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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을 읽고
(출판사 – 솔) 산도르 마라이는 헝가리 출신 작가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오랜 세월 동안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는데 그의 작품 ‘열정’은 작가 사후 뒤늦게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75세의 노장군 헨릭은 41년 동안 기다려왔던 사람의 방문을 앞두고 초조해 한다. 그 사람은 헨릭의 오래된 친구인 콘라드로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24년간을 함께했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친구를 기다리는 장군의 초조함이 계속 그려지고 있어서 왜 그러는걸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드디어 41년 만에 친구가 나타났다. 어둠침침한 커다란 방에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탐색하듯이 바라본다. 이 만남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반가워하는 그런 만남이 아니다. 친구의 배신을 추궁하기 위한 만남이다. 4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친구인 콘라드는 말없이 듣고만 있고 장군 혼자서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하는 식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콘라드와 헨릭은 사관학교를 같이 다닌 각별한 관계의 친구다. 그러나 헨릭은 집안이 부유했고 콘라드는 가난했기 때문에 콘라드는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콘라드에게는 ‘음악’이라는 자신만의 세계, 자신만의 도피처가 있었고, 헨릭은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 했다. 헨릭에게 군인은 현실이고 실제였지만 콘라드에게는 위장이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세월이 흘러 헨릭은 결혼을 했다. 부인의 이름은 크리스티나인데 콘라드의 소개로 만났다. 셋은 아주 가깝게 어울려 지냈다. 콘라드와 마찬가지로 가난했고, 음악을 사랑했던 크리스티나는 콘라드와는 마음이 통했지만 남편인 헨릭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헨릭과 부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콘라드와 헨릭이 함께 사냥을 하러 나간 어느 날이었다. 헨릭은 콘라드가 총으로 사슴을 쏘는 척하면서 자신을 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사슴은 달아나고 콘라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총을 내려놓는다. 그 일이 있은 뒤 콘라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직위도 내려놓은 채 열대 지방으로 홀연히 떠나 버린다. 헨릭은 콘라드가 떠나고 없는 그의 빈 집에 들르게 되고, 방 안이 예술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콘라드는 헨릭을 자신의 집에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때 크리스티나가 콘라드의 집으로 들어온다. 크리스티나는 그 집에 있는 물건들을 익숙한 듯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물건들과 영영 이별이라는 듯 슬픈 눈으로 바라본 뒤 남편을 남겨둔 채 집으로 가 버린다. 헨릭은 자신의 친구와 아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제야 눈치 챈다. 그리고 왜 친구가 자신을 쏘려고 했는지도.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장군은 부인이 병으로 죽기까지 8년 동안 한 번도 부인을 만나지 않는다.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인 친구와 부인으로부터 배신당한 장군은 세상과 단절하고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고독하게 세월을 보낸다. 그는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를 그래서 그의 입에서 진실을 듣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41년째. 드디어 친구가 돌아왔고 둘은 마주 앉았다. 장군은 이미 모든 것을 본능과 느낌으로 알고 있었지만 친구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요즘 나의 독서습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책을 빨리 읽어 많은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지금은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고 싶어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읽기를 한 번 더 반복한다. 한 권의 책을 두 번씩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져서 좋다. 이 책도 처음 읽었을 때는 문장도 별로인 것 같고, 빤한 불륜 소설이 아닌가. 이 책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다들 추천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느낌이 달랐다. 내 마음에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알려주고자 하는 인생의 진실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기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결코 친밀한 상태로 결합될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가 생각이 났다. 토니오 크뢰거에서도 시민의 세계에 속한 사람과 예술가의 세계에 속한 사람 두 부류가 나오고 그들이 섞이기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군은 가장 친했던 친구 콘라드와 자신이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크리스티나와도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 다름은 고독을 가져다주었다.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삶의 가장 큰 비밀과 최대의 선물은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일세” 또한 우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군이 그토록 갈구했던 진실한 우정이란 무엇일까. 장군은 콘라드에게 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태에서 태어난 생명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고귀한 관계가 우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네. 친구가 올바른 친구가 아니어서 친구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의 성격이나 약점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덕행이나 신의, 변함없음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이런 우정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신의를 기대하는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자신을 희생하는 신의 있는 친구와 똑같이 신의 없는 친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상대방에게서 어떤 것도, 정말 어떤 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 사리사욕 없음, 많이 줄수록 기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진실한 내용이 아닐까?” 장군이 이렇게 말을 한 것을 보면 결국 친구가 자신을 기만하고 배신했어도 친구에 대한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다음은 책 속에 나오는 문장이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장군은 자신을 기만하고 배신한 친구와 부인에게 묻고 싶었고 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들로부터 그 어떤 말도 듣지 못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깨닫는다. 그들이 결국 삶으로 대답했다는 것을 말이다. 친구는 열대로 도망을 쳤고, (두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부인은 죽기로 결심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장군은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질문에 우리 삶으로 대답을 하게 되어 있다는데 깊이 공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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