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단편소설 '가학성 훈련'을 읽고
<가학성 훈련>은 문학과 지성사 출판사에서 나온 이청춘 전집 4권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한 편의 단편만 읽고도 가히 '이청준은 천재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소재, 줄거리, 구성, 성격, 주제 등이 매우 훌륭하다고 느꼈다.
운전기사인 현수는 아내와 함께 네 살난 딸아이(선희)를 키우며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주인 내외에게도 선희랑 비슷한 또래(세 살)의 딸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선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노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주인 내외는 과자 같은 것으로 선희를 꼬여내서 선희가 머리를 끄들리도록 한다. 현수와 아내는 그런 딸아이가 딱하기도 하지만 셋방살이라 주인 눈치가 보여서 말을 못 한다. 머리가 벌겋게 붓도록 머리를 끄들리면서도 용케 잘 참아내는 딸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러다 현수는 옛날에 아버지가 송아지에게 굴레를 씌우던 일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송아지에게 헐겁지 않도록 굴레를 단단히 씌우고 매질을 해 가며 쟁기질에 길을 들이셨다. 현수는 그러한 혹독한 훈련이 송아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굴레가 헐거우면 송아지에게도 괴롭고 쟁기질을 잘 하지 못 하면 그 송아지는 바로 도살장행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피고용인으로서 사장이 씌운 굴레를 쓰고 살아가는 처지임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굴레는 애매하게 헐거워서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다고 느낀다. 현수는 어쩌면 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딸 아이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훈련받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수는 매번 머리를 끄들리기만 하는 딸에게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며 머리를 끄들도록 한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나는데 마지막 이 부분이 찡했다. 인생의 굴레가 더 단단할수록 오히려 행복하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일깨워주는 애잔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막힌 곳 하나 없이 물 흐르듯 진행이 된다. 3대에 걸쳐 굴레 이야기를 엮은 것도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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