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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박태원 소설/ 이상 그림/ 발행처: 소전서가/2023년 10월 20일 초판 1쇄/259쪽/17,000원) 갑자기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 것처럼 갑자기 어떤 종류의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19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 작가가 쓴 근대소설이 읽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떤 책을 읽을지 물색을 하던 중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최근에 예쁜 표지를 입고 나온걸 발견하였다. 영어 속담에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속담과 달리 나는 책을 고를 때 매력적인 표지를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 소전서가에서 나온 이 책은 표지가 정말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작가 ‘이상’이 그린 그림이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이상의 그림이 이 책의 각 장마다 수록되어 있다. 이쯤되면 책을 안 살 수가 없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30회에 걸쳐 조선중앙일보 일간지에 삽화와 함께 연재되었다. 지금까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이상의 삽화가 실려 있는게 없다. 이번에 ‘소전서가’라는 곳에서 출판한 책에만 1930년대에 신문에 실렸을 때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이상의 삽화가 실려 있다. 학창시절에 읽었을때는 이 작품이 그리 인상깊게 다가오지 않았었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작품이 정말 재밌고 작중인물의 심경에 깊이 공감되었다. 문체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게 매우 아름다웠다.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배경은 일제강점기시대, 경성. 장가도 안가고 직업도 없이 간간이 글을 쓰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26살 청년 구보가 어느날 정오쯤 집을 나선 뒤 행복을 찾아 하릴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것들, 생각한 것들,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이런 것들을 기록한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그가 산책한 동네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 동대문, 청량리, 장충단, 성북동, 종로, 광화문..이런곳이어서 작품을 읽을 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구보는 계속 외롭다, 고독하다, 벗이 있었으면 좋겠다, 난 어디로 가야하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말하며 여기저기 배회한다. 29쪽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한 손의 공책과-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33쪽 구보는, 차장대 가까운 한구석에 가 서서, 자기는 대체, 이 동대문행 차를 어디까지 타고 가야 할 것인가를, 대체, 어느 곳에 행복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하루종일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며 행복을 찾고 싶어했던 구보는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가며 이제 ‘생활’을 가지겠다고 결심한다. 184쪽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평안히 가 주무시오. 벗이 또 한 번 말했다. 구보는 비로소 그를 돌아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떡하였다. 내일 밤에 또 만납시다. 그러나,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내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좋은 소설을 쓰시오.」 벗은 진정으로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번 드는 순사가 모멸을 가져 그를 훑어보았어도,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 배경이 일제치하이고 작중인물이 가난한 작가라서 소설이 음울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의식의 흐름의 기법에 따라서 표현을 했는데 문체나 분위기에서 위트와 유머가 많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카페 안에 앉아있던 구보는 갑자기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의상분일증, 언어도착증, 과대망상증, 추외언어증, 여자음란증, 지리멸렬증, 질투망상증, 남자음란증, 병적기행증, 병적허언기편증, 병적부덕증, 병적낭비증... 그러다가 문득 구보는 그러한 것에 흥미를 느끼려는 자기가 어떤 정신병자 환자임에 틀림없다라고 깨닫고 유쾌하게 웃는다. 박태원은 한국전쟁 때 월북한 작가라서 분단 이후 그의 작품은 금기시되었으나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와 함께 다시 국내 문단과 독자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외손자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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