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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순서 성탄특강 제 2 강
성경본문 마태복음 2:1-12
전한날짜 2006/12/17
ㆍ조회: 1516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세
2006년  성탄특강 제 2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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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 마태복음 2:1-12
▣ 요절 / 마태복음 2:11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세


2006년 성탄 제 2 강
경 배 하 세
■ 말씀 :마태복음 2:1-12
■ 요절 :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006년 성탄을 축하합니다. 금년 성탄이 아기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성탄 때에 Merry Christmas하고 인사하며 즐거운 성탄을 기원합니다. 그러면 성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어떻게 하면 성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동방박사들은 나신 유대인의 왕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고자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님을 찾았고 만났을 때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들의 구주요 그리스도로서 장차 우리를 다스려주신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왕인데 다스려주는 목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우리 역시 동방박사들과 같은 기쁨이 충만한 성탄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경배 받으실 아기 예수님 (1-5)

  헤롯왕 때에 낮선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좋은지 아주 기쁨에 차 얼굴로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오 탄일밤의 밝은 별, 명령하고 귀한 별, 아기 예수 계신 곳에 우리 인도하였라”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던 낙타에서 내려 사람들을 붙들고 열심히 물어보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지요. 우리들은 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인데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 ‘그분이 어디 계시지요’, ‘아 어디 계신지 말해주세요’ 그들은 얼마나 열심히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았는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소동이 났습니다. ‘ 뭐야, 동방박사들이 왕이 났다 그래, 그러니까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것 아니야’ ‘ 뭐, 아니 나는 메시야 맞을 준비도 안됐는데 뭐야 이거..’ ‘아, 나는 어제 죄지었는데 어떡하지 나 준비가 안되었어..’ ‘요즘 세상에 경배는 또 무슨 경배야, 저 동방박사들 정말 부담스럽네 .. ’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놀랐습니다.

메시야가 오셨다면 다같이 ‘아 드디어 주께서 우리를 돌아보셨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 우리 동방박사와 같이 아기왕을 찾아 경배합니다.’ 이래야하는데 그 시대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 몰두하며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고 또 자기 문제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태복음2,3장과 누가복음 1장을 기초해 볼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함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부한 자의 횡포가 크고 궁핍한 자들은 고통 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또 아비들이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세리나 군인들의 횡포, 심지어는 종교인들까지 세상 죄에 깊이 탐닉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에 사로잡혀 거룩을 미워하게 되었고 경배할 힘을 상실했습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시대에 동방박사들이 와서 ‘ 메시야가 태어났습니다. 자 그에게 경배하러 갑시다, 경배하러가요’하고 말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요?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절 주인공 아기 예수님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건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성탄카드에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나 눈덮여 있는 교회의 모습, 동방박사의 모습이 사라진지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죄로 더욱 완악해져있고 또 그 마음이 죄로 더 깊이 상처나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른 아파트값은 서민들의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고, 이번에는 반액짜리 아파트를 공급한다니까 사람을 놀리나 하고 반응합니다. 이야기들이 사람들 마음에 상처만 줍니다. 살기 힘들어 바다이야기에 한번 빠져 돈좀 벌고자했는데 수억대의 빚을 남긴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시대는 지치고 이제 꿈을 잃었습니다. 성탄이 좋은 것은 그나마 서로 만나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멋들어지게 노래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디고 함께 가서 죄짓습니다. 이런 때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는 참 어색합니다. 이런 시대 경배란 단어는 참 생뚱맞은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배란 무엇입니까? 경배는 worship 곧 예배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존재 앞에 자신의 존재를 모아 드리며 헌신하며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내면에 있는 신의식, 곧 하나님에 대한 의식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거룩한 존재 앞에 경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과 교감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담 이후 타락한 본성을 따라 마음이 완악해져 하나님께 도전하며 경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경배하기는 커녕 자신이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타락된 인간 본성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정확히 다 몰라도 막연하나마 교회 종소리를 듣고 불이 환하게 켜진 교회에 들어가 예배드리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높은 뜻을 가지시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만물 중에 가장 고귀하고 거룩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만큼 인간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으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에게는 하나님은 그 존재의 절대의미요 보람입니다. 인간 영혼에 경배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어떤 경우에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악으로 타락된 이후 하나님이 남겨두신 이 창조의 진리를 따라 진리를 탐구하고 영적 생활을 하면서 경배 드리고 싶어합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멀리 페르시아지방에서부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따라 와서 아기께 경배하고자 왔습니다. 경배는 그들의 가장 고귀하고 첫째되는 목적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산넘고 물건너 강도와 짐승의 위험이 있는 험한 길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그들은 대학도서관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어야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이 쾌락이었다면 그들은 라스베가스나 밤거리를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돈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좋은 머리로 증권가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 최대의 목표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경배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내면의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는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저 동방에서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분에게 경배 드리고 싶습니다.’하며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본 것입니다.

