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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13년 창세기 18강
성경본문 창세기 27:1-45
전한날짜 2013/09/15
ㆍ조회: 1185  
누가 주의 축복을 얻고, 누가 주를 섬길 것인가
2013년 봄학기 창세기  제 18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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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  창세기 27:1-45
▣ 요절 /  창세기 27:28,29

                    누가 주의 축복을 얻고,  누가 주를 섬길 것인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맡고 있는 직책, 혹은 직분의 고귀함, 그 자체가 갖는 명분의 위대성을 잘 모르고 또 이를 잘 지킬 줄 모릅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려 그만한 위치에 올라갔으면 그 자리를 잘 지켜 열심히 일하며 존귀를 얻고 삶을 영예롭게 해야할텐데 많은 경우 당장의 물질적 유혹과 쾌락을 못이겨 이 모든 것을 함부로 여겨 거기서 쫓겨납니다. 심한 경우 인생을 망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명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여겨 어찌보면 은혜로 굴러들어오는 축복인데 이것을 발로 차버립니다. 깊이 분별하지 않고 함부로 자기 좋아하는대로 행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기 조차합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작은 직분 하나라도 이것을 자기 축복의 관문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하고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더 나아가 하나님 구속사에 귀하게 쓰임받기까지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사람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해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는 에서와 야곱을 살펴보며 영적 명분을 중요시한 야곱의 축복에 대해서, 이어서 이삭과 리브가를 비교해보면서 영적인 분별력 면에서 리브가의 믿음과 헌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말씀의 교훈을 우리의 심령에 다시 새기며 우리가 영적인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I. 에서와 야곱

  리브가는 결혼한지 20년 만에 잉태하였는데 뱃속의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 감사하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겁니다. 여기서의 ‘싸운다’는 말은 ‘산산 조각을 내다’, ‘깨뜨리다’, ‘눌러 부수다’ 하는 아주 강한 뜻입니다. 뱃속의 아이들이 도무지 뭐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것일까요? 리브가가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지 알고자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응답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기라’(23) 그들은 쌍둥이였지만 뱃속에서부터 갈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왜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셨는지에 대한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올 때 뒤를 이어 나오는 야곱은 먼저 나가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나왔습니다. 이 그림은 내가 먼저 나가야하는데 왜 네가 먼저 나가느냐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동생 야곱은 나올 때부터 형 에서가 태생적으로 갖게되는 장자의 명문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으로 해석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아버지 마음은 형 에서에게 가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인데다가 몸에 털도 많고 사냥도 잘했습니다. 사내답게 들판을 뛰면서 호연지기를 배우고 있었고 에서는 종종 자기 입맛에 아주 좋은 야생 들고기 요리를 잘해 왔습니다. “아버님, 제가 오늘 들에서 노루 한 마리를 잡아서 요리 해왔어요. 오늘 요리에는 통마늘도 많이 넣고 한방재료다 넣었어요. 몸에 좋은 건강식이에요. 그리고 오늘 요리에는 에굽에서 직수입한 허브 향을 좀 첨가해어요. 드셔 보세요” 그러면 이삭은 너무 기뻐서 “아이고 내 아들 에서야 내가 니 때문에 산다.”하면서 볼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이삭 보기에 에서는 진짜 사나이 같았습니다. 야곱은 달랐습니다. 이삭이 ‘에서야 어디 있느냐’하고 물어보면 늘 야곱이 ‘에서는 밖에 나갔어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삭이 보기에는 야곱 이 녀석은 매일 장막에 틀어박혀 ‘형은 밖에 나갔어요’하면서 형만 감사하고 있는 듯한 말만 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가 에서만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리브가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보기에 에서는 호연지기는 무슨 호연지기, 에서는 영적인 소원은 없고 돌아다니며 놀고 먹고 마시고 여자들과 노닥거리느라고 바빴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에서의 스마트폰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가나안 여자들이랑 쓸 데 없는 채팅이 수북했고 또 이상한 사진도 많았습니다. 이럴수록 리브가는 야곱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야곱 생각에는 자기를 아무리 사랑해줘도 엄마가 자기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수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어떻게 하면 이 장자의 명분을 빼앗을 수 있을까 더욱 연구했습니다. 그는 법률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민법과 상법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형으로부터 일정한 거래에 의해 구두로라도 넘겨받으면 그 장자권이 자기에게 합법적으로 넘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통용되는 관습법에 따라 축복은 여하간 축복 받는 자의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의하면 야곱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축복의 전수자인 아버지가 자기보다 형 에서를 더 좋아하고  축복의 계승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를 극복하고자 형의 기질과 아버지 이삭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야곱은 장막에서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죽 쑤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맛있는 단팥죽 냄새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이때 에서는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동안 연구해 온 상법 *조 *항과 민법 *조 *항이 기초해 “그러면 이것 줄테니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나에게 팔아라”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에서가 말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법도 모르고 공부도 안하는 에서는 함부로 말한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이것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한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자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나갔습니다. 그래서 장자 명분에 관한 사실상 거래는 끝났습니다. 야곱은 어찌보면 아주 나쁜 녀석같습니다. 형이 배고프다면 그깐 팥죽 한그릇 줄 것이지 형의 약점을 이용해 그 팥죽으로 장자 명분을 뺐다니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야곱 나쁘다는 말은 하지 않고 에서가 틀려먹었다고 말합니다. 34b절을 보십시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여기서 ‘가볍게 여기다’는 말은 영어로 despise 로서 ‘업신여기다’, ‘경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우습게 봤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에서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신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힘 있고 명예와 영광이 있고, 영적인 권위도 있고 부도 넘치는 그런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께서 나를 따르며 내 말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내가 어떻게 복을 내리는지 보라 하시면서 그 축복의 샘플로 세운 가정입니다. 또한 이 축복은 그냥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그런 축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민민구원 역사에도 쓰임받는 그런 축복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장자가 되어 이런 축복을 물러받고 복되게 사는 것을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이 집의 장자의 명분이 아무리 배고프기로 정말 팥죽 한그릇에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우스운 것입니까? 업신여길만 한 것입니까? 에서의 이 행동을 가리켜 히브리서 12: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망령된 자라는 말은 godless 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풀어 이해한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이 자기 감정과 정욕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본성은 아주 죄악된 것입니다. 그는 축복이 좋아할 줄만 알았지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도 별로 하지 않고 또 그 축복을 관리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후에 에서의 결혼에서도 나타납니다. 26:34를 보면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가나안 헷 족속은 우상숭배하는 음란한 족속입니다. 하나님이 이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아브라함과 이삭을 훈련하시고 이들을 보호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신 축복을 어찌하든지 잘 계승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님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그 지역에 자기 마음에 드는 자매들과 결혼했습니다. 그것도 두 명의 아내를 가졌습니다. 35절을 보면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그들은 에서와 에서와 결혼한 두 가나안 여인을 말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독실한 신앙인들입니다. 이들이 왜 에서의 결혼을 보고 근심하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결혼은 인륜지 대사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단순히 인류지 대사 정도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아주 큰 일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의 샘으로 다가가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우습게 여기고 영적인 가치관도 없이 죄악된 족속들의 딸들과 결혼하고 함께 놀고 있다니 정말 얼마나 근심되겠습니까?

