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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읽고
(문예출판사) 만남과 대화의 철학으로 유명한 마르틴 부버의 불후의 명저, ‘나와 너’를 만나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세상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은 많지만 한 사람의 가치관에 혁명을 일으키는 책은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과의 만남은 나에게 일대 혁명과도 같았다. 모든 만남의 질이 똑같지 않듯이 책과의 만남도 내가 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책이 나에게 그 자신을 보여주는 정도는 다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주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테지만 세부적으로는 어려운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 책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일단, 저자인 마르틴 부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그것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버는 187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자이다. 유대교 계몽정신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04년 빈 대학에서 <개체화 문제의 역사적 계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문서 운동과 교육 운동에 힘썼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현대 독일어로 번역했다. 불후의 명저 <나와 너>를 출간한 1923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로 초빙받아 유대교 철학을 비롯하여 윤리학 및 종교사를 강의하게 되는데 1934년 나치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1936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1951년까지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있으면서 새로운 종교적, 문화적 시온주의 운동을 펼쳤다. 1951년 히브리 대학에서 은퇴하고 1949년 자신이 설립한 예루살렘 성인교육원 원장이 되었다. 미국으로 몇 차례 강연 여행을 했으며 1965년 예루살렘에서 87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이로 보건대 부버의 사상은 유대교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근원어’, 2부는 ‘사람의 세계’, 3부는 ‘영원한 너’로 제목이 붙어 있다. 먼저, 제 1부에서는 사람의 태도와 말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의 이중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이 책의 첫 부분이다. ‘세계는 사람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의 이중성에 따라서 이중적이다. 근원어는 낱개의 말이 아니고 짝말이다. 근원어의 하나는 ‘나-너’라는 짝말이다. 또 하나의 근원어는 ‘나-그것’이라는 짝말이다. 이 때에 ‘그것’이라는 말을 ‘그’ 또는 ‘그 여자’라는 말로 바꿔 넣더라도 근원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의 ‘나’도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근원어 ‘나-너’의 ‘나’는 근원어 ‘나-그것’의 ‘나’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근원어는 그들 바깥에 존재하고 있을 어떤 것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원어가 말해짐으로써 하나의 존재가 세워지는 것이다. 근원어는 존재를 기울여 말해진다. 근원어 ‘나-너’는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할 수 있다. 근원어 ‘나-그것’은 결코 온 존재를 기울여서 말할 수 없다. ‘나’, 그 자체란 없으며 오직 근원어 ‘나-너’의 ‘나’와 근원어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 첫눈에 어떤 사람에게 반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책에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의 첫 문장,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이미 이 책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세계는 ‘나-너’의 세계와 ‘나-그것’의 두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나-그것’의 관계는 인간의 객체적인 경험(지식 세계의 것)이요, ‘나-너’의 관계는 인간의 주체적인 체험(인격 세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그것’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은 그것, 즉 비인격적 존재로 나타나게 되며 결국 나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지만 ‘나-너’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은 여러 대상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고 여러 특질들로 이루어진 대상도 아니며 수단으로 이용되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보면, ‘나-너’의 관계는 선한 것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악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그것’의 관계를 지양하고 ‘나-너’의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결론내기 쉽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물질은 악하기도 하고 악하지 않기도 하듯이 근원어 ‘나-그것’도 마찬가지다. 물질이 악하다면 우리는 모든 물질을 없애고 멀리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물질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만 지나친 물질주의는 온갖 악을 만들어내듯이 ‘나-그것’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그것’의 관계는 다른 사람을 하나의 사물과 같이 다루어 수단으로 삼거나 하는 저차원에서부터 과학적 관찰, 지식의 획득, 종교적 교리의 설정이나 철학적 인식 따위에 이르는 극히 다양한 태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나-그것’이 가지는 의의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사람은 ‘나-너’의 관계에서만은 살 수 없으며, ‘그것’과의 관계는 극복될 수 없고 극복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부버는 “사람은 ‘그것’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너’에 있어서 모든 ‘너’는 언젠가는 ‘그것’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 인간의 슬픈 숙명이 있다고 말하며 우리는 영원한 ‘너’이면서 결코 ‘그것’이 되지 않는 ‘너’를 만나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신(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과 ‘나-그것’이 아닌 ‘나-너’의 관계가 될 때 다른 사람들과도 ‘나-너’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물질 문명의 발달 속에서 이루어진 비인간화, 인간소외, 원자화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현대인들에게 만남의 철학자, 관계의 철학자, 대화의 철학자라고 하는 부버의 사상이 주는 의의는 크고도 소중하다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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