성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양식과 기름, 포도주 등 비상시의 식량을 저장하고 모든 성읍을 방패와 창 등 무기를 두었습니다. 이로서 그는 나라를 매우 강하게 하였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둘째, 나라에 큰 배교가 일어났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북쪽에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기 살던 곳을 떠나 남쪽의 르호보암에게 돌아왔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남쪽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지내러가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람들이 다 남쪽으로 내려가고 자기의 왕권이 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하면서 이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는 그는 숫염소 우상을 세우고 이곳 저곳에 우상에게 제사드릴 수있도록 산당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나름대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원래의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은 해임했습니다. 이로서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큰 배교가 일어났습니다. 이때부터 북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합왕 때는 나라가 완전히 바알숭배에 빠져 우상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극심한 우상숭배로 인해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여로보암으로 인해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그들이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 지내고자, 다시 말해 예배드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모범을 따라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유다를 도와주었고 이로서 르호보암 왕국은 강성해졌습니다. 이렇게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므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다윗 언약을 따라 신앙의 정통성을 더욱 굳게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서 역대서는 북이스라엘 보다는 남유다 중심으로 다윗의 언약을 따라 그 명맥이 어떻게 이어져갔는가를 기록하게 됩니다.

나라를 거짓의 터 위에 세우느냐 아니면 진리요 생명이 되신 하나님의 터 위에 세우느냐의 문제는 그 나라가 하나님 안에서 번성하고 언약을 따라 구속사에 쓰임을 받느냐 못받느냐에 관한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볼 때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나라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북한은 해방이후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고 이로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김일성을 시작으로 명백한 우상의 정권을 세워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남한을 공격하고자 쉬임없이 음모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회개와 북에서 고통하는 동포들을 위해, 또한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길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민족 단체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그 시대를 위한 생명의 샘이요 어둡고 죄악된 시대에 하나님 영광을 위한 등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예배를 통해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며 이 시대의 우상과 일체의 모든 배교와 싸우며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 구속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통일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12장을 보십시오. 르호보암의 왕위는 견고해졌고 나라는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강해지고 이제 살만해지자 르호보암은 그만 실수를 합니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그 백성들도 덩달아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이때 올라온 시삭의 군대는 병거가 1200대요 마병이 육만명, 그와에 리바아, 숙, 에디오피아 등 각지에서 모집된 연합군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습니다. 이때 시삭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다 빼앗고 예루살렘까지 진격해왔습니다. 이때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와 말했습니다. 5b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이런 재앙의 원인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버린 민족, 모임, 사람들을 버리십니다. 세상 권세, 폭력에 넘겨버리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의 주권자요 주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스마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왕은 스스로 겸비하여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이는 자기들이 죄 때문에 이렇게 벌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시고 그들을 다 멸하지는 않고 조금은 구원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에서 분명한 한가지 교훈을 남기고자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를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르호보암은 시삭에게 정복당해 그를 섬겨야했습니다. 시삭은 그때 예루살렘에 들어와 성전과 왕궁의 보물, 솔로몬의 황금방패를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그 엄청났던 영광을 한 순간에 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의 호위병은 이제 금방패 대신 놋방패를 사용해야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로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

이상에서 나타난 르호보암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17년 동안 오랜 기간 통치했지만 그동안에 나라가 갈라지는 큰 변을 겪어야했고 이렇게 애굽의 군대로부터 수치스러운 일도 당하고 또 북이스라엘의 여러보암과 많은 전쟁을 해야했습니다. 역대서는 르호보암의 삶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영어로 보면 ‘ because he had not set his heart on seeking the Lord.’ 그는 마음이 하나님께 setting 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이랬기 때문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이것하고 저것하고 그러다가 힘들면 겸비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러다가 좀 괜찮으면 멋대로 했습니다. 여로보암만 악합니까? 르호보암처럼 하나님께 그 마음이 정해져 있지 않는 것, 이것도 악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setting 되어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또 무슨 일을 겪든지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나와 간구하는 기본자세가 확고하고 확립 되어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아직 그러지 못하다면 그것은 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II. 아비야의 교훈

  아비야의 교훈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만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18년에 아비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여로보암이 군대 80만명을 이끌로 아비야와 싸우러 왔습니다. 이때 아비야의 군대는 여로보암 군대의 절반은 40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아비야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대진하는 중에 산 위에 서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때 아비야의 화법이 어떠합니까? 그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금을 그어 말합니다.  