반면에 야곱은 어떻습니까? 앞에서 나온대로 그는 장자 명분을 형 에서에게서 사들였습니다. 그는 명분을 참 중요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분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어떻게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 기도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 리브가가 부르더니 아버지가 형을 축복하려고 하니 네가 형을 가장해서 들어가 복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에서가 나간 사이 이삭이 좋아하는 에서의 별미를 만들어 주고 또 에서같이 팔과 목에 염소털을 덮어 털많은 에서같이 위장하고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갈등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들키면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본전도 못찾는 꼴이 됩니다. 그러나 이때 리브가는 그런 저주는 자기가 대신 받겠다면서 야곱을 담대히 해서 아버지 장막에 들어가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이면 못할 짓이 없었습니다. 그는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의 형편을 이용해 형같이 가장하기도 하고 들어갔습ㅏ니다. 그리고는  이삭이 “이상하다 음성은 야곱인데” 하면서 이삭이 야곱의 목가 팔을 만져볼 때도 야곱은 거짓말하고 시치미를 뗏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방법이야 어떠하든 야곱은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직접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관습법 상에 그는 이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후에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는 자기가 없는 동안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알고 분해 소리내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받을 축복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분을 내며 아버지가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죽이겠다며 억울해 했습니다. 자기가 배고픈 것을 이용해 팥죽 한그릇에 장지 명분을 빼앗더니 이렇게 이번에는 위장을 해서 축복까지 가로채니 에서가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소리를 들은 리브가는 이삭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마가 있으리이까’ 리브가가 보니 에서의 아내들은 하는 짓이 한심했는가 봅니다. 하나님께 예배도 안드리고 기도도 안하고 툭하면 가나안 신을 섬기겠다며 나가고 집에 있을 때는 매일 뒹굴뒹굴거리며 발톱에 매니큐만 바르고 있고 도무지 일을 안했습니다. 시어머니 리브가가 그러지 말고 기도 좀 하고 집안 정리좀 하라면 대들고 살림도 안하고 비싼 스터벅스 커피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시켜 마시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하고 경건한 리브가는 이들을 보면 속이 터지고 세상 살맛을 잃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저런 여자랑 살고 이렇게 엉망이라니 .. 사는 게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야곱까지 가나안 헷 사람 여자와 결혼하면 내가 무슨 재미가 있겠냐며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 거기서 아내를 얻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말씀대로 믿음의 결혼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떠났습니다. 야곱이 분명히 아는 것 하나가 있는데 헷사람 하고 결혼하면 안된다는 것, 여자들이 아무리 예쁘고 날씬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데는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라고믿고 이에 순종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감정과 혈기로 따지자면 에서같이 살고 싶으나 냉정하게 이성으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할 때 야곱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인 능력이 많아도 에서같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명분을 함부로 여기고 이 앞에서 감정과 혈기대로 행할 때 그런 축복과 장자의 명분은 우리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가지 부족해도 하나님 축복이 가장 귀한 것인줄 이를 얻고자 애쓰고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명분을 귀하게 여기는 삶, 이것은 정말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입니다. 직장에서건 교회에서건, 혹은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모든 직분에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명분이 있습니다. 직업이나 직분을 calling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축복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자 우리 각 사람을 불러 택하여 주시는 것이란 뜻입니다. 직장에는 자기 직급에 따른 명분이 있습니다. 이때 이 명분을 귀하게 여기고 이에 합당하게 성실하게 일할 때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육사생도가 16살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것이 드러나 퇴교 당했습니다. 