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출판사 – 민음사)
실격(失格)은 기준 미달이나 규칙 위반으로 자격을 잃는다는 뜻이다. 주로 운동 경기 등에서 쓰는 말을 인간에게 적용하니 좀 이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째서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을까? 심상치 않은 이 소설의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는 부잣집 막내아들이다. 그런데 요조의 삶은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사랑을 많이 받는 등의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고 마음이 여리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싫어도 싫다는 말을 못 한다. 한 예로, 요조의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기 전에 무엇을 사다줄까 라고 물어보면 요조는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게 ‘책’이어도 아버지한테 책을 사다달라고 말 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요조에게 사자춤 탈을 사다 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요조가 우물쭈물 말을 못 하자 아버지는 흥이 깨진 얼굴로 홱 하니 돌아서신다. 그날 밤 요조는 아버지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아버지의 수첩을 꺼내서 선물 목록이 기입된 곳에 ‘사자춤’이라고 써 놓고 잔다. 요조는 전혀 사자춤 탈을 가지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한다. 나중에 출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그럼 그렇지, 요조는 사자춤 탈이 갖고 싶었던 게야“ 라고 말하며 사자춤 탈을 내미신다.
가족뿐 아니라 친구,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요조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 하고 사람들의 눈치만 본다. 인간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믿지 못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만 지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익살꾼을 자처하며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선적이고 타산적인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과 연결되지 않아 절망한다. 도쿄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지만 그는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많아 만화가가 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절망, 세상에 대한 절망, 자신에 대한 절망, 부끄러움, 죄의식 등으로 고통하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가 지인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다. 석 달 뒤 큰 형은 정신병원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고, 고향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주면 여기서 빼내주고 아무 과거도 묻지 않고, 생활비도 대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얼핏 보면 요조를 생각해 주는 처사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형은 요조에게는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었던 가족과의 절연을 선언한 것이다. (소설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의 형은 정치인이 되고자 했는데 망나니인 동생이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까봐 동생의 잘못을 덮어주는 대신 조용히 살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요조는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인간실격자라고 말 하였다.)
이 소설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것인데, 나는 ‘사랑과 자존감’이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을 해석하였다. 이에 따라 요조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받지 못 한 아이가 필사적으로 사랑을 갈구했으나 끝내 진실한 사랑을 받지도 알지도 못 하자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연약함과 아픔, 고뇌에 깊이 공감했고, 많이 안타까웠다. 사랑받지 못 한 아이는 자존감이 낮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 한 사람이라도 그 아이를 사랑해주면 아이의 자존감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요조에게는 그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랑받지 못 한 요조는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몰랐고, 끊임없이 자기비판과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다른 사람이 잘 못 했을 때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식이었다. 그를 지독히도 괴롭힌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조와 같이 집이 부자이고 수재여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인간실격’을 읽으며 ‘사랑’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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