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신앙고백
순교의 가치!!!
UBF | 기도요청 | 주일말씀 | 게 시 판 | 안암까페 | 페이스북
UBF해외|한국|모바일
양마가선교사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UBF공식까페
 
UBF > 안암 > 컬럼 > 지성과 영성(이창무 목자님)
작성자 이창무
작성일 2009-04-15 (수) 17:47
홈페이지 http://changmoo.net
ㆍ추천: 0  ㆍ조회: 1853      
IP: 121.xxx.176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침묵하라
명색이 지성과 영성 칼럼인데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침묵하라" 오스트리아의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말입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곳이란 형이상학의 영역을 말합니다. 형이상학이란 현상 너머에 있는 본질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자연 과학은 현상계를 다루는 형이하학이 되는 것이고 철학이나 신학과 같은 학문은 형이상학이 되는 것입니다.

서양 철학은 사실 상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어 그의 사상에 의해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플라톤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는 이데아계를 구분하였습니다. 현상계는 영원하지도 참되지도 않은 세계이고 이데아계야말로 영원하고 참된 세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플라톤의 주장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물질은 그 자체로 악하고 오직 영혼만이 선하다고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플라톤이 기술한 현상계와 이데아계와 정확하게 일대일로 대비가 됩니다. 희랍철학의 이런 영육 이원론은 이후 서양 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이데아계 즉 형이상학적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논하는 것을 철학자의 임무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발현 이후 자연 과학이 발전하면서 형이상학에 조금씩 균열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은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에 의해 증명될 수 없는 것은 과학적으로 무가치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과학적 세계관으로 볼 때 형이상학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명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무의미하게 됩니다. 헤겔 시대 정점에 이르렀던 형이상학은 이후 점점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에는 일단의 언어 철학자들에 의해 철퇴를 맞게 됩니다. 그 언어 철학자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곳에서는 침묵하라" 형이상학은 언어 철학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곳입니다. 아니 말할 수는 있지만 아무 의미 없는 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증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트겐슈타인은 차라리 침묵하라고 합니다. 비트슈타인에게 이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고 얼마나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느냐에 진리 탐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트게슈타인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사람이 있으니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입니다. 그는 인간의 언어 자체가 전혀 진리를 담을 그릇이 될 수 없다는 언어 회의주의자입니다. 그는 해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인간의 언어가 담을 수 있는 진실성이나 소통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고 허물어 버린 사람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곳에서는 침묵하라" 저는 이것을 하나님을 부정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답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면 유한한 인간이 무슨 재주로 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우리도 말한다"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진리가 기록된 곳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없지만 성경을 믿고 담대히 진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형이상학과 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을 거쳐 자크 데리다에 의해 스스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일점 일획도 무너지지 않고 거기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습니다.
이름아이콘 정인성
2009-04-15 18:35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었던 버트란트 러셀 경 그리고 그의 동료였던 화이트헤드는 "근대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서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플라톤 이후 많은 진전이 있어보였던 철학의 사조들이 사실은 플라톤의 이데아 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지 못하면 우리는 철학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소위 '신선 놀음'의 쳇 바퀴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사람들은 "침묵하라"는 이 말을 잘못 받아들여 성경 자체에 대한 논의조차 무의미하다는 극단론에 치우치게 되었는데요, 사실 비트겐슈타인은 키에르케고르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에 우호적인 사상가였습니다. (복음주의 신자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서 이 말은 원본(즉 성경)그 자체를 보고, 그 이외의 허무한 말들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본 해석 윤리 원칙을 세운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한 때 감동을 받았던 말이라, 목자님의 글을 단숨에 읽었다는...^^;;
이창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키에르케고르는 언젠가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흔히 키에르케고르를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라고 하는데요 그가 과연 기독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는지 혹은 부정적인 유업을 남겼는지도 생각할 구석이 많습니다.
4/15 18:47
   
이름아이콘 정인성
2009-04-15 22:54
《Re》허락해주신다면, 키에르케고르에 관해서도 약간 언급해도 될런지요.

