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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틈만 나면'을 읽고
(길벗어린이, 이순옥, 2023년 9월 발행, 19,500원) 집 근처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왔는데 그중에 이 책이 있었다. 제목은 ‘틈만 나면’.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틈만 나면 뭘 한다는걸까? 라는 의문을 가졌을뿐이다. 책의 네 페이지까지 보았을 때 이 책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이 가면서 깜깜한 밤에 전구불이 반짝하고 켜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궁금증이 금방 풀린데에 대한 작은 즐거움과 함께 ‘우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하는 놀라움을 동시에 느낀 것이다. 첫 페이지에 있었던 글자는 딱 네 글자, ‘틈만 나면’ 이었고, 세 번째 페이지에 있었던 글자는 여섯 글자, ‘작은 틈만 나면’ 이었다. 글자가 적힌 페이지 옆 페이지에는 그림이 있는데 ‘틈만 나면’이라는 글자 옆에는 갈라진 땅의 틈에서 점만한 초록색 무언가가 보이는 그림이 있고, ‘작은 틈만 나면’이라는 글자 옆에는 맨홀 뚜껑 틈 사이에 작고 여린 초록풀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쯤되면 다들 짐작했으리라. 틈만 나면, 그 작은 틈만 나면 풀이 자란다는거다. 나는 길을 가다가 바닥에 있는 보도블럭 사이에서, 혹은 담벼락의 돌들 사이 그 작은 틈에서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늘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었다. (거기 무슨 흙이 있다고 초록 생명이 터를 잡고 사는지, 비실비실하지도 않고 쑥쑥 크고 잘만 사는지, 거기에 흙이 있는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날아와 씨앗이 자리를 잡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을 글로 쓰거나 작품화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어떤 감수성 예민하고 영혼이 맑은 작가가 이런 상황을 멋진 동화로 만들었다. 사실 글자가 몇 개 없고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한 편의 ‘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글자들을 다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각각의 글귀마다 그 옆에 각기 다른 틈에서 피어나는 식물들의 그림이 곁들여 그려져 있는데 글에 어울리는 그림들 덕분에 마음에 울려오는 감동이 더 크게 느껴졌다. 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나는 태어날 거야. 쑥쑥 자랄 거야. 멋진 곳이 아니어도 좋아. 조금 답답해도 상관없어. 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나는 활짝 피어날 수 있어. 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때.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나는 꿈을 꿀 수 있어. 길고 긴 외로움도 오랜 기다림도 괜찮아, 나는. 나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틈만 나면 멀리 나가 볼 거야. 높이 올라볼 거야. 한 번은, 넘어볼 거야. 나만의 춤을 출 수 있다면. 작지만 힘이 있는 나는 여리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틈 만 나 면. ------------------------------------------------------------------------------ 책 뒷페이지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태어나는 풀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애잔하고 때론 위로를 받습니다. 꼭 우리 삶의 몸짓과 닮아 보여 한참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나는 풀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화분에 정갈하게 심겨진 식물보다, 거리의 미관을 위해 일부러 심어놓은 키 큰 나무, 색색의 예쁜 꽃보다 콘크리트 사이 그 작은 틈에서 피어나는 네가 더 아름다워!” 이 책을 읽고 나니 길을 가면서 자꾸 땅만 쳐다보게 된다. 작은 틈새에 난 초록풀들을 찾아보려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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