이제 형사 처벌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제 곧 졸업하면 양 어깨에 번쩍거리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군 지휘관으로서 참 명예로운 임관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육사 출신 장교는 특별히 알아주고 본인이 근면하게 군복무를 잘하면 때가 자기 모자와 양 어깨에 별을 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예와 존귀가 달린 이 육사생의 명분을 그깐 잠깐의 쾌락으로, 죄로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이 얼마나 망령된 짓입니까? 얼마 전 고대 의대생들이 MT를 갔다가 자기 여자 동급생이 잘 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성희롱을 했다가 이것이 고소되어 전부 다 퇴학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않았으면 평생 의사로 존경받고 그 부모님들도 자기 아들, 딸을 자랑하면서 큰소리치며 살았을 것입니다. 순간의 망령된 그 짓을 하며 히히덕 대던 그것에 인생의 명예와 존귀가 한 순간에 다 날라갔습니다. 한 유명한 농구 선수는 프로팀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차 하는 사이에 몇푼의 돈의 유혹에 걸려 승부조작을 하고 이것이 들켜 그만 형사 처벌을 받게 되었고 농구협회에서 영구제명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젊은 날 구슬 땀을 떨어뜨리며 뛰고 꿈을 이루고, 또 자기에게 영광과 명예를 가져다 준 농구 코트를 영원히 떠나게 된 것입니다. 돈 몇푼 아끼려고 세금 떼어먹다가 줄줄이 끌려가는 부자들도 많습니다. 창피하지 않습니까? 잠깐의 쾌락을 즐기려다가, 돈 조금 더 얻고자 하다가, 감정대로 하다가 인생 망치고 패가망신까지 갑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이나 교회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의 직분과 목자의 직분은 축복의 직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해도 함부로 여기고 버릴 때 하나님의 축복은 떠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되신 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명분을 따라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존귀를 얻어야합니다. 가장으로서의 이 명분을 귀하게 여기고 이에 따라 열심히 섬기고 수고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복되게 하시고 자녀들도 축복해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캠퍼스 목자로 부르셨다는 이 사실을 귀하게 여기고 때를 따라 피싱도 나가고 또 자기에게 양이 있던 없던 이 역사를 이루고자 때마도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역사를 섬겨나가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일입니까? 이것은 다 목자의 명분을 귀중하게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목자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멀리 심방도 가고 힘든 양들을 인내하고 섬기고 말씀을 가르쳐주고 기도해주는 것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 명분을 함부로 여기고 자기 양심을 속이고 하나님이 주신 이 명분을 안일과 게으름, 그리고 무책임으로 세상 것과 쾌락과 바꾼다면 이 얼마나 망령된 일입니까? 우리 모임은 목자라는 명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실제 양이 있던 없던 자기를 목자라고 부르지 않고 형제니, 자매니 하고 부르면 이를 아주 싫어하고 힘들어하기까지 하고 화내고 따지기까지 하는 것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정도가 아닙니다. 한번 목자는 영원한 목자입니다. 선교사로 나가서도 양은 영원한 양이라 때때로 안부를 묻고 기도해줍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자기가 목자니까! 목자의 명분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니까 평생을 목자같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각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맡겨진 일들을 온마음을 다해 섬겨나갈 때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새벽기도 메시지를 맡았을 때도 “야 말씀을 전하게 되었어!” 하면서 말씀의 종으로서의 명분을 내세워 며칠씩 고민하고 묵상하고 준비해 전할 때 하나님이 축복해주십니다. 아, 또 순서가 왔네 하면서 귀찮아 하고 에서같이 적당히 해보세요.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갖가지 명분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야곱처럼 골똘하며 이를 얻고자 애쓸 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기쁘하시며 축복해주십니다. 우리가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에서 같은 망령된 본성과 싸우며 야곱 같이 자나깨나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고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구속사에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은 후에 하늘 이슬 내리는 곳, 곧 기름진 가나안 땅에서 떠나서 척박하고 메마른 산지에서 살게 되었고 칼을 믿고 사는 에돔 족속이 되었습니다. 그 후손 중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헤롯대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으로 골똘하고 이를 얻고자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야곱은 복의 근원이 되어 그의 후손들은 야곱의 이름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고 거기서 만민의 구주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헤롯과 예수님, 에서와 야곱으로 대비되지 않습니까?

