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mk
ㆍ작성일	2019-11-04 (월)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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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 -양희은
1975년 10월 어느 날 나는 증평 신병훈련소에 들어가 있었다. 6월 첫번째 강제입영 때는 건강이 안좋아 퇴소했었다. 그때 조치원 국군통합병원 신검 정밀검사에서 결핵이 심해 병종 판결를 받아 병역면제를 받았었다. 이제 군대를 안가게 되는구나 하며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그해 가을에 다시 입영장이 나온 것이다. 참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죽게 되더라도 들어가야지! 그때도 여전히 병을 앓고 있던 나는 입영한 다음날 아침 다시 정밀신검을 받으러 또 조치원 국군통합병원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병영 어느 훈련병 막사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직 정식 입소를 안 한 때라 잠시 여유가 있었는지 누군가가 한 훈련병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나보다.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 당시 훈련소 곳곳에는 ''무찌르자 북괴군', '쳐부수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이룩하자 유신과업' 구호가 써 있었다. 그리고 다들 손을 들어 이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마지막 구호는 마음을 암울께 한다. 나는 지금 '이룩하자 유신과업'이 싫어 데모하다 잡혀왔는데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하루에도 몇번씩 외쳐야할 구호라니! 존재의 비애가 느껴졌다. '아름다운 것들' 이 노래를 들으니 그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그날 햇살 비치는 병영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날 나는 병원에서 다시 병종 판결을 받고 귀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내가 있던 막사의 내무반장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알고 나를 내무반 귀퉁이에 있는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데모하다가 잡혀온 것을 알고는 '너는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말을 해준다. 그리고 자기의 멍들고 깨어진 손톱과 발톱을 보여주면서 자기는 3선개헌 반대하다 군에 끌려왔는데 그동안 방첩대에 끌려다니며 뻰찌로 이런 고문을 당하고 아직도 제대를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끌려갔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고 말해왔더니 이제 제대시켜준다고 했단다. 그래서 병장 계급을 달고 내무반장을 하고 있었다. 3선개헌반대는 1969년에 있던 일이었다. 그러면 그는 벌써 6년째 군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하고 싶은데 멍들고 깨어진 손톱과 발톱, 그리고 6년,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 이듬해 5월에 다시 신검 영장을 받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마뜩하니 느껴졌었다. 이게 언제나 끝나려나!
(친구와 페북 대화에서 '증평'이라는 말이 나와 당시 입영했었던 증평훈련소가 생각나 몇자 적어보았다.) 2019 0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