첫째, 너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깨고 주를 배반하고 나라를 깬 도독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들이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소금 언약이란 소금이 변하지 않듯 결코 변하지 않는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남유다 북이스라엘을 합한 이스라엘을 모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기로 소금 언약을 맺어 작정하셨는데 너희들이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 난봉꾼과 잡배를 모아 르호보암을 대적하여 나라를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르호보암 왕이 아직 미숙해서 잘못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와는 달리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너희는 우상숭배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무리를 지어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에게 예배지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너희는 사탄을 섬기고 우리는 참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너희는 금송아지를 섬긴답시고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워 그런 허무한 신을 섬기게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그들은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라 수종을 드나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잔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으니라.’ 다시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에게 예배하지만 우리는 주의 계명을 지켜 말씀대로 직분의 정통성이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희와 우리는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머리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예배하며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 때에 제사장이 나팔을 불어 우리가 너희를 공격하면 너희가 우리를 이길 것 같으냐? 12b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너희 군대가 80만명이요 우리의 갑절이 된다고 해도 너희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편에 제대로 서 있는 우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비야의 이 화법은 정립과 반정립이라는 직설적인 화법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개를 대칭으로 비교해 흑백을 분명히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바대로 우리는 아비야의 이런 화법을 통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화법에는 영적 메시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정립, 반정립의 사고는 오늘날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나님 편에 좀 더 분명하게 서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습니다’하고 말했으면 이어 이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그러나 믿지 않으면 당신은 죄로 심판받고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하는 말도 분명히 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지옥을 말하면 그런게 어디있느냐 하고 공연히 공포함 조성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천국만 이야기 하지 지옥을 말 못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상대는 지옥을 만만하게 여기고 죄도 못깨닫고 상대적으로 구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말할 때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도 함께 언급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서 참과 거짓이 분명히 드러나고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해지는 법입니다. 세상을 대할 때도 ‘세상은 하나님 안믿고 나는 믿는다.’ ‘저들은 성경 말씀을 멸시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원과 생명의 말씀으로 믿는다.’ ‘저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지만 우리와는 함께 하신다.’ ‘저들은 주일에 놀러다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세상 명예와 권세를 의지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다.’ 이런 분명한 선을 그으며 상대와 우리 자신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과 섞이지 않고 좀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의 죄와 싸울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해 자기 정체성 확립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크리스챤이라고 무시하면 우리 마음의 입장이 분명해야합니다. “어, 네가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무시해?” “내가 술 안마신다고 핍박해? 어디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그런 식으로 핍박하고 잘되나 보자! 나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따라 분명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다음 주부터 성탄 말씀을 공부할텐데 성탄의 기쁨을 우리가 충만히 누리려면 이 정립, 반정립의 구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만 하면 “그래? 감사한 일이지.”하면서 누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주려나 하며 성탄의 소원이 이상해집니다. 그러나 반정립의 구도가 분명하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로 인한 고통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지 못할 때 들어갈 지옥을 어떤 곳입니까? 하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는 얼마나 놀라운 것이가를 깨닫고 비로서 충만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드러내면 빛은 그만큼 세차고 감동적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아비야의 이런 정리, 반정립의 화법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분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너희는 금송아지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이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 ‘너희의 예배는 사이비 제사장을 세워하는 가짜 예배이고 우리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을 세워드리는 진째 예배야’ ‘너희는 계명을 버렸지만 우리는 계명을 지킨다’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을 머리 삼고 있는 우리와 싸우겠다고? 싸움이 되겠냐?’  
그러면 이 싸움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여로보암은 후미 매복작전을 펴봤지만 유다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고 이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쳐 그들 중 오십만명이 죽였고 이스라엘은 이에 항복했습니다. 18b절은 이런 유다의 승리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야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추격해 성읍을 빼았았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역사에서 배웁니다. 더 지혜로운 자는 성경을 통해 배웁니다. ‘우상 숭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할 뿐이다. 계명과 예배를 중시하는 민족이 되자.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신앙적 정립, 반정립이 분명한 사람이 되자, 그것이 승리와 축복의 비결이다.’ 이것을 이시간 심령에 새겨 넣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통해 배워 교훈을 얻으며 방향 잡게 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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