우리도 동방박사와 같이 우리 삶의 최우선의 가치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되길 기도합니다. 물론 경배한다고 거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경배는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나의 원래의 존재의미를 되찾아주고 잃어버린 거룩과 자존감을 찾고 내 영혼의 평강을 찾는 길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하고 마음에 힘을 얻고 또한 만물 가운데 참된 자기 위치를 찾고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예배에 나온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축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이 나를 세상과 부별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임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부터는 우리가 늦어도 예배 5분전에는 나와 조용히 개인기도하며 마음을 예비해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에 나올 때는, 경배할 때는 마음이 예비되어 있어야합니다. 짧은 시간 5분이지만 지난 한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일은 없는가, 있다면 이를 한번쯤은 하나님 앞에서 짚어보면서 짧게나마 회개의 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 예배시간을 통해 말씀과 찬송, 그리고 감사 속에서 주님을 만나길 소원해야겠습니다.

살펴보면 우리 모두는 동방박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예배 시간이 되면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 목자님들이 이 시대의 동방박사들 입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되 깨달음의 별빛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사랑하는 우리 목자님들이 정말 이 시대의 동방박사들입니다. 금년 동계학교에 우리 가운데 목자학교, 제자학교가 개설되었습니다. 여기에 각각 23명씩 총 43명이 입학하여 겨울방학 동안에 말씀 공부를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어학원, 자격증학원, 어학연수 등을 나가고 또 여행이나 스키도 타러가자며 모여 계획 짜느라고 바쁘게 지내는데 우리 형제들은 일단 먼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결단하여 여기에 방학 계획의 중심을 둡니다. 이들이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그 외에도 WBF,WEF 등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해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고독한 군중’(the lonly crowd)라는 책을 냈던 유명한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폐지해서 전 세계에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전후 미국 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함으로 그 시대 이해를 가져왔었는데 이런 공부가 인기를 잃고 사라져버립니다. 이런 학과 졸업해봐야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서 국문과를 폐지하려고 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역시 별로 쓸모없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인데 이런 것이 우리 시대의 흐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문학적 배경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인문학적 이해가 충분해야 상황을 보다 정확하고 깊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데 이런 것을 없애고 기술과 어학으로 가자니 정말 걱정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리 모임에서 이런 목자학교, 제자학교 등 수준 높은 공부를 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지혜와 진리의 보물창고입니다. 성경공부를 해서 세상에 뒤쳐진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인생이 망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며 영향력을 발휘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우리가운데 이렇게 많은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모임이 이시대 동방박사들의 학교가 되어 장차 이 사회를 이끌어갈 실력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탐구하며 높은 이상을 따라 살아가는 젊은 동방박사들이 많이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이는 참으로 죄악되고 진리를 외면하고 실리만 찾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 우리 모두가 무엇인가 진리탐구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다 함께 영육간의 성장하며 그안에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II. 이스라엘의 목자 아기 예수님(6)

