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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토마스 만 중단편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수록되어 있음) 이 소설은 전 대법관 김영란씨가 쓴 책인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에 소개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토마스 만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작가들의 글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래서 토마스 만이 어떤 작가일까 늘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토니오 크뢰거’라는 중편소설로 이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가지는 정신적인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소년 토니오 크뢰거는 친구인 한스 한젠을 사랑하면서도 부러워한다. 한스는 잘생겼고 우등생이다. 승마와 수영도 잘 하며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다. 진지하다거나 사색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반면 토니오는 남몰래 시를 짓고 소설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학생이다. 토니오는 자신이 읽은 소설을 한스와 나누고 싶어하는데 한스가 관심없어 하자 상처를 받는다.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배를 타고 신나게 놀 때 토니오는 모래사장에 누워 변화하는 자연을 말없이 응시한다. 토니오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의 행복한 삶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토니오는 금발의 잉에보르크를 좋아하는데 잉에보르크 또한 한스와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토니오는 그녀를 동경하지만 그녀는 토니오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 토니오는 자신이 좀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사람들 속에 섞일 수가 없고 행복하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 하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는 그는 이것을 ‘인식의 저주’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어서 유명한 작가가 된 토니오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한스와 잉에보르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한다. <내가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한 번도 없었어! 한스, 너도, 금발의 잉에, 너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어! 그래, 내가 작품을 쓴 것은 바로 너희들 때문이었지. 그리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몰래 주위를 둘러보면서 너희들이 있는지 살펴보았지...한스 한젠, 넌 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 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 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거우며 소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신과 세상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자라나, 아무런 악의가 없고 행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구나.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그러나 결국 토니오 크뢰거는 한낱 문사를 작가로 만들어 주는 것은 시민적인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저주스런 자신의 운명과 화해한다. 즉, 예술가는 시민과 동떨어지고 고독하고 소외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진정한 예술가는 시민적인 것, 단순하고 유쾌하고 진실하고 예의바른 그런 평범한 삶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토니오 크뢰거에게 공감이 많이 갔다. 그가 하는 생각들, 그가 하는 고민들이 너무나 이해가 잘 되었다. 내가 토니오 크뢰거 부류의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토니오 크뢰거 부류의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롭다. 친구를 갖기가 힘들다. 밝게 웃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부러워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인간을 토니오 부류의 사람과 한스 부류의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만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하고 고민을 해 본다면 어느 쪽이 더 좋을까?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데 고독한 사람과 평범한데 행복한 사람 중에서 말이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똑같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질과 재능, 소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남들과는 다른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괴로워하던 토니오가 결국엔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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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북웜
종된겸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