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고
(출판사 – 민음사)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파리를 신으로 떠받들고 제물을 바쳤다. 파리는 병을 옮기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떠받드는 파리신을 히브리어로 바알제붑(Baal-Zebub. 헬라어로는 Beelzebub)이라고 하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Lord of flies가 되고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파리대왕’이다. 마태복음 12장에도 바알제붑이란 단어가 나온다. 예수님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Beelzebub)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 영어 번역은 ‘Beelzebub, the prince of demons’다. 즉, ‘바알제붑(바알세불)’은 ‘파리대왕’이고 ‘파리대왕’은 귀신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이처럼 고도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뭔가 악마적인 행위가 펼쳐질 거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핵 전쟁이 벌어져 원자탄이 터지는 위기 상황에서 한 떼의 영국 소년들을 비행기로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작전이 수행된다. 그런데 적군의 요격을 받고 비행기는 격추되고 무인도에 떨어지고 만다. 소년들은 다행히 비행기에서 탈출하지만 어른은 아무도 없다. 소년들의 나이는 만 다섯 살에서 열 두 살에 이른다. 랠프를 대장으로 뽑은 뒤 섬 생활의 규칙을 정하고 역할을 정하여 뭔가 잘 돌아가는 것 같더니 이내 의견 차이가 생기고 잭을 따르는 파와 랠프를 따르는 파로 나뉘게 된다. 랠프는 섬에서 구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배에 알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잭은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멧돼지 사냥에 열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랠프는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로, 잭은 권위에 도전하는 도덕성을 상실한 야만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눈앞에 멧돼지를 두고도 창으로 찌르는 게 망설여져 멧돼지를 놓쳤던 소년들이 차츰 변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아주 잔인하게 멧돼지를 죽인다. 그들은 죽이는 행위에서 쾌감을 느끼고 피의 축제에 도취된다. 그리고 폭력의 대상은 짐승에게서 인간에게로 자연스럽게 옮겨가 친구도 거리낌 없이 마구 죽인다. 그들은 멧돼지 머리를 따로 떼어내 막대기에 걸어놓는데 거기에 파리가 많이 꼬인다. 사이먼은 혼자 멧돼지 머리를 보다가 환각상태에 빠지는데 멧돼지 머리가 파리대왕(귀신의 왕)이 되어 사이먼에게 말을 한다.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악마가 소년들(인간)의 일부분이며 그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소년들(인간)이 악하게 되어버린 것은 악마가 그들을 조종하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악의 본성을 죽이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무인도라는 문명과 동떨어진 장소를 설정해 놓은 것을 볼 때 인간이 과연 아무런 제약이 없는 곳에서도 선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대개의 소설에서 소년은 미숙하긴 하지만 나쁜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더 배워가야 할 존재, 성장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 소설에서는 소년이 악한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설정되었다. 그만큼 인간이 악하다는 것을 더 충격적으로 보여주려고 그랬을까? 그랬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다.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인간은 다 악하다는 것인가? 잭 일파는 랠프 일파의 소년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가고 마지막 남은 적인 랠프를 죽이기 위해 랠프가 숨어 있는 곳 주위에 불을 지르는데 지나가는 배에서 연기를 보고 소년들을 구해주게 된다. 어른을 보고서야 소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죽은 친구를 생각하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생각하며 흐느껴 우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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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북웜
종된겸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