  이제 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소동을 벌리자 이 소식은 헤롯에게 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헤롯도 ‘아니 내가 왕인데 또 누가 왕이야’ 하면서 신하들을 괴롭히며 궁중에서 소동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의 자리를 누군가 탐내는 것 같으면 자기 아들이라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내 ‘유대인의 왕’이란 말이 곧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물었습니다. “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 그러자 그들이 미가서 5:2를 짝 펴서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다같이 5,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스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작은 시골마을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왕이지만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을 다스리되 목자같이 다스리십니다. 목자는 왕과 같은 권세도 없고 영광도 없고 부자도 아닌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자는 그 당시 가장 비천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양이란 존재는 말 안 듣고 약한 것의 대명사입니다. 이런 양들 몇 마리를 돌보는 목자들을 사람들이 알아줄리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언제나 양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면서 양들의 연약함, 그 고집불통인 것을 잘 감당해줍니다. 목자는 양들을 알기 때문에 요구하기보다 그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며 겸손히 낮아져 섬기며 다만 그 양이 잘 자라나게 돌보아 줄 뿐입니다. 목자의 목적은 양들의 행복에 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이것은 바로 선지자 미가가 예언한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입니다. 또한 마태가 말하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의 모든 허물과 죄짐을 지고 다스려주며 우리를 행복하고 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왕이 되십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곡자 멘델스존의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사랑이야기 입니다.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의 이야기인데 그는 곱사등이었는데 한 여자를 짝사랑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 여인을 보고 구애하였습니다. 워낙 미인이었던 그녀가 그의 청을 받아 줄리 없습니다. 더욱이 그녀는 함부르그의 유명한 실업가의 딸이었습니다. 그런 곱사등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어느날 그는 용기를 내어 그 여인에게 사랑고백을 했습니다. “ 하나님이 내 등을 곱사등으로 만든 것은 특별한 것들을 지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지금부터 평생동안 당신의 한숨과 눈물, 당신의 걱정과 고독, 당신의 아픔과 가시를 다 내가 이 등에 짊어지겠습니다.” 대신 지겠다, 책임지겠다는 이 말에 그 처녀는 깊은 감동을 받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몇 달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인이고 부잣집 딸이라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남모르는 깊은 한숨과 눈물, 아픔과 가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고통을 짊어지고 평생 자기와 함께 해주겠다는 그 말이 그렇게 감동적인 것처럼 예수님이 목자로서 양된 우리와 평생, 영원히 그렇게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마을에서 부담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셨고 나사렛 출신이고 목수며 그리고 머리둘 곳 없는 삶을 사시며 우리 인생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과연 우리를 위해 그 고통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언덕에 오르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왕이신데 목자 같은 왕이십니다.

‘목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데로 목자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도와주고 살리는 데는 목자가 최적입니다. 죄로 병들고 고집 많고 삐뚤어지고 그 내면이 늘 불안하고 두려움에 가득찬 인간에게는 목자 같은 왕이 적격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왕권은 처참한 십자가에 숨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우리의 능력되심은 조그만 아기의 무력한 모습에 숨어 있으며 그의 한없이 자기 비하 속에 우리의 주님 되심이 숨어 있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 큰 도시가 아니라 가장 작은 베들레험에서, 왕관을 쓴 왕이 아니라 초라한 목자됨 속에, 그 뒤에 참된 유대인의 왕, 능력의 주가 되심이 숨이 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우리에게 겸손한 모습으로 오시며 우리의 참된 왕이요 목자가 되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오신 아기 예수님, 왕이시지만 목자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자기 의, 그리고 불의를 다 꺾어버리고 겸손히 나올 수 있길 기도합니다.

