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F > 안암 > 컬럼 > 나는 독서왕(2세 환영!!!)

ㆍ작성자	Jesuslove
ㆍ작성일	2016-11-22 (화) 13:25

ㆍ추천: 1 ㆍ조회: 3772

ㆍIP: 211.xxx.235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읽고

(출판사 – 더클래식. 디자인이 세련되고 번역이 쉽게 되어 있으나 오자가 너무 많음.)

인도 사람들이 들으면 좀 섭섭(?)하겠지만 영국의 평론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이다. 그의 명성만 들었을 때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그토록 그가 칭송받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과연 세계최고라는 그의 명성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그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어느 시대에서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사의 보편성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빼어난 언어로써 표현할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 천재가 있는데 셰익스피어는 언어 천재가 아닌가 싶다. 그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이가 많은 영국의 왕 ‘리어’는 자신의 땅을 세 딸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자 한다. 왕은 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땅을 주겠다고 하며 세 딸들에게 각각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 결혼을 한 첫째 딸(거너릴)과 둘째 딸(리건)은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아부의 말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표현하여 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반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셋째 딸(코딜리어)은 자신은 자식 된 도리로서 아버지를 사랑할 뿐 별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여 왕의 노여움을 산다. 그리하여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왕의 영토의 절반씩을 받게 되고 셋째 딸은 아무 것도 받지 못 하고 왕국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간 뒤 프랑스의 왕비가 된다. 그리고 왕의 충직한 신하인 켄트 백작은 왕에게 그의 결정이 잘 못됐다고, 왕을 진정 사랑하는 딸은 셋째 딸이라고 충언하다 쫓겨난다. 땅을 나누어 준 뒤 리어 왕은 수행 기사 백 명을 거느리고 첫째 딸의 성에 가서 기거하는데 첫째 딸은 땅을 분배받을 때의 태도에서 180도 돌변한다. 리어 왕은 첫째 딸에게 모욕과 냉대를 받고 분노하여 그 성을 나오며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붓는다.

“경애하는 여신이여, 만약 저년에게 자식을 갖게 할 요량이라면 당장 그 뜻을 거둬라. 그녀의 자궁을 불임으로 이끌고, 생식기관을 말려 버리며 타락한 몸으로 어미의 자랑이 될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라. 행여 자식을 낳더라도 가증스러운 것을 낳아 자라면 부모를 배반하고 부도덕해 일생의 골칫거리가 되게 하라. 하여 어미의 이마에 주름살이 지고 흐르는 눈물로 뺨 위에 고랑이 파이며 어미로서의 노고와 보람이 비웃음을 사고 경멸받게 하여 배은망덕한 자식을 두는 것이 독사의 이빨보다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

왕은 “내게는 또 하나의 딸이 있다. 그 애는 틀림없이 친절하게 나를 맞아 줄 거다.”라고 말하며 둘째 딸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도 첫째 딸에게서와 같은 대접을 받자 왕은 이성을 잃고 뛰쳐나온 뒤 폭풍우가 치는 들판에서 유리방황한다. 왕은 자신을 웃겨주고 위로해 줄 광대를 데리고 다니는데 광대는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뼈가 담긴 말들을 툭툭 내뱉는다.

“넝마를 걸친 아비는 자식들이 외면하고 돈 주머니 찬 아비는 자식들이 다 효자네.”

나는 이 말이 정말 웃기게 느껴지면서도 요즘 세태에도 들어맞는 슬픈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기 재산을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나눠 주지 말고 죽을 때 까지 꽉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왕의 또 다른 충직한 신하인 글로스터 백작에게는 적자인 에드거와 서자인 에드먼드 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에드먼드가 아버지와 형 사이를 이간질하여 아버지가 형을 내쫓게 만든 뒤, 아버지가 반역을 꾀했다고 리어 왕의 딸들에게 모함하여 글로스터 백작은 두 눈이 뽑힌 채 내쫓김을 당한다. 왕의 둘째 사위인 콘웰 백작에 의해 글로스터 백작이 눈을 뽑힐 때 글로스터의 하인이 이를 저지하다 죽고, 콘웰도 하인의 칼에 맞아 죽는다.

그 뒤 리어 왕을 돕는 신하들이 프랑스에 있는 셋째 딸에게 사정을 알려서 프랑스 군대가 영국으로 쳐들어와 싸우게 된다. 나는 당연히 프랑스 군대가 이기고, 리어 왕의 배은망덕한 두 딸이 인과응보의 대가를 받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프랑스 군대가 지고, 셋째 딸 코딜리어와 리어 왕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코딜리어는 죽임을 당하고 리어 왕은 충격을 받아 죽는다. 그러면, 왕의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승자가 된 채 이 극이 마치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되었어도 나는 이 작품이 충분히 비극적이라고 느꼈을 텐데 셰익스피어는 “뭐 이정도 가지고 비극이라고 하나요?” 라고 말하며 코웃음이라도 치듯이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싸움을 벌이다(첫째 딸은 남편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동생이 언니에게 독약을 먹여 죽인 뒤 자신도 자살을 한다. 이쯤 되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구나 싶다. “셰익스피어, 당신은 이렇게 모든 사람을 죽이고서야 그제야 만족을 하시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게 셰익스피어 작품을 독특하고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인데, 선인도 완전한 선인이 아니고 악인도 완전한 악인이 아니다. ‘맥베스’에서도 충직한 신하였던 맥베스가 권력욕심이 들어 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뒤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무척 괴로워하고, 리어 왕에서도 둘째 딸이 에드먼드를 차지하기 위해 언니를 죽이는데 그러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하며, 형과 아버지를 제거하고자 했던 에드먼드도 나중에는 “내 나쁜 본성을 거슬러 좋은 일을 하고 싶구나”라고 말하며 선한 일을 한다.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인간이란 천만의 마음을 가진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리어 왕이 겪은 비극은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랑의 정도를 말로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어리석었고 좀 지나치긴 하지만 그 대가를 받았다. 지혜를 발휘하여 딸들의 사랑을 시험할 수 있는 일을 꾸며 알아보던지 했어야했다. 현실에서도 이처럼 말로써 아부하는 사람들이 권세자들에게 사랑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그러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잘 보일 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땅을 나눠주고 난 뒤 리어 왕이 두 딸들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진실하지 않은 번드르르한 말보다도 진실함을 담고 있는 투박한 말이, 그리고 진실함을 담고 있는 투박한 말보다도 진실한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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