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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를 읽고
(출판사-신원문화사/곽복록 옮김)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앞서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서다. 에리히 프롬은 극단적인 자기 중심주의에 빠진 소유적 실존의 인간으로서 입센의 작품 속 주인공인 ‘페르귄트’를 예로 들었다. 이에 흥미가 생겨 입센의 ‘페르귄트’를 읽어보게 되었다. 입센은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작품 ‘인형의 집’의 저자이기도 하다. 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클래식인 그리그의 ‘페르귄트’가 입센의 작품 ‘페르귄트’를 무대에 올릴 반주곡으로 작곡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극과 음악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아무래도 그리그의 페르귄트가 입센의 페르귄트보다 더 유명해진 것 같다. (페르귄트 모음곡에는 솔베이지의 노래, 아침의 기분, 산왕의 궁전에서, 아니트라의 춤 등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했던가. 원작 페르귄트를 읽고 나서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들으니 머릿 속에 장면이 그려지면서 음악이 더 아름답고 깊이 있게 느껴졌다. 입센의 ‘페르귄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페르귄트는 몰락한 부농의 외아들이다. 과부가 된 어머니 오제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페르귄트는 게으르고 방탕하며 허황된 꿈만 꾸어 어머니의 속을 썩인다. 페르귄트는 결혼식에서 신부를 납치하여 도망갔다가 다시 신부를 버려두고 혼자 가버리기도 한다. 이 범죄 때문에 페르귄트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다. 이 작품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데 페르귄트는 트롤 족속인 산속 마왕의 딸을 유혹했다가 결혼으로 구속되려하자 도망쳐나오기도 한다. 페르귄트는 결혼식장에서 만난 지고지순한 여인 솔베이지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마저도 내버려 두고 훌쩍 떠나버린다. 페르귄트에게 오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도 인연을 끊은 솔베이지는 언제가 되었든 그를 기다리겠다고 하며 산속 오두막에서 홀로 지낸다. 어머니에게로 돌아간 그 날 페르귄트는 어머니의 임종 순간을 지켜보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페르귄트는 슬퍼하기보다는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로 어머니 앞에서 한바탕 떠든다. 어머니는 결국 죽고 페르귄트는 방랑길에 오른다. 그 뒤 페르귄트는 세계각지를 떠돌며 노예상인, 무역업 등을 해서 돈을 많이 번다. 아라비아에서는 예언자 행세를 하고 추장의 딸(아니트라)을 유혹하기도 하고 이집트에서는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한다. 그 뒤 미국에서 금광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페르귄트는 백발노인이 되어 배를 타고 귀향하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가진 것을 대부분 잃고 겨우 살아남아 고향에 도착한다. 숲 속 오두막에서 솔베이지가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잘 못 살아왔던 인생을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단추공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가 나타나 페르귄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단추공은 페르귄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인생의 정의를 헛되게 했다는 죄목으로 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고 페르귄트는 무슨 소리냐며 자신은 지금껏 페르로서 자기자신으로서 살아왔다며 항변한다. 페르귄트의 자기변호가 단추공(저승사자)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페르귄트는 그제서야 단추공에게 “대체 ‘자기 자신이 되어라’는 무슨 뜻이지요?” 라고 묻는다. 이에 단추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잘 모르겠죠. 이렇게 말하면 되겠군요. 모든 일은 주인의 의도에 철저히 따를 것” 그제서야 페르귄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하지만 단추공은 페르를 데려오라는 주인의 명령서를 내밀며 빨리 가자며 재촉한다. 결국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솔베이지가 페르귄트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하며 극은 끝난다. 솔직히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되고 작품에서 예술성을 못 느꼈는데 두 번째 읽었을 때는 큰 감동이 밀려왔다. 방탕한 몽상가인 페르귄트를 변함없이 사랑하며 수십 년을 기다렸던 솔베이지의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 아들을 욕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들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늘 노심초사했던 어머니 오제의 사랑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그의 곡 중 <오제의 죽음>과 <솔베이지의 노래>는 이를 정말 잘 표현했는데 곡이 애절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이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작품에서 명확하게 답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사실 생각할 여지는 없었는데 단추공의 입을 통해 작가가 말했듯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모든 일을 주인의 의도에 따르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신앙 안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페르귄트는 평생을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페르귄트와 같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그 결과 인생의 중요한 것을 다 놓쳐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말은 참 역설적이다.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주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환상적이고 기묘한 인물과 줄거리를 통해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하마터면 이 작품 속에 있는 보석을 발견하지 못 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두 번 읽는 노력을 통해 결국 이 작품에서 보물을 캐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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