III. 큰 기쁨을 주시는 아기 예수님(7-12)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통해 메시아의 탄생 장소를 알자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가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박사들을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리스도를 제거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가는데 사라졌던 별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쳤습니다. “보라! 메시야 별이다!” 그 별이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이때 박사들의 기쁨이 어떠했습니까? 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때의 기쁨을 원어로 살펴보면 “가히 메가톤급의 기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메가톤 -이런 말은 원자 폭탄에 주로 쓰입니다. 메가톤급 원자폭탄이 한번 폭발했다하면 TNT 백만 배의 폭발력을 발생, 엄청난 버섯구름이 생기고 반경 수십 킬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쓰러지고 잿더미가 됩니다. 그러하듯 이때 동방박사들이 느끼는 이 기쁨은 그들 머리 위로 버섯구름이 생기고 반경 수킬로 미터 안에 있는 모든 걱정 근심이 다 떠나 버리는 기쁨입니다. 정말 이렇게 우리의 영혼을 감동하게하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할 만한 그런 기쁨이 세상에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어떤 때에 이렇게 기뻐합니까? 취직이 되었을 때입니까? 지난해 한 목자님이 취직을 한다고 수십 통의 이력서를 냈는데도 취직이 안 돼 고생하다가 마침내 취직되어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기쁨이 이럴까요? 잃어버렸던 돈을 찾은 기쁨이 이 정도 될까요? 아니면 결혼의 기쁨이 이 정도 되겠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기쁨도 세상걱정 근심, 잔재미 등을 싹 쓸어갈 정도의 메가톤 급의 기쁨은 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누리는 기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 기쁨은 메시아를 만나는 기쁨으로 사마리아 여인이 상처받고 찢긴 마음으로 예배의 대상을 찾다가 마침내 메시야를 만남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와 보라! 이는 메시야가 아니냐” 증거할 때 그의 영혼에 샘솟았던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기쁨은 고독한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지나가는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자 했는데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의 가슴을 벅차게 했던 바로 그 기쁨이었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그가 작곡하는 교회 음악들이 모두 기쁨에 차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곡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가슴을 뛰게 하시는데 내 음악이 기쁨에 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펜을 움직이시는데 내 펜이 기쁨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는데 나에게 슬픈 음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 많은 사람들이 기쁨이 돈에서 온다고 합니다. 어느 대학에서 한국인 의식 구조를 조사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뻐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주는 기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말이 사실이면 재벌 회장들은 항상 기뻐하며 춤추며 다녀야하겠네요. 어떤 사람은 이성을 만나면서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진급하고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하는데 이런 기쁨은 우리를 잠시 행복하게 해줄 뿐입니다.

성탄을 맞는 우리들의 기쁨은 어떠합니까? 지금 우리 마음이 우리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장 크게 기뻐하고 또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마다 절기따라 행사하면서 아, 그 예수님 좋으신 예수님 하는 정도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해야합니다. 아기 예수님 생각만 해도 메가톤급 기쁨이 나와야지 그러지 않다면 이는 예수님이 섭섭해 하실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나를 구하시고자 이 땅에 이렇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는데 내마음에 감동이 없다면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다시 아기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이 솟구쳐 오되 큰 기쁨과 기쁨 속에서 이 예수님을 감사찬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생각하며서 성탄절을 시작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뻐 이 은혜를 서로 선물하는 가운데 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데 나중에는 예수님 보다는 선물 자체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면서 성탄절에 예수님은 어디 갔는지 없고 선물만 남았습니다. 그 선물도 내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내가 받는 선물 중심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내가 받는 선물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기쁨과 섭섭함이 왔다 갔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무엇을 받을까 생각하면 성탄이 기쁜 성탄이 될 수 없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선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시카고의 한 교도소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습니다. 소장은 죄수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냐?”하고 물었습니다. 죄수들은 서로 무엇인가 속삭이더니 일제히 외쳤습니다. “대문을 열어주시오!”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갇혀 사는 죄수들에게 대문이 활짝 열리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 예수님은 이 땅에 무덤 문을 활짝 열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으로 인해 영혼이 구원받고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떠나 자유의 몸이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 천국도 가고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예수님을 조금만 묵상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가 이번 성탄에 동방박사의 메가톤급 기쁨을 누리고 주께 영광이 되는 성탄을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세상 신분들을 다 뒤로 하고 다만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조그만 아기지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앞에 그들의 가진 세상 지혜와 학식, 부귀, 명예, 그리고 존경, 세상 연륜 등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 아기 앞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모아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 되신 아기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아기 예수님께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시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선한 목자시라는 신앙고백이 담긴 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 고백과 함께 이에 합당한 가장 귀중한 것은 예수님께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님께 대한 경배와 기쁨을 배우고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경배하는 성탄, 아기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으로 왕으로 모시고 이로 인하여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을 누리는 성탄을 맞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참 기쁨이 사라진 이 시대 속에 말씀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성탄을 통해 우리 마음의 온갖 어두운 생각들이 다 떠나고 예수님 한분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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