신학과 철학이 사변적으로 해석되고, 역사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헤겔과 셸링에 와서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에 반대하며 키에르케고르는 신학이 실존적인 차원,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공헌을 하였습니다. 즉 신앙은 '사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신 앞에선 단독자" "그리스도인의 훈련" "죽음의 이르는 병" 등의 논의를 통해 신자들이 현실적인 차원에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신학의 기반은 "모순성 Paradox(대표적으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예수님)"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칼 바르트가 이를 기초로 "로마서 강해"를 집필하고, 소위 바르트 신학을 세웠습니다만 이것이 결국 '신성의 완전성'을 훼손한 것은 아닌지 생각됩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사르트르에 가서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탈바꿈하면서, 인간에게 무한대의 자유(즉 신까지 부정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논리로 활용되어 결국 개인 신앙의 기초를 허물어버렸다는 점에서 부정적 유업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관심이 있는 분야라서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자님.
이창무 댓글 감사합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언급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신앙이 '사변의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변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사변의 영역'에서 점점 위축되어 가는 기독교를 살리기 위해 '실존의 영역'에서 위치를 회복시키려고 애쓴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 이후 '사변의 영역'은 세상 학문과 세계관에 자리를 내어 주고 기독교는 '경험과 실존'의 영역에 주로 머무르는 현상이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그래서 프란시스 쉐퍼가 기독교는 '사변의 영역'에서도 진리라는 점을 변증하려고 했던 것이죠. 전에 독후감을 쓰신 '완전한 진리'도 이런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4/16 10:15
정인성 목자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변의 영역은 포기될 수 없는 신앙의 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기독지성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4/16 12:34
   
이름아이콘 임수경
2009-05-01 15:48
오늘 감만에 유식의 바다에 빠져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말로 하기보다 침묵하라는 말에 한표 그러나 이창무 목자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우리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말해야 한다에 또한표임다.
   
 
  0
3500
Bookmark and Share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조회
41 목회서신의 5 가지 주제들 [4] 이창무 6723
40 성경 공부 인도자가 알아야 할 40가지 [11]+1 이창무 9218
39 사도 바울의 교훈과 인격과 사역 이창무 6101
38 율법의 목적, 유대인의 오류, 오늘을 위한 교훈 이창무 3312
37 칼빈의 생애 이창무 5296
36 아버지의 간증 [1] 이창무 2832
35 빛과 열 이창무 1706
34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교회는 사랑하지 않는다? [3] 이창무 1798
33 [詩]기도 [1]+1 이창무 2181
32 친밀함 [2]+2 이창무 2374
31 아포리즘 [5]+1 이창무 2705
30 시월의 마지막 밤을 [1]+1 이창무 2144
29 가을에는 독서를 [1] 이창무 2051
28 혈액형별 성격 분류 유감 [4]+4 이창무 2653
27 태몽 유감 [2]+2 이창무 2888
26 연애 편지 [1]+1 이창무 2094
25 인생 최초의 가출 [2]+1 이창무 1451
24 고대 출신 선생님들 [3]+2 이창무 2883
23 마케팅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이창무 2190
22 그리스도의 보혈(2009 SBC 셋째날 찬양 실황 녹음) 이창무 3209
21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하는 이유 이창무 1299
20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이창무 1637
19 실수담 [3]+1 이창무 1832
18 What a wonderful world [4]+2 이창무 1415
17 금융 위기의 근원 이창무 1131
16 봄에 온 佳人 [3]+3 이창무 1135
15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침묵하라 [3]+3 이창무 1853
14 물어보고 책사기 [3]+4 이창무 1366
13 촌스러운 고대 이창무 1670
12 찬양에 대한 몇 가지 소고 [1]+1 이창무 1966
11    Re..싱얼롱이란 말을 가급적 쓰지 맙시다. [1]+1 이창무 1354
10 영적 권위 이창무 1453
9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4] 이창무 1866
8 노동과 사명, 그리고 세상 [4] 이창무 1296
7 남편의 기도로 아내를 돕는다 이창무 2381
6 딸들로부터 받은 편지들 [4] 이창무 1220
5 조나단 에드워드가 쫓겨난 까닭은 [2] 이창무 2009
4 묻지마 책사기 [3]+1 이창무 1921
3 고슴도치 스토리 [5]+3 이창무 1654
2 신앙 실용주의 [4] 이창무 1274
1 내 영혼 평안해 [2] 이창무 135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