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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허연 지음)를 읽고
(허연 지음, 생각정거장, 2018년 출판, 262쪽) 내가 근무하는 곳 휴게실에는 책들이 꽂혀 있는데 거기에서 책들을 구경하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작가는 현재 매일경제신문사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과 산문집도 몇 권 냈고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이 책은 매일경제신문 ‘BOOK’ 섹션에 연재했던 ‘허연의 책과 지성’에 쓴 글을 모은 것인데 저자가 읽은 여러 책들과 그 책을 지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자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세상에는 책으로부터 구원받은 수많은 소년 사르트르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가난했고, 몸이 약했으며, 턱없이 예민했고, 너무나 많은 걸 기억하는 몽상가였던 나는 제도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책이었다. 집안 창고에서 발견한 1950년대판 세로쓰기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나를 발견했고,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는 법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골방을 비추던 흐릿한 알전구 밑에서 누런 갱지에 인쇄된 활자를 보며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책을 통해 내 자신을 이해했고, 책을 통해 사랑을 했고, 책을 통해 초월을 경험했고, 책을 통해 밥을 먹었다. 책은 내게 계시였으며 친구였고, 또 무기였다. 나는 늘 책과 함께 있었다. 휴가병이었던 시절 귀대하는 시골 버스 안에서도, 어머니를 묻고 돌아온 날 창가에서도, 사랑의 환희에 들떠 있을 때도, 몸져누웠던 병원에서도, 수천 년 전에 세워진 피라미드 앞에서도 나는 늘 책과 함께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늘 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책이라는 문명의 입석에게 나는 유일하게 뭔가를 배웠으며, 유일하게 패배했고, 유일하게 고개를 숙였다.” 책을 사랑하는 나는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57명의 작가와 그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우신예찬>을 썼던 에라스뮈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다.(p.176-179) ■ 폭력과 광기에 맞섰던 인문주의자-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1466-1536) 네덜란드 태생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그는 종교개혁 과정에서 중용을 내세웠다. 당대 최고의 학식을 지닌 에라스뮈스가 자기편이 되길 바랐던 루터파와 교황청은 그가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자 그에게 적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고 나섰던 초기에는 에라스뮈스도 루터를 지지한다. 형식화되고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그 역시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신예찬>이라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교황과 군주를 풍자하고 비판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에라스뮈스는 대주교에게 루터를 두둔하는 진정서를 써서 보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라스뮈스는 루터와 뜻을 달리하게 된다. 그는 루터파에 자제를 촉구한다. 평화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던 그는 영성을 앞에 놓고 교황파와 루터파라는 획일화된 입장만을 가지고 싸우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광기에 몸서리를쳤다. 그는 이성과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개혁을 꿈꾸었다. 하지만 관용과 타협을 외친 에라스뮈스의 목소리는 양 진영이 내지른 구호와 함성에 묻혀버렸다. 결국 교황청과 루터파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에라스뮈스는 양쪽 모두로부터 패배자이자 방관자로 치부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흘러 이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20세기가 도래했고, 슈테판 츠바이크나 하위징아 같은 유명 저술가들이 에라스뮈스 다시 보기를 시도한다.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다. “격정은 언젠가 스스로 지쳐 사라진다. 하지만 이성은 스스로 기다릴 줄 알며 견뎌낼 줄 안다. 다른 것들이 흥분해 소란을 피울 때 이성은 침묵해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성의 시대는 온다. 그 시대는 온다.” 에라스뮈스는 이성이라는 창을 통해 근대가 어디에 있음을 알려준 선구자였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용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의 싹을 틔웠다. 유럽 통합을 꿈꾼 최초의 세계주의자였으며, 특정 인종이나 국가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은 숭고한 평등주의자이기도 했다. 에라스뮈스식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에라스뮈스식 관용과 신중함은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인문주의자들이 품기 시작한 ‘지적인 의문’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작된다. 역사가들이 “종교개혁은 에라스뮈스가 낳은 알을 루터가 부화시킨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식으로 한 작가당 평균 4페이지에 걸쳐서 소개를 하는데 읽다보면 그가 소개하는 책들을 읽어 싶어진다. 실제로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을 구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읽을 책을 고를 때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고 책을 선정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 책을 소개하는 책이 많은 도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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