II. 이삭과 리브가

  이삭은 결혼할 때를 가만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에 믿음의 결혼을 잘 했습니다. 리브가도 믿음으로 결혼을 잘 해서 복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하자 20년 동안 기도하므로 때가 되자 리브가는 쌍둥이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기도하는 부부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흉년의 때에 그랄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랄에 거하므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거부가 되었고 그 지역에서 가장 권세 있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다들 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축복을 계승하는 문제에서 이들의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이삭은 축복을 자식에게 계승해주어야 할 때 하나님 앞에 신중하지 못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이삭은 나이 늙어 눈이 잘 보이지 않자 이제 자기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자식에게 축복을 넘겨주고자 축복기도를 해주고자 했습니다. 이삭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누구에게 하나님이 뜻이 있었는지, 누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갈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아들 에서가 좋았습니다. 그는 형 에서와는 달리 늘 장막에 틀어박혀 있는 야곱은 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툭 하면 라면만 잘 끓여 먹는 야곱보다는 가끔 사냥한 것으로 별미를 만들어 와서 입맛을 돋우어주는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가 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에서를 불러 나가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와라 그러면 내가 먹고 너를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했습니다. 맛있는 것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더 신나고 크게 축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축복할 때는 기도도 하고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하여야 하는데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인간적 사랑과 기분에 기초해서 축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분별력을 잃고 큰 실수를 할 순간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리브가는 이미 아이들을 잉태했을 때 기도하므로 이 아이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마침내 자기 집 가문의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둘째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삭과는 달리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이삭에게도 하나님의 뜻은 야곱에게 있다고 자주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서를 좋아하고 축복하고자 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했습니다. 리브가는 인간적이고 고집많은 이런 이삭을 늘 경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용감하게 나서서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일을 꾸몄습니다. 저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야곱에 그런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내게 돌리겠다며 야곱을 담대하게 하여 들어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말해도 안듣고 고집피우는 이삭이 끝까지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자 리브가는 이런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리브가는 가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같고 목표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라며 야곱을 이상하게 가르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이유에서는 인간적인 생각이나 감정의 의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시된 그런 식으로 이어져 가서는 안되고 또 그렇게 둘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축복의 계승 문제에 있어서 인본주의와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강한 인간의 법은 없습니다. 리브가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보호하고 그 뜻대로 이어가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종의 할 일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리브가를 세우고 쓰신 것입니다.

이삭은 후에 자신이 축복한 사람이 에서가 아니라 것을 알고 심히 떨었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 그를 만지면서 ‘음성은 야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하고 말했었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자기가 야곱을 축복한 것을 안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는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영어로 보면 trembled violently입니다. 이삭이 속았기 때문에 이렇게 떤 것일까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손상된 것 때문에 분노해서 이렇게 크게 떨었을까요? 축복이 자기가 의도한 사람에게 가지 않아서 억울한 마음이 지나쳐서 부르르 떤 것일까요?

이때 이삭은 자기가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뜻 두신 자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것입니다. 이삭은 평소에 리브가의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자기가 축복하면 축복한대로 에서가 이 축복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축복한 사람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평소의 리브가가 말한대로 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결국에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이 사실은 정말 놀랍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이때 자기 잘못을 크게 깨닫고 후에 다시 야곱을 또 한번 축복해주었습니다. 성경은 리브가가 이렇게 한 것에 대해 조금도 비판의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이를 믿음으로 지켜간 위대한 하나님의 여종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삭 이야기의 종결자는 바로 리브가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인본주의와 싸울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인간은 인간적입니다. 자기 생각이 늘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감정적이고 시기와 질투, 미움으로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함부로 여기고 제멋대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교회내에 인본적인 것들을 분별하고 싸우며 교회의 하나님의 역사를 지키고 섬겨나가는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주의 뜻을 알고 이렇게 리브가처럼 용감하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인본적 가치과 팽배한 우리 시대 속에 사람의 생각과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진리를 세워 가는 종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나올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구속 역사를 힘있게 섬기고 이어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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