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읽고
(출판사 – 열린책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여성해방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줄거리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결혼 8년차인 노라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이다. 변호사인 남편 헬메르는 노라를 나의 종달새, 다람쥐 등으로 부르며 귀여워한다. 헬메르는 은행장으로 취임을 앞두고 있는데 과부가 된, 노라의 친구 린데부인이 나타나 일자리를 부탁한다. 헬메르는 린데부인에게 은행에서 일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 뒤 크로그스타가 나타나 자신이 은행에서 잘리지 않도록 남편에게 힘을 써줄 것을 노라에게 부탁한다. 노라는 이를 거절하지만 크로그스타는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며 노라를 협박해 온다. 노라는 신혼초기 남편이 중병에 걸렸을 때 돈이 필요하여 남편 몰래 크로그스타에게 거액을 빌린 적이 있다. 그 돈으로 요양을 하여 남편은 다 나았고 노라는 8년 동안 남편 몰래 빚을 갚아오고 있다. (남편은 돈을 빌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노라는 아버지가 주신 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문제는 노라가 돈을 빌릴 때 보증인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세웠는데 아버지 대신 위조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로 크로그스타는 이것을 빌미로 노라를 협박하는 것이다. 노라는 이 문제로 고뇌하고 갈등하는데 결국 남편이 이 문제를 알게 되어 둘은 서로 다투게 된다. 다행히 린데 부인의 도움으로 크로그스타는 노라를 고소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라는 남편의 이중성에 실망을 함과 동시에 자신이 그 동안 남편의 인형으로 살아왔음을 깨닫고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세 아이와 남편을 두고 집을 뛰쳐나온다.
나는 이 희곡을 읽으면서 노라가 인형같이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동정심이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가 독립을 외치며 집을 뛰쳐나가는 대목에서 통쾌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노라는 그래도 안정된 환경에서 사랑을 받으며 안락한 삶을 누려오지 않았나. 결국 그녀가 선택한 삶이 아닌가. 노라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위장하고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두려움에 노라가 선택한 행동이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가 엄청난 피해자인 것처럼, 억압된 삶을 산 것처럼 말하는 것에 공감이 안 되었다. 노라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남편이 다시 잘 해 보자고 만류했음에도 그녀가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굳이 집을 뛰쳐나가야 했을까. 가출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찾기 위해 투쟁했으면 어땠을까. 세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갔는데 엄마가 없는 세 자녀들의 삶은 어떠할까. 물론 유모가 있고 헬메르가 재혼을 할 수도 있지만,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해 아이들이 느낄 당혹